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나의 두뇌에 작용하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은 돌아간다. 멈춰 있던 세상이 돌아간다. 물론 내 신체는 아직도 형체가 없는 듯하다. 참 잔인한 것이, 세상은 이 와중에도 잘만 돌아간다. 차라리 커피를 마시지 말았으면 했다.
그렇게 나는 오십여 세제곱센티미터의 뒷문이 뻥 뚫린 감옥에서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누가 나를 여기 가두어 놓았는가? 나는 어째서,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가지 않고 꿋꿋이 알고 있나? 답을 도출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질문에 나는 다시 까무러쳐 버린다. 커피는 절대 이길 일이 없는 것이다.
또 흠칫 깨어 피곤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칙칙한 나무판이 보인다. 자연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깎여 나의 감옥을 구성하는 그것이다. 이 감옥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나무를 희생하였을까? 내가 그렇게 많은 나무를 쏟아부어 가두어 둘 만한 가치가 있거나 위험한 사람이런 것일까? 머릿속을 잠식하는 교묘한 곰팡이들을 나는 어서 치워 버렸다.
다시 눈을 감아 보지만 머리가 징하고 울릴 뿐이다. 이럴 때만 가끔씩 힘이 난다. 한 번 소리를 질러 보고 싶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 행동이다. 어쩌면 이 감옥은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벗어나기에는 너무나도 안락하여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눌러앉은 것이다. 아까 곰팡이를 치워 버린 것을 후회하였으나 너무 늦은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집중해야 한다. 오래전에 잊어버린 날카로운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무엇인가 '반짝' 하고 잠시 빛나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여러 개의 태양과 갈매기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이 감옥은 위에도 뚫려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살아 있지는 않다. 나무도, 태양도, 갈매기도.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이 감옥 안 하나였으나 요즘 통 몸이 좋지 않은지 다른 감각처럼 무뎌져만 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간신히 예전의 감을 되살려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해 냈다.
......나무를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단지 그 그림자를 즐겼을 뿐이다.
나도 내 몽상 속에만 존재하는 나무와 똑 닮아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단지 나를 난도질하며 떨어진 피와 얼마 되지도 않는 고깃덩어리를 즐겼던 것이다. 피칠갑이 된 초라한 모습이 되었을 때는 모두들 외면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인가?
기침이 나를 또 괴롭힌다. 아마도 나보다 끈질긴가 보다. 나는 나를 잠재우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다. 기침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용각산을 먹어야 한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오직 '덜컥, 달칵' 하고 숟가락이 그 안에서 우스꽝스럽게 부딫히는 모습만이 들릴 뿐이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그 우스꽝스러운 숟가락을 들어 정량을 퍼 먹는다. 누가 보면 안 되는 것처럼 급하게 삼킨다. 목이 마르지만 물을 마실 수는 없다.
내 손바닥마다 조금 큰 나무의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허옇다. 그저 허연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 다녀간 듯하다.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아마도 아주 더러운 사람인가 보다. 씻지도 않는 더러운 사람. 그러나 내게는 그를 욕할 자격은 없다. 나도 씻지 않는다. 나도 아주 더러운 사람인가 보다.
종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세상은 격변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구원의 증표인가 형벌의 선고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동작을 본다. 저것은 기쁨의 질주인가 고통의 몸부림인가? 나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군중에 이끌려 나마저도 얼떨결에 감옥을 나선다. 자의로는 절대 할 수 없을 일이었지만 작은 사람 몇몇이 감옥에서 나를 빼낸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의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느낀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자유인의 신분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감옥에서 감옥으로, 작은 감옥에서 더 큰 감옥으로 나온 것이다. 탈출의 기쁨을 느낄 새도 수많은 의문으로 내 정신은 가득 찬다. 머리가 무겁다.
어쩌면 요 더 큰 감옥에도 종소리가 울릴 날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격변하고 사람들이 어지럽게 움직일 그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보잘것없는 소망일 뿐이고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잔인하고 또 잔인한 세상이다.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이 감옥은 끝이 없다. 잔인하도록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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