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여행
이상하리라만치 슬픈감정이었다. 사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낀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에게 이러한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가가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일제히 숨긴 채 갑작스러운 이별여행을 통보했다.
잠시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가 다시 차분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를 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의 사랑은 참 발칙했다. 화성을 향하는 우주선 처럼 시속 28,000km의 속도로 적절한 속도, 적절한 온도, 적절한 날씨에 별 다른 저항 없이 중력을 벗어났다. 저항이 사라질 때, 더 이상은 필요없는 부품들을 하나 둘 씩 벗어내고 연료를 태워 재를 만들었다. 그에게도 더 이상의 불필요한 감정들은 그렇기 하나 둘 씩 지워나갔다. 남은 것이라고는 옷을 다 벗고 난 뒤에 나체 한 구처럼 어색하지않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이지않은 사람이 되어 버렸나.
나에 비해 그의 사랑은 참 특별했다. 자신보다도 타인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사람. 그는 모든 사랑에 언젠가 다시 불씨가 켜질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며 작은 불씨들 마저 입김을 불어넣었다. 어쩌면 우리의 관계 마저도 그의 입김으로 인해 아직까지 꺼지지않았나보다.
그와 나는 이렇게 달라서 만나게되었을까 N극을 향하는 그와 S극을 향하는 내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듯, 처음 본 우린 어느 새 하나가되었다. 아니 되었었다. 늘 발칙하고 화가 많은 나의 사랑에, 작은 불씨에 입김을 불어넣는 그의 적당히 따뜻하고 잔잔한 입김, 적당히 한기가 도는 그의 손길들이 나를 이토록 무르게 만들었나보다.
이별여행이라고는 생각 해 본적이 없었기에 막상 언제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가야할지 무엇도 모른 채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처음 만난 그 곳에서 모아둔 시간들을 두고 마지막도 처음과 같은 곳에서 떠나는게 어떻겠냐는 그의 의견에 우린 곧 장 이른 초저녁 제주도로 향했다. 이상하리라만치 느낀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해 이상하리라만치 어색한 여행을 와서 바라 본 이상하리라만치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 무엇하나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오는 것 하나없는 기이함, 하지만 크게 이질감이 들지않는 나름 담백한 이별이다.
처음 만났던 재즈바에 들어가서 그와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날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던 것처럼 이 곳에서 우리는 그 날 처럼 헤어지기로했다. 우리의 손에 든 프렌치 키스 와 루비 로맨스. 이름처럼 파리 에펠탑 앞에서 우리가 맞췄던 키스처럼 감미롭고 관능적이기도하며 루비의 색처럼 활기찼고 열정적인 6년이었다.
숙소로 들어와 혼자가 되는 연습을한다. 더 이상은 이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나를 잡아먹는 일이 없도록 지독하게 그리고 온유하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6시. 해가 뜨기 전 바다 앞 모래 사장을 걸었다. 슬퍼할 것도 원망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는 0의 수렴한 상태가 되어 공허함만이 자리를 잡는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였다. 그 간 끊어 온 담배를 입에 물고 눈을 감고 차가운 공기를 만끽하며 모든 감각들을 극대화 시켜 본다.
그런 말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눈이 주변 소음을 흡수해 더 조용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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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쓸어 오르는 파도소리
담배가 치익- 타 들어가는 소리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소리
모든것이 고요했다. 입 안에 모든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꽁초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머플러로 다시금 얼굴을 감고, 그가 자고있던 창문 발코니를 문득 바라보다가 발코니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서로 손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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