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생각들은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됐지만
점점 습관이 되어가던 무렵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고, 어느 날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입영통지서였다.
봉투는 얇았지만 묘하게 차가웠다.
종이를 꺼내 읽는 동안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냥 날짜 하나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날짜는 내 일상을
통째로 잘라내는 선처럼 보였다.
그때까지 나는 내 습관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속으로 분류하고, 평가하고, 비웃는 방식.
그건 이미 너무 자연스러운 사고 방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군대에 들어갔다.
처음 며칠은 정신이 없었다.
훈련소라는 곳은 사람을
생각할 틈 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소리, 명령, 줄, 반복.
비,땀,흙냄새
나는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고, 짧게 대답하는 것.
늘 통하던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교가 갑자기 내 앞에서 멈췄다.
“야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말투가 왜 그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
“지금 비웃은 거냐?”
나는 당황했다.
“아닙니다.”
조교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그 말투가 왜 그렇게 기어들어가냐고
관등성명. 안대냐?”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익숙하게 쓰던 조용한 말투가 여기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는것을
훈련소에서는 낮은 목소리가 예의가 아니라
어딘가 비틀린 태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목이 따끔거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말을 할 때마다 잠깐 멈칫했다.
내 말투가 어떻게 들릴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 작은 긴장은 생각보다 오래 갔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에 갔을 때였다.
거기에는 유난히 말이 많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다.
웃음도 컸고, 농담도 거칠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조금 멍청해 보였다.
인터넷에서 보던 전형적인 “단순한 사람” 같았다.
야간 훈련 중이었다.
산 쪽으로 올라가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밤 공기가 축축했고, 풀 냄새가 났다.
멀리서 곤충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때 앞에 서 있던 하사가
갑자기 뒤를 슬쩍 돌아봤다.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옆쪽 숲을 한 번 봤다.
아주 짧은 동작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신호였다.
하지만 눈치라는 건 가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숲 안쪽은 조금 더 어두웠다.
하사가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 불이 잠깐 켜졌다.
그는 나를 한번 보더니 물었다.
“너도 피냐.”
나는 잠깐 망설였다.
사실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안 핍니다”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하나 건네받았다.
"뫼비우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걸 알아챘다.
아, 담배구나.
입에 물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연기를 빨아들였고, 바로 기침이 나왔다.
하사가 웃었다.
“야.”
그는 담배를 한 번 빨며 말했다.
“담배도 못 피면서 왜 따라왔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묘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왜 따라왔지.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눈치를 봤을 뿐이었다.
그날 밤, 생활관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데 입안에 이상한 쓴맛이 남아 있었다.
어릴 때 교회에서 들었던 말이 잠깐 떠올랐다.
몸은 성전이라는 이야기.
담배는 몸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이야기.
나는 그 생각을 잠깐 했다가 그냥 넘겼다.
대수롭지 않게.
생활관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아무도 말할 기운이 없었다.
선임 이 갑자기 말했다.
“야 근데 오늘 밥 괜찮지 않았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혼자 웃으며 말했다.
“난 군대 오기 전보다 살 찔 것 같은데.”
생활관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조금 터졌다.
그 웃음은 크지 않았지만, 묘하게 공기를 풀어줬다.
나는 그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그냥 버티는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을 몰랐다.
몇 달쯤 지나고 나서였다.
야간 근무를 설 때였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밤 공기는 축축하게 차가웠다.
초소 주변에는 풀 냄새와 흙 냄새가 섞여 있었고, 멀리서 건조기 돌아가는 낮은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낮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던 소리였는데 밤에는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어둠 속에서 사람의 말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울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함께 근무를 서던 선임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와서 난간에 기대 섰다. 그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야 너.”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예.”
그는 잠깐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왜 맨날 말할 때 눈 피하냐.”
그 말은 생각보다 직설적이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대답은 금방 떠올랐지만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냥 습관입니다.”
선임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이 잠깐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몇 초쯤 지나서 그가 말했다.
“겁 많지?”
그 말은 짧았다.
농담처럼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결론처럼 들렸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부정하려면 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군대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한다.
대충 부정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움을 싫어했다.
사람과 부딪히는 상황을 피했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일단 한 발 물러났다. 분위기가 험해지면 말을 줄였다. 괜히 의견을 내서 중심에 서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그걸 예의라고 생각했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태도.
괜히 갈등을 만들지 않는 태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군대에서는 사람이 말을 아끼면
조용한 사람이 아니라
위축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눈을 피하면
예의가 아니라
눈치 보는 태도로 보였다.
나는 그걸 그때 처음으로 명확하게 자각했다.
선임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나도 뿜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뭐 나쁜 건 아냐.”
잠깐 침묵이 흐르고
그가 다시 덧붙였다.
“근데 티 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게 없었다.
초소 밖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짧았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씩 의식하게 됐다.
생활관에서 말을 할 때
눈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신경이 쓰였다.
선임이 농담을 던지면
얼마나 크게 웃어야 자연스러운지 계산하게 됐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할 때
목소리가 너무 작지 않은지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겁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그날 밤 이후로
머릿속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인터넷에서 보던 말들이
가끔 그 생각 위에 겹쳐졌다.
예전에는 웃어넘기던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는
문장들이 조금 덜 웃겼다.
아주 조금,
불편해졌으니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