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쯤이었습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참이슬 한 병을 따 놓고 있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나서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이상하게 싫은 날이 있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그냥 불 켜진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가 싫은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괜히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라이터를 몇 번 튕겼습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뱉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는
스물쯤 되면
삶이 조금은 그럴듯해질 줄 알았습니다.


차도 하나쯤 생기고
주말이면 만나러 갈 여자친구도 있고
가끔은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답게 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옆에는
참이슬 한 병이 있고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지가 하나 있고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몇 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게 그렇게까지
망한 인생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편의점 안을 보니
야간 알바를 하는 학생이
졸린 눈으로 계산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보다 몇 살은 어릴 것입니다.

그 학생도
몇 년쯤 지나면

퇴근을 하고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가끔 차 안에 한참 앉아 계셨습니다.


시동은 꺼져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는데

그냥
운전석에 앉아 계셨습니다.

저는 그게 이상했습니다.

왜 집에 안 들어오지.

왜 저렇게 차 안에 앉아 있지.


그때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내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담배가 다 타서
필터만 남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바닥에 비벼 껐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주가 쓴 것인지

아니면

이 나이라는 것이
조금 쓴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저와 비슷한 남자들이

편의점 의자에 앉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월세 걱정을 하고
내일 출근 걱정을 하고

가끔은
부모님 생각도 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결국
다들 또 일어날 것입니다.

알람을 끄고
세수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출근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멋있게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비겁하게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그냥

조용히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