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예인이 싫었다.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너무 쉽게 빛났다.


텔레비전 속에서, 휴대폰 화면 속에서, 사람들의 입방아 속에서,
심지어 장례식장 사진 한 장 속에서도 그들은 끝내 빛을 잃지 않았다.

산 사람일 때도 지나치게 빛나고,
죽은 뒤에도 지나치게 오래 주목받는다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었다.


물론 나도 안다. 이런 마음이 옳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타인의 삶을 질투한다고 해서
내 삶이 나아지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안다.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문장들,
남의 슬픔과 내 슬픔은 저울에 올릴 수 없다는 사실따위는
나도 안다. 지긋지긋 해서 넌저리 가 날정도 로 싫다.

그런데 사람은 옳은 말만 먹고 살 수가 없는법이다.


세상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서,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가 있고,
전쟁에 밀려 이름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법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병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뉴스는
그 모든 죽음을 제쳐 두고
한 연예인의 사망 기사에 더 오래 머문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죽음에도 조명이 비추어진다는 사실이 싫었다.
누군가는 죽어서 비로소 기사 한 줄도 얻지 못하는데,
누군가는 죽는 순간조차
전 국민의 애도 속에서 정리된다는 것이 싫었다.


기부도 그랬다.

물론 누군가를 돕는 일 자체를 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가끔
부자들이 가난을 덮는 방식이
너무 매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하루 세 끼를 걱정하며 살고,
누군가는 그 삶 위에 거액의 돈을 얹고
착하다는 칭찬까지 함께 가져간다.
나는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것은 당연한법이지만

봉사활동이니 봉사점수니 기부니

못사는 사람들이 잘사는사람들의 트로피가 되는게 싫다.

그 지랄을 해도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한데,
왜 칭찬은 늘 돈 있는 사람의 몫인지,
그걸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동안은
연예인이 싫다고 생각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풍경.


사람들의 동경과 사랑과 애정.
실수조차 자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추락조차 복귀라는 문장으로 복원되는 삶.


누군가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캠퍼스의 벚꽃 아래를 걷고,
좋은 술잔에 비싼 술을 따르며
청춘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발음하는데,


누군가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공장으로 들어가고,
회사로 들어가고,
먹기 싫은 소주를 억지로 넘기며
입안에 남는 비린 쓴맛으로
하루를 끝낸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운전해도
사과문 몇 줄과 자숙 몇 달이면 다시 얼굴을 내미는데,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한 잔도 못 마신 채
비 오는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를 몬다.

그 오토바이는
멋을 위해 타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타는 법일터다.


브레이크를 한 번 잡을 때마다
오늘이 무사히 끝날지 확신할 수 없고,
신호 하나를 건널 때마다
생계와 생사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는 걸 안다.


월 300.
보험금.
공과금.
카드값.


밀리면 안 되는 것들.
미루어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
삶은 늘 숫자로 먼저 찾아오고,
사람은 그 뒤에 천천히 닳아가는 현실이싫다.


참으로 막막한 일이다.

누군가의 청춘은
봄을 통째로 누리기도 전에 노동으로 입금되고,
누군가의 일생은
빛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한 채
먼지처럼 닳아 없어진다.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했다.

그런데 오래 미워하다 보니
나중에는 알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미워한 것은
연예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너무 밝은 쪽에 서 있었을 뿐이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그 빛이 아니라
그 빛 아래서 너무 선명해지는
내 삶의 초라함이었다.


봄이 오지 못한 내 청춘이 미웠다.

꽃필 일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내 일생이
비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언제 죽어도 몇 사람 빼고는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내 죽음이 서러웠다.


내가 정말 싫었던 것은
늘 찬란한 누군가가 아니라,
끝내 한 번도 찬란해지지 못할 것 같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쿠팡을 간다.


50만 원짜리 싸구려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물류를 나른다.


창고의 공기는 늘 탁하고,
형광등은 사람 얼굴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허리는 무겁고,
손목은 자꾸 저리고,
점심시간은 짧고,
하루는 길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참이슬 한 병을 집어 든다.

차가운 병목을 손에 쥐고 있으면
꼭 내 삶의 체온까지
유리병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다.


집에 돌아와
그 싸구려 술을 컵도 없이 들이켜며
나는 안주도 없이 내 비참을 삼킨다.


그리고 잠이 들기 전에
아주 잠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소원을 하나 빈다.


나도 한 번쯤은
빛나고 싶었다고.

아주 잠깐이라도,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제대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빛나고 싶었다고.


그러니 내가 싫어했던 것은
어쩌면 연예인이 아니라
세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세상이라는

말을 핑계 삼아

끝내 사랑하지 못한

내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