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려고 몇 번이나 손을 댔는데,

나는 그런 간단한 일도 늘 늦습니다.

아니, 늦는 척을 잘합니다.

조금만 더 남아 있기를 바랐던 거겠지요.

냄새 같은 건 생각보다 오래 남는 법이기에.


검은 바이저 안쪽에는

네 머리카락이 한 올 붙어 있었고,

턱끈에는 핸드크림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그보다 더 질긴 건 샴푸 향이었습니다.

참 우스울 따름입니다.

사람은 먼저 없어지는데

머리 감고 난 냄새가 제일 늦게 사라진다는 게.


처음 너를 태운 날도 비가 막 그친 밤이었습니다.

홍대 뒤편 편의점 앞,

젖은 도로가 형광등을 싸구려처럼 비추고 있었고,

나는 컵라면 물을 기다렸고

너는 삼각김밥을 전자레인지 앞에서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데울까, 말까.

중요한 건 빨리 정하면서

쓸데없는 데서만 오래 망설이는 여자.


그날 내 헬멧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원래 남을 태울 생각이 없었거든요.

귀찮으니까.

아니, 무서우니까.

뒤에 사람이 타면 허리를 감는 손의 힘으로

내가 얼마나 볼품없는 인간인지

금방 들키니까요.


그런데 너는 헬멧을 받아 들고

냄새부터 맡았습니다.

보통은 더럽다, 축축하다, 남의 머리 냄새 난다,

그런 말을 해야 맞지 않나요.

너는 바이저를 올렸다 내리더니

“세제 냄새 나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제 패드를 빨았다고 했고,

너는 쓸데없이 성실하네, 하고 웃었습니다.

그 말이 칭찬인지 놀림인지 몰라서

나는 그냥 시동만 걸었습니다.

그런 걸 구별하는 데 늘 서툰 사람입니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가는데

너는 처음엔 옷깃만 잡더니

두 번째 신호를 지나고는 허리를 잡았고

세 번째 코너에선 등에 얼굴을 댔습니다.

헬멧 안이라 웃음소리는 잘 안 들렸습니다.

그래도 알겠더군요.

등 뒤에서 웃는 사람은

손끝이 먼저 달라지니까.


너는 계속 떠들었습니다.

무섭다, 재밌다, 저 차 봐, 편의점 가자, 계속 달리자.

끝이 자꾸 바뀌는 말들.

나는 그런 걸 싫어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네 목소리는 배기음 사이에 잘 섞였습니다.

그래서 액셀을 조금 더 감았습니다.

내가 잘하는 건 대개 이런 쪽입니다.

대답 대신 소리를 키우는 일.


신호에 걸렸을 때

너는 바이저를 반쯤 올리고

내 옆얼굴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오빠는 꼭 도망가는 사람처럼 운전하네.”


좋은 말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늘 뭔가에서 늦게 도망쳤고,

도망친 뒤에도 한참 그 근처를 맴도는 종류의 인간이니까요.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건 너무 점잖고

그냥 구차한 겁니다.


남산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기름이 없었고,

내 카드엔 더 없었으니까.

나는 담배 핑계를 댔고,

너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게 더 민망했습니다.

사람이 가난한 걸 들킨 순간보다

들키고도 모른 척해 줄 때가 더 창피하거든요.


보광동 쪽 편의점 앞에 세웠을 때

너는 헬멧을 벗어 시트에 올려두고

눌린 머리를 두 번 쓸어넘긴 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형광등 불빛이 네 등을 하얗게 밀어냈습니다.

나는 그 등을 보다가,

참 우습지,

처음 본 여자 하나가 그대로 안 돌아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는 돌아왔습니다.

핫바 하나,

캔커피 두 개,

초코우유 하나.

내가 무슨 커피를 마시는지 말한 적도 없는데

검은 캔을 내 무릎에 올려두며 말했지요.


“이런 사람은 이거 마시잖아.”


무슨 이런 사람.

나는 묻지 않았습니다.

대충 맞는 말은 대개 기분 나쁜 법인데,

네가 하면 꼭 덜 기분 나빴습니다.

아니,

내가 네 앞에서만

기분 나쁜 걸 못 이긴 걸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그렇게 붙었습니다.

사귀자는 말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없었을 겁니다.

너는 내 뒤에 너무 자주 올라탔고,

나는 네가 타는 걸 너무 빨리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밤 열한 시,

새벽 한 시,

비가 온 뒤,

배달 끝난 뒤.

시간만 바뀌었지

장면은 늘 비슷했습니다.


네 손이 내 허리에 닿고,

나는 앞만 보는 척하고,

둘 다 중요한 말은 뒤로 미루는 식으로.


너는 내 방에서도 가끔 헬멧을 썼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턱끈까지 채우고,

잘 어울리냐고 물었습니다.

이상하다고 하면 벗지 않았고,

냄새 난다고 하면서도 한참 더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땀이 찼다며

내 무릎에 툭 올려놨지요.

그럴 때마다 안쪽 패드에

네 샴푸 향이 조금씩 더 배었습니다.


사실 모른 척한 게 많습니다.

약봉지를 버릴 때 왜 꼭 물을 세 번 마셨는지,

잠에서 깨면 왜 창문부터 열었는지,

조용한 날과 더 조용한 날이 왜 다른지.

나는 알 것 같을 때마다 시선을 돌렸습니다.

사람을 자세히 알면 둘 중 하나거든요.


고쳐주고 싶어지거나,

도망가고 싶어지거나.

나는 둘 다 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사랑했습니다.

불행까지 책임질 정도는 아니고,

하루가 조금 덜 거칠어지는 정도로.

비 오면 데리러 가고,


새벽에 전화 오면 욕부터 하고 받는 정도로.

결혼을 입에 올릴 만큼 순진하진 않았고

헤어짐을 준비할 만큼 똑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중간이 오래 갔습니다.


사람을 망치는 건 대개 극단이 아니라

그 애매한 중간이더군요.


네가 죽은 날도 처음엔 잘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나요.

경찰 전화 한 통,

낯선 사람의 무뚝뚝한 설명,

병원 이름,

확인하러 오시겠습니까,

그런 문장들로 먼저 옵니다.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

문장이 먼저 도착하는 식으로.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갔습니다.

그 와중에도.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헬멧을 쓰는 손이 이상하게 침착했습니다.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울지도 않았고,

욕도 안 했고,

액셀만 천천히 감았습니다.

사람이 너무 큰 일을 맞으면

오히려 늘 하던 동작부터 한다더군요.

나는 끝까지 그런 종류였습니다.


병원 복도는 밝았고

너는 조용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조용해서

나는 잠깐 화가 났습니다.


늘 말이 많던 애가

왜 그날만 그렇게 얌전한가 싶어서.

손등을 한 번 만져봤는데 차가웠고,

나는 그때도

이건 잠깐 그러는 거겠지,

조금 지나면 눈 뜨겠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끝까지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미련한 게 아니라

비겁한 거겠지요.

눈앞의 일을 끝까지

자기 일로 인정하지 않는 버릇.


장례는 빨리 지나갔습니다.

국화 냄새,

조문객들 검은 옷,

미지근한 육개장,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입들.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힘내세요.

젊은 사람이 참.


그런 말들은 이상하게 죄다 비슷해서

듣고 나면 더 멀어집니다.

나는 네 영정사진을 보다가

네가 저렇게 얌전히 웃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 생각만 했습니다.


모든 게 끝난 뒤에야 헬멧이 남았습니다.

네가 제일 오래 썼던 물건,

정확히는 내 물건인데

이제는 너 쪽 냄새가 더 강한 물건.

나는 새벽마다 현관 앞에 쪼그려 앉아

바이저를 올렸다 내렸고,

턱끈을 만졌다 놓았고,

패드를 손가락으로 한 번 눌러봤습니다.

정말 네 샴푸 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담배 냄새보다 오래,

비 냄새보다 오래,

내 방 냄새보다 오래.


한 번은 그 헬멧을 들고

네가 타던 자리 쪽을 오래 봤습니다.

빈 시트는 아무 말도 안 했고,

나는 괜히 백미러 각도만 만졌습니다.

그 자리에 네 무릎이 닿았고,

네 손이 내 허리를 잡았고,

신호에 걸리면 헬멧이 등에 툭 부딪히곤 했지요.

사람 하나 없어졌을 뿐인데

오토바이의 균형까지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건 기분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원래 사람은

잡아주던 무게가 사라지면

오히려 더 휘청이는 걸까요.


나는 결국 헬멧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며칠을,

몇 주를,

그냥 두었습니다.

버리면 끝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버려도 안 끝날 걸 알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오히려 게을러집니다.

그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계절은 멋대로 앞으로 갔습니다.

겨울은 생각보다 빨리 닳았고,

도로 끝에 쌓인 눈은 검게 녹았고,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는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여전히 배달을 했고,

신호를 기다렸고,

담배를 피웠고,

네가 없는데도 자꾸 뒤를 돌아봤습니다.

바보 같지요.

아무도 없는데도

뒤에 누가 타고 있는 것처럼

코너를 천천히 돌았습니다.


어느 날 밤,

홍대 뒤편 그 편의점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습니다.

처음 너를 태웠던 자리와 비슷한 자리였지요.

젖은 아스팔트 대신 미지근한 바람이 있었고,

전기장판 광고 소리 대신

 벌레 우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컵라면 물을 받지 않았고

삼각김밥도 사지 않았습니다.

그냥 헬멧만 무릎에 올려뒀습니다.


바이저 안쪽엔 이제

네 머리카락도 없었습니다.

언제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조차 모르고 살았습니다.

샴푸 향도 거의 지워져 있었고,


플라스틱 냄새와 오래 묵은 천 냄새만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걸 한참 맡다가 문득 알았습니다.

냄새가 빠진 게 아니라

내 코가 먼저 무뎌진 건지도 모른다는 걸.


그게 제일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네가 죽은 것보다,

헬멧을 버려야 한다는 것보다,

네 냄새가 희미해진다는 것보다,

내가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은 생각보다 잘 살아남더군요.


그래서 더 추합니다.

사랑했던 사람 하나 잃고도

배는 고프고,

콜은 잡히고,

졸리면 자고,

봄이 오면 얇은 옷을 꺼내 입게 되니까.


나는 헬멧을 무릎에 올려둔 채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저 두 문장 사이에

내가 평생 못 건널 구덩이 하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헬멧은 그날 버렸습니다.

종량제 봉투에 넣기 전에

안쪽 패드를 한 번 더 만져봤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었습니다.

따뜻하지도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고,

그냥 오래된 물건 하나 같았습니다.

그게 이상하게 더 잔인했습니다.

사람은 죽고 나서도

한동안은 사람 같은데,

물건은 어느 순간

정말 물건이 되어버리니까요.


봉투를 묶고 돌아서는데

현관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조금 따뜻했습니다.

아, 이제 정말 봄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너는 끝내 이 봄을 못 봤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절이 계속 오는 건

좀 비열하지 않나요.

한 사람쯤 빠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꽃은 피고,

도로는 마르고,

오토바이는 시동이 걸리고,

사람들은 편의점 앞에서 웃습니다.


그래도 봄은 옵니다.

내가 원하든 말든.

네가 없는데도.

우리가 처음 만난 계절이라는 사실까지 데리고,

조용하고 뻔뻔하게.


나는 아직도 가끔

새 헬멧 안쪽 냄새를 맡습니다.

당연히 네 냄새는 안 납니다.

플라스틱 냄새,

새 패드 냄새,

창고 냄새만 납니다.

그게 맞습니다.

맞는데도,

가끔은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확인하려고

쓸데없이 더 깊이 숨을 들이마십니다.


아무것도 안 납니다.


그러니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네가 내 뒤에 타고 있었던 게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그 사소한 무게 하나가

얼마나 오래

나를 사람처럼 보이게 했는지.


봄이 옵니다.

너와 내가 만난 그 봄이.


봄이 옵니다.

네가 없는 차디찬 그 봄이.


나는 아직 그 둘을

같은 계절이라고 부를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