罪刑
신께 빌겠나이다.
이 모든 인과를
마땅해 할 의지를 얻길
그 의지로 인해
남은 생이 정당하기를
그 정당한 무력함에
굴종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바닥을 보며 걷는
추례한 자아가
자신이 디딘 곳 역시
길 임을 알게 되기를
신께 간청하나이다.
이 늙은 양은
숭악하기 그지 없어
제 머리 위에
곧은 뿔을 매달고
진창을 뒹굴어
검은 칠을 덧대었으니
뒤집어 쓴 가림으로
가림이라 믿은 것을
들어 주시옵소서.
고해 하옵니다.
그리하여
덧댄 뿔은
보이는 것을 찌르고
덧댄 검칠은
기대는 곳에 자국을 남겼으니
단두대의 정면에서
만물의 주격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당신의 앞에 사죄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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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염된 뿌옅은
어둠 안이지만
아주 작게 빛나는 별이
잘 보면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걸어놓인 것들 중의
너무나 흐린 작은 점이지만
비치는 작은 빛이 있는 것은
그것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잘 보고 따라오라는
일부러 아주 작은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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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음 하나씩을
만들어 갈 적에
변하여 스러질 것을 걱정하여
순리로 그것을 대체하였음에
모든 만들어진 것은
그것을 따를 뿐이니
그 꼴
그대로 살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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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간이 안가는 비집는 숨길을
찢어 울리는 버스럭 소리와
그 길에 흐르는 거친 숨결
이내
그늘진 달빛을
치켜세우며 찔러낸 것은
검붉어 더 검어진 얼룩이
주둥이를 뒤덮은
길게 찢어진
검은 눈동자와
뒤덮어 가득 채운
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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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그리 바삐 가십니까.
밤이 늦었는데 쉬시질 않고요.
내 꼴이 안보이는가?
말이 통하는데 꼴을 보아 무엇합니까.
말이 거슬린다.
한창의 대화를 죽여 끊으실 것입니까.
그 혓바닥이 길다.
그래도 가릴것을 가려 먹으려 합니다.
죽겠다 덤비는 거냐.
죽으려 순리에 맞춰사는 짐승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승복 채로 발겨 펼쳐놓겠다.
허면, 그 후의 허기는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밝아진 날에, 시장끼가 일면 다시 찾아오십시오.
비록 가려 먹어 성에는 차지 않을 것이나,
그럼에도 거스르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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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잔물로 주둥이만 씻어내
몸은 검고 주둥이는 허연 짐승
초원의 가장자리에서
한참을 주저하다
겨우 한 발 올려
고개를 수구려
풀잎을 질겅이고
씻기는 검은 자욱이
눈가에 흐르며 바래진다
직송(直送)
미끼를 물어 걸린 짐승아
무엇에 그리 서러히 우느냐
미끼인 줄 몰랐더냐
알아서도 물겠더냐
물 것을 꿰며
울음은 안들렸으니
생것인 채로
우느라 숨을 붙여라
직매 (直賣)
이것은 바로 직전까지
날 것이기에
싱싱함은 당연하고
날로 바로 잡수시면
육질이 그대로 살아
감칠맛이 생생하여
또한 탈이 안나니
지금이 아니면
잡숫지 못합니다
하하,
당연히 고생했으니
당연히 만족하심이
당연히 옳습니다
도살 1 (屠殺)
숨을 틔워 예까지 왔으니
주저할 것 없고
우느라 먼저 죽을놈이 아니니
그대로 살을 뜯어라
꽥꽥 우는 것이야
원체 그런 꼴이니
꼴 답다 뜯어라
도살 2 (屠殺)
정 그러면
저 눈은 보지 말아라
저것이 원망할 것은
비단 네 하나뿐은 아니며
너와 같은 눈이 아닌
그저 독기만 오른 것이니
저밀어 떠낸 것에 감탄하며
그저 흡족해라
도축(屠畜)
잠깐, 잠깐 멈춰보시오.
막 시작할 참인데, 뭐요?
선생이 사진을 두 장 찍어오라 하시었소.
곧 죽을 놈 사진은 왜 찍소?
선생이 말씀하시길
꼴이 좋아 마음에 드니
한장은 손님에게 주고
한장은 액자에 걸고 싶다 하시었소.
참 별났소.
두번은 할 말이 아니오.
다음 꼴이 되기 싫으면 말이오.
큼. 얼마나 걸리오?
우는 소리에 고막이 터지겠소.
참아보시오. 참으로 아쉬워 박제한다 하시니.
그리고 행여, 다음에 올라오면 꼭 악을 지르시오.
얼른 하시오.
찰칵.
찰칵.
되었소.
남은 건 알아서들 하시오.
자아,
얼른 끝내면 밥 먹을 시간이 맞겠다.
삐익 - 삑 -
또?
네.
뇌의 신경 단위
전 부위 활성화가 관측됩니다.
감각쪽도?
네.
참 볼 때마다 신기하지.
어떻게 통에 들어가 저러는지.
그걸 알자고 저희가 있는거 아녜요?
흐.
그 책임감이 좋아 내가 옆에 두지만,
쓰일 일이 없으니 자네가 아깝구만.
쭉 관찰하다 보면 유의미한 정보가 나와주지 않을까요?
봐.
저 통에 담은 연질 덩어리가
무슨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겠어.
스스로 덜덜 떨 수도 없이 그냥 둥둥 떠있을 뿐인데.
라임 맞춘건데 어때?
아아, 그렇게 노려보지는 말아.
나도 알아.
'살아있는'.
근데,
진짜 맞겠어?
결과가 보여주잖아요.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그래,
그래서 자네가 말한 표현을 빌려서
'유의미' 하냐는거지.
...
그래도 사고하는 인간입니다.
그렇지,
사고만 하는,
혹은 사고만 해야하는 인간.
읏차.
잘 보고 있으라고.
'사고만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배가 고파지면 밥을 먹자고
점점 죽어가는 육신을 이끌어야 하거든.
다녀오면 교대해줄게.
...네. 먼저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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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순리가 방종을 빗대어
도피를 일삼으니
죄로 통에 가두었으나
네 탄성이 이 앞에 닿아
참으로 기특히 여기니
그 죄형을 가벼이 할 것이다.
네 형의 마침을
마침 단 일억개로 허할 것이니
네가
읊조리고 토해내고 게워내며
찍는 마침의 수를 헤아려
애써 필사(筆寫)로 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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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아.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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