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시 26분.
커튼은 안 걷었다.

걷으면
빛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오면
오늘이 정말 시작된 것 같아서.


시작된 하루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방 안을 새벽처럼 두었다.

휴대폰 알림.

없다.
확인했다.


다시 확인했다.
혹시 진동을 놓쳤을까 싶어
무음도 풀어보고
와이파이도 껐다 켰다.


그래도 없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처음엔
배터리 문제 같고,
그다음엔
신호 문제 같고,
마지막쯤에야
내 문제 같아진다.


밥은
어제 남은 김치.
전자레인지 2분.
차가워서
1분 더 돌렸다.

그 1분 동안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방금 일어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오래 포기한 사람의 얼굴 같았다.


입에 넣고
세 번 씹고
그냥 삼켰다.

아니,
씹은 척했다.

맛을 느끼면
오늘도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냥 목으로 넘겼다.


배를 채우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비슷해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전혀 다르다.

방바닥에
이력서 파일.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파일명 끝에 붙은
‘최종’, ‘진짜최종’, ‘최종수정’,
그런 말들이
내 꼴 같아서 웃겼다.


웃겼는데
소리는 안 났다.

이름, 나이, 공백.
그 줄만
자꾸 길어진다.

쓸 수 있는 건 적고
숨기고 싶은 건 많아서
문장은 짧아지는데
공백은 자꾸 늘어난다.


경력란보다
공백이 더 나를 잘 설명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친구 단톡방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사진 두 장.
회사 로고.
명함.
누군가는 출근했고
누군가는 자리를 얻었고
누군가는
자기 이름 뒤에 붙일 말을 만들었겠지.


나는 하트를 눌렀다.
취소했다.
다시 눌렀다.

너도 알지.
이게 응원인지
확인인지.

축하해, 라고 쓰면
너무 늦은 사람 같고
아무 말도 안 하면
너무 작은 사람 같아서
결국
빨간 하트 하나에
내 체면을 접어 넣었다.

진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진심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제일 비참하다.

남이 잘된 걸
축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소식 앞에서
작아지는 내 얼굴을
내가 먼저 봐버리는 것이다.


밖에서
택배 기사 벨 세 번.
나는 숨을 죽였다.

없는 척.
두 번.
한 번 더.

집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지 않을 때 나는
집 안의 모든 물건이
공범처럼 느껴진다.
냉장고 소리도,


멀티탭 불빛도,
신발장에 벗어 둔 운동화도.

문 앞에
상자 하나.

한동안
문틈만 보고 있었다.
저 얇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은 아직
사람들이 오가는 쪽이고,


안은
내가 점점 물건처럼 굳어가는 쪽 같아서.

이름은 내 건데
보낸 사람은 나다.

며칠 전에
잠들기 직전


충동처럼 주문한 것.
필요해서 산 것도 아니고
갖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고
그냥


며칠 뒤의 나에게
무언가 하나는 도착하게 해주고 싶어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도
택배 문자 하나쯤은
오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더 안 뜯는다.

상자를 뜯으면
그날 밤의 내가
얼마나 심심했고
얼마나 초라했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흉내를 냈는지
들킬 것 같아서.

기다린다는 건 원래
누군가를 향한 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나한테 뭘 보내놓고
그걸 문 앞에 두고


며칠째 못 열어보는 사람이 되었다.

낮 1시 26분.
커튼은 아직 안 걷었다.

방 안은 조용하고


휴대폰도 조용하고
내 이름도
이력서 첫 줄에서만 조용히 남아 있다.

오늘 한 일이라고는


김치를 데우고,
알림을 확인하고,
친구를 축하하는 척하고,
택배를 못 받은 척한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이 정도면 이미

하루를 다 써버린 기분이 든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상할 만큼 지쳤다.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더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