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부피가 없다
민이를 떠올릴 때면 구체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도, 목소리도, 심지어 얼굴도 희미하다. 그러나 아주 이상하게도, 민이가 내 곁에 있었던 ‘공기’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물잔 너머 퍼지던 웃음의 파장, 말없이 마주앉은 저녁 식탁의 온도, 잠든 얼굴 위로 비추던 형광등의 간접 조명. 그런 것들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민이의 눈은 깊지 않았다 대신 맑았다. 어떤 슬픔이든 잠시 담아뒀다 이내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 투명함. 나는 그 맑음이 두려워 자주 말을 아꼈고, 그녀는 그 고요함을 사랑이라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손등은 얇고 넓었는데, 감정이 지나갈 때마다 피 한 방울까지 흔들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손으로 내 어깨를 자주 눌러줬다.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어쩌면, 아주 어쩌면 서로를 둘러싼 풍경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창밖으로 지는 노을을 보며 함께 앉아 있던 시간들, 침대 옆 작은 조명 아래에서 나란히 책을 읽던 밤들. 우리는 각자의 고독을 묵인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정의했지만, 결국 아무도 구조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에 갇혀버렸다.
민이가 떠난 후, 나의 방은 빠르게 평평해졌다. 치워진 물건들이 있던 자리에 먼지가 들러붙었고 민의 흔적은 의도치 않게 ‘정돈’되어 갔다. 낡은 슬리퍼, 반쯤 닳은 립밤, 욕실 선반에 남은 머리끈 하나. 그런 것들을 치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걸 치우는 마음이 매일 늦게 퇴근해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밥을 씹는 것처럼 느껴졌던 날들이 있었다.
가끔 그리움은 물체처럼 느껴진다. 무게는 없지만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좋아했던 라디오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음악을 듣고 있던 그녀의 뒷모습. 창문 밖으로 바라보던 그 고요한 시선. 그런 것들이 불쑥 다가오면, 나는 무릎을 접고 앉게 된다. 시간이든 마음이든 무릎 꿇는 순간들이 있다. 민이가 떠난 건 여름이었지만, 나는 한겨울에 고장난 난방기처럼 남았다. 그때 이후로 사람을 새로이 좋아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누굴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했던 나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 쪽에 가까웠다. 어떤 감정은 반복되기 어렵다. 정확히는, 같은 무게로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건 운명이나 첫사랑 같은 말보다 더 냉정한 진실이었다.
지금의 나는 괜찮다. 다만 그 괜찮음은 건강하거나 평온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래된 통증을 달고 사는 사람처럼, 통증을 포함한 일상에 익숙해졌다는 의미다. 때로는 차가운 지하철 창에 이마를 기대고 있다가, 내 옆에 민이 앉아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늘, 텅 빈 자리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건 꽤 능력이다. 나는 그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 대가로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를 향한 감정이 사랑인지 후회인지 분간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아직도 ‘그날들’을 통째로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사라지지만, 시간은 머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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