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과 정직하게 마주할 인간은 몇이나 될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 부터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특별하게 보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허영심을 넘어서 실천적 태도로 나아갈 경우
체제를 수용하는 인간에게 그 자는 견뎌내기 힘든 존재가 되버린다. 그러기에 카스가는 악의 주변부만을 맴돌 뿐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선민의식의 형태로 보일 뿐이다. 카스가는 본질적인 면에서 그저 중산계급의 평범한 경로를 밞아갈 뿐,
자신이 읽는 시집에서 장식물만을 탐닉하고 있었을 뿐, 그는 댄디함을 스스로는 성취낼 수 없는 스노브 였을 뿐이었다.
자신의 유니크함을 타락에서 발견하고 구원을 바라는 또다른 인물로 페트릭 베이트먼이 생각난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이다.
극중에서 베이트먼이 벌이는 살인 행각은 스릴러물의 클리세를 어느 정도 접한 관객에겐 허술한 점이 너무 쉽게 보인다.
그런 인물의 허접한 범죄 행위는 사실 사법영역에서 얼마든지 검거가 가능하다. 탐정이란 특수한 캐릭터가 굳이 등장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자신의 망상이 만들어낸 탐정이란 조역을 통해, 베이트먼은 비로소 빈껍질 뿐인 인간임을 자각한다.
그에게서 연쇄살인마란 정체성을 걷어내버리면, 그는 그저 부르주아 한량일 뿐이다. 세상에 대해서 어떤 생산적인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타락을 통해 기만의 굴레를 벗어나는 구원조차 도달하지 못했다.
아마도 카스키 타카오가 허울 뿐인 타락, 관념적인 악의 껍질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자란다면 자본과 명품으로 자신의 겉을 치장하는
껍데기 뿐인 공허한 정착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과연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누가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심연으로의 결단이란, 체제가 제공하는 안정과의 결별을 뜻한다
그래서 나 조차 생의 전반을 돌이켜봐도, 그저 주변부를 맴돌았을 뿐이다.
나에게 타락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학적 재료로 삼기 위해 타인의 삶을 억지로 끌어들여 갉아먹은 것일 뿐일 것이다.
누구도 치명적인 상처는 받지 않을 정도에서만 그쳤고, 그 뿐이다. 나는 나를 보존하기 위해 결국 진정한 절망에도
다다른지 못했고, 심연의 무게도 견뎌내지 못했다.
타카오 카스기에겐 자신을 넘어서는 외부의 동기라도 있었지만, 21세기 도시 문명을 살아가는 이들중 누가
사와 같은 인물을 만날 수 있을까?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잘 읽고 감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