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현실은 조금 더 답답해졌다.
교실의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비슷했다.
아침 자습 시간에는 문제집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었고,
쉬는 시간이 되면 누군가는
학원 이야기를 했다.
모의고사 등급, 내신 등급, 어느 대학이 현실적인같은 이야기들이 교실 공기 속에 늘 떠다녔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농담을 하면서도
결국 같은 결론으로 돌아왔다.
성적.
성적이 좋으면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 부드러워졌고,
성적이 애매하면 그 사람은 설명이 필요해졌다.
마치 성적표가 그 사람의 설명서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평균보다 조금 나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나를 “성실한 학생” 정도로 기억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늘 지각을 하지 않았고,
숙제를 대충이라도 해 갔고,
수업 시간에는 눈에 띄지 않게 앉아 있었다.
질문을 받으면 조용히 대답했고, 틀리더라도 변명하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방 문을 닫고 컴퓨터를 켜면 방 안이 어둡게 변했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벽에 번졌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낮에 있던 교실의 공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비웃고 있었다.
정치인, 연예인, 뉴스에 나온 사건,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람들, 심지어 서로까지도.
어떤 글은 짧았고, 어떤 글은 길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에는 공통된 느낌이 있었다.
냉소.
누군가의 실수는 금방 웃음거리가 되었고, 누군가의 진지한 이야기는 몇 줄의 조롱으로 끝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쉽게 판단했고, 쉽게 비웃었다.
처음에는 그게 단순한 농담처럼 보였다.
그냥 인터넷 특유의 거친 유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웃었다.
가끔은 스크롤을 멈추고 댓글을 몇 번 더 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글을 읽기 전에 이미 결론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 이 글은 누군가를 비웃는 글이겠구나.
아, 이 사람도 결국 조롱당하겠구나.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 패턴을 계속 보다 보니 사람을 보는 방식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나는 그 말을 그냥 듣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굴렸다. 저 말은 결국 이런 의미겠지. 저 표정은 저런 의도겠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어딘가 허점이 있는지 먼저 찾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조용했고,
여전히 예의 바르게 말했고,
여전히 “성실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점점 다른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결국 자기 이익만 생각한다.
대부분은 생각 없이 살아간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조금 시원했다.
세상을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은 점점 탁해졌다.
교실에서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예전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 웃음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고,
그 대화가 조금 얕게 느껴졌다.
나는 겉으로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어딘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밤에 컴퓨터 화면을 끄고
방 안이 다시 어두워질 때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방은 조용했는데
머릿속은 조금 더 시끄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끄러움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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