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바람은 참으로 차가웠다.
빡빡머리여서 그런걸까?
내 맘이 착잡해서 그런걸까.
어지간히 추웠다.
처음접해보는 제식과 처음보는 유형의사람들
호통소리 처음해보는 훈련 사격 여러가지것들이 머리속에들어왔다.
정신없는 훈련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보이는도로는 참 가슴을 먹먹하게했다.
저 도로처럼 달리고싶다는 그감정
그감정이 참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
나는 눈물이 그리많은인물이 아니다.
할머니의장례식에서도 울지않았으니
사실 그때는 죽음이란걸 명확히 인지하기도전의
어린나이여서 그런걸수도있다
어머니의편지는 참으로슬펐다
아직도기억이난다
"벛꽃이 피어 봄이 왔지만 너가 옆에없으니 봄이 온거 같지않구나'
그한문장이 모라고 참으로 가슴을 구슬피 울렸을까
어차피자대가면 신병휴가를 나가면 되는것을
외박을나가면되는것을 알면서도 참으로 구슬프게했다
그렇게 훈련소를 끝마치고 자대를가니 선임이참으로많았다.
이름도 얼굴도 지금은 기억에 남지는않는다.
내가속한곳은 화기중대 부사관들이많은곳
그래서 그런가 참으로 거칠고 참으로바빳다
바쁘니 좋았다 잡생각이 나지않으니
하라는것을 하고 시키는것을하고 청소를하고 밥을먹고
일과가끝나면 담배를피러가 선임들에게 그날 못한것에대한 꾸지람을들으면되니
참 미운정이무섭다 밉지만 가슴속 끈끈한 전우애가 사람의마음에 한번남으니
맞맞맞선임이 전역할떄는 참 신기했다.
그리 무섭고, 그리 거칠고,
언제나 내 하루의 끝에 서서
한숨과 욕설과 담배 냄새를 남기고 가던 사람이,
끝내 군복을 벗고
그저 사회로 돌아가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쩐지 우스우면서도 몹시 허전하였다.
전역빵을 맞고도 웃고 있던 그 얼굴이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어제까지는 분명
내 생활관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
침상 정리가 왜 이 꼴이냐고 묻던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전우들과 사진을 찍으며
“야, 몸 건강히 있어라.”
따위의 말을 남기고 가니
사람의 위치라는 것은
계급장 하나, 날짜 몇 장으로
이리도 쉽게 뒤집히는 것인가 싶어 참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군대라는 곳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버티다가도
막상 그 사람이 사라지면
그 미움이 순식간에 공백으로 바뀌는 곳이라는 것을.
처음엔 그 공백이 반가울 줄 알았다.
그들이 다가야 내차례가 오는것 이니라.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원래 그리 단순하지 못한 법이라,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해방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늘 앉아 있던 흡연장 구석,
그 사람의 군번줄 소리,
그 사람이 습관처럼 내뱉던 욕설의 억양까지
괜히 귀에 맴돌았다.
그러니 참 우스운 일이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들이
막상 끝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니.
계절은 몇 번이고 바뀌었다.
겨울에 입대한 몸은
여름의 습한 공기를 지나
가을의 마른 바람을 맞고
다시 겨울을 맞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
하루가 도무지 가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신병이 들어오면 그의 관등성명을 듣고,
저 어설픈 경례와
저 억지로 삼킨 표정을 보며
속으로 옛날의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병 하나가 들어왔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눈빛이 몹시 불안한 아이였다.
아직 군복이 몸에 붙지 않아
옷이 사람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놈은 무얼 물어도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은 또렷이 했지만,
손끝이 자꾸 떨렸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문득 예전 화장실 창문 너머의 도로를 떠올렸다.
그 길을 따라
어디든 달아나고 싶었던 그날의 나를,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담배만 연거푸 피우던 어린 병사를 떠올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괜히 한마디 더 부드럽게 하게 되었다.
"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참 쉬운 말이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하루는
결코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점호 소리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하는법이고
이름이 불릴 때마다
별것 아닌 실수 하나가 하루 종일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는다.
분명 저녁이 오면 끝날 일인데도
낮의 꾸지람 하나가
밤까지 따라와
사람을 쓸데없이 작게 만든다.
그럼에도 지나간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모욕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피곤함도,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그 생활도
기어이 지나간다.
나는 그 사실을
군대에서 배웠다기보다
군대에 갇혀 어쩔 수 없이 체념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해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밖에 없어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익숙함의 얼굴을 하고
가슴속에 눌러앉는 것이다.
그러니 군 시절을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썩 믿지 못한다.
그 시절이 어찌 아름다울 수만 있겠는가.
춥고, 더럽고, 피곤하고,
자존심은 자주 상하며,
사람은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런 날들 속에서만 생기는 정이라는 것이 있다.
새벽 근무를 마치고
말없이 종이컵 커피를 건네주던 손,
비 오는 날 젖은 전투복을 함께 털어내던 순간,
휴가 복귀 후 몰래 챙겨온 것들을 나누어 먹던 밤,
그런 것들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는다.
사회에서는 별것 아닌 친절 하나도
군대에서는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아마 인간이 궁할수록
작은 온기에 더 쉽게 기대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가끔은 너무 지쳐
누가 내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기만 해도
괜히 마음이 풀어졌다.
가끔은 아무 일도 아닌데
어머니 생각이 났고,
가끔은 벚꽃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목이 메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유난히 젊었다.
몸이 젊었다기보다
마음이 서툴렀다.
서툴러서 모든 감정이 지나치게 크고,
서툴러서 아무 일도 아닌 말에 쉽게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애썼다.
군인답게, 사내답게,
그런 우스운 허세를 붙들고
눈물도 삼키고 외로움도 삼켰다.
하지만 삼킨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감정들은 늘 밤에 돌아왔다.
불침번 교대가 끝난 뒤의 침상,
소등 후 천장을 바라보는 몇 분,
혹은 흡연장 한구석에서
담배 불씨를 내려다보는 순간마다
낮에 삼킨 것들이 슬며시 올라왔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이제 와 불쌍하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들 그 나이엔
각자의 방식으로 어리석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했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때의 나는
참 많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매일을
어떻게든 넘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삶이란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대부분의 날은
눈부신 결심이나 거창한 승리보다
그저 하루를 끝까지 살아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
군대는 그것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었다.
멋도 없고, 낭만도 없고,
그저 오늘 할 일을 하고
욕을 먹으면 먹고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잠을 자고
또 다음 날을 맞이하는 곳.
그러나 사람은 그런 반복 속에서도
기어이 자기만의 의미를 만든다.
누군가는 전역 날짜를 세며 버티고,
누군가는 휴가를 기다리며 버티고,
누군가는 전우애 같은 말을 믿으며 버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저 오늘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자기 자신을 겨우 붙들고 버틴다.
나에게 군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면서도
잊히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서의 나는
참 작았고,
참 순진했고,
참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툰 인간이
분명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2월의 바람은 참으로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 속에서 시작된 시간은
결국 내 청춘의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그때 화장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그 도로를
나는 끝내 달리지 못했다.
도망치지도 못했고,
울지도 못했고,
그저 정해진 일과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면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를 품은 채
끝내 달리지 못하고,
대신 제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비겁한 일인지
성실한 일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절의 나는 분명히 그곳에 있었고,
추위와 욕설과 담배 냄새와 편지 한 장 사이에서
서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이
이제 와 문득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는 것뿐이다.
기형도 제대병 참고해봐라 게이야. 그나저나 내가 전역때 느낀 느낌하고 어찌 똑같네그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