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식탁>


60대에 접어든 뒤에도 퇴직하지 않은 그는,

자신이 노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하루도 빠짐 없이 테니스를 치며 몸을 관리하고,

주말에는 아내와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별 것 아닌 일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취업이 안 되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될 일 아닌가.

지하철 경로우대석에 앉아 있던 그는, 앞에 서 있는 청년을 보며 그런 생각을 잠시 떠올린다.


두 달 만에 아들을 보러 가는 길이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자 그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청년들과 아들을 겹쳐 떠올리던 그는, 어딘가 언짢은 마음에 생각을 거둔다.

지하철 문이 닫힌다.


테니스를 오래 쳐온 그는 무릎 통증을 달고 산다.

수많은 계단 옆,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엘리베이터에 탄 그는,

무릎에 손을 대려다, 수술 자국에 닿는다.

나이쯤은 별거 아니다. 


단지 이놈의 무릎만 아니었으면 동호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잠시 스친다.


그는 요금을 내지 않고 개찰구를 지난다.

미세하게 절뚝이는 걸음으로, 모임 장소를 향한다.













지하철에 도착한 청년은 사람들 틈 사이로 들어가는 행위가 낯설게 느껴진다.

몇 년간 지하철을 탈 일 없이 차량으로 이동해왔기 때문이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요즘, 서서 가려니 더 무기력해진다.


며칠 전 사고만 없었어도 편하게 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날은 눈이 많이 왔다.

시속 30km도 내기 힘든 길이었다.


그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새벽까지 일을 이어가던 날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


비싼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한 그는

두 달째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멍하니 투명한 창문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창문에 반사된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 같이 비슷한 옷이다.

자세와 말투까지 닮아 있다.


그는 그런 것과는 다른 길을 택해왔다.

돈을 쫓지 않고 순수예술을 하겠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작년, 그는 주식 투자로 전재산을 날렸다.


그는 종목을 고를 때

재무제표를 넘기고, 차트를 오래 들여다봤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지하철에서 내린 그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잠시 보고서는

텅 빈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올라가며 왼편의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무기력했던 그였으나 왜인지 더 보폭을 늘려본다.


2번 출구로 나온 그는 가족 모임 장소가 어디인지 잠시 헷갈린다.

방향 감각이 좋던 그였다.

불현듯 도시가 지나치게 커보인다.


약속시간은 가까워져가는데

그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있다.










언뜻 닮아보이지 않는 모녀가 집에서 같이 나온다.  

약속시간이 촉박하니까 택시를 타자고 딸이 말해보지만  

엄마는 뭐하러 돈 낭비하냐며 버스를 타자고 한다.  


결국 딸은 군소리 없이 따른다.  


엄마는 버스를 기다리며 만원 가량의 돈을 번 것만 같다.  

5분 전 확인했던 주식 앱을 다시 열어본다.  

이내 뭉쳐 있던 어금니 쪽 턱 근육이 조금 풀어진다.  


버스를 기다리던 중 동년배의 사람들 대여섯 명이 정거장에 도착한다.  

주변 사람 신경 쓰지 않은 채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그들을 보며,  

그들이 교양 없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과 다른 지점을 본다.  


그녀는 60대가 되었어도 여전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지 못한다.  

웃음소리 때문만은 아닐 텐데,  

유독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렵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주로 벙찐 표정으로 본다.  

잘 불러서 그런 거라 여겨왔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렇다기엔 반응이 너무 없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번 뒤로 그녀는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는다.  


따분해진 그녀는 딸에게 농담이랍시고 실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짧게 끝낼 생각이었지만, 말은 계속 이어진다.  


딸의 얼굴을 거의 보지 않은 채, 자신의 말에 집중한다.  

딸은 몇 번 맞장구를 치지만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않는다.  


엄마는 옆자리 사람들의 소란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딸은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직장에서 남은 일들을 떠올리고,  

자기계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한다.  

줄 서 있던 그녀 앞에 어떤 여자가 새치기를 한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줄을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버스에 한 명씩 올라타며 비어 있는 좌석에 앉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이번이 자신의 차례다.  

예정대로 앉아 있다는 사실에 퍼즐이 맞춰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만 자리가 좁아,

엄마와는 서로 떨어져 앉는다.


언제 엄마의 말이 끝났는지 떠올려보려다,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듯 창문 밖을 본다.  


신호등이 바뀌고, 차량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일정한 차선 안에서 흐르는 그 움직임은  

그녀에게 알 수 없는 평온함을 준다.










둥그런 식탁이 중앙에 놓인 채 네 가족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식사할 때마다 늘 소식을 강조했고 이번에도 영락없었다.

그는 14년 전쯤 동호회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학벌이 좋고 자산이 많은 중소기업 대표였다.

이후 그는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 사람의 말을 따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아들은 늘 겪던 일임에도 매번 짜증이 치미는 것을 참기가 어렵다.

하다하다 아버지는 대표가 추천한 물까지 따라 하며, 이 물을 먹어야 더 건강해진다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아들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자, 그는 위가 안 좋았었는데 그 브랜드의 물을 먹고서부터는 멀쩡해졌다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이어서 그는 아들에게 요즘 일은 어떠냐고 묻는다.

톤은 어딘가 일정했다.

아들은 몇 초 전과 달리 약간은 의기소침해져 늘 똑같다며 얼버무린다.


자신보다 훨씬 잘 먹는 부모를 보며,

그는 자신이 더 나이든 느낌을 받는다.

분명 더 젊었을 때보다, 지금의 그들이 더 잘 먹고 건강해 보인다.

경제적으로 잘 풀린 뒤부터였을까.


허무맹랑한 말을 자주 늘어놓는 부모였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은 듯 보였다.


뷔페에서 남들이 잘 고르지 않는 음식만 담아온 그는

자신이 고른 음식조차 그들보다 덜 먹는다.


분명 원형의 식탁인데도, 어쩐지 딸은 가장 구석에서 먹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본 그녀의 표정만큼은 안정되어 있다.


가족이 모이면 늘 그렇듯 가장 많은 말을 하는 건 엄마다.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이야깃거리를 끝도 없이 풀어낸다.


이번 이야기는 친척 이야기다.

언니에게 몇 번이나 돈을 빌려줬음에도 감사는커녕 자신을 무시한다며, 흥분 섞인 말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선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무언가를 내뱉는다.

딸은 호응만 할 뿐, 엄마의 기분에 반하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아들은 귀를 닫은 채 음식을 가지러 자리를 비운다.


다시 자리에 앉은 아들은, 여전히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아버지와 딸과는 다르게 사안을 정리한 뒤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자신의 잘못을 명확히 지적받은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으나 당장은 화내지 않는다.

다만 흥분한 상태로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질 뿐이다.


그녀는 눈을 부라리면서도,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통쾌함이 깃든다.

기분 나쁘게 말하는 아들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반박하기 어려운 말을 한 사람 또한 아들이었다.


주변 사람 아랑곳하지 않고 시끄럽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아들과 딸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은 평소 엄마가 깔깔거리는 아줌마들을 욕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딸은 태엽이 감긴 시계 초침처럼 움직인다.

알람이 울리면 새로운 음식을 가지러 가고, 다시 돌아와 앉는다.


그런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정해진 수순을 따르듯.

좋은 학벌에 준수한 능력을 가진 예비 남편과 만나고 있는 그녀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화의 흐름은 딸의 결혼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적게 말하는 건 딸이고, 엄마는 일방적인 말을 이어간다.


주변의 다른 식탁들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돌아가는 식탁의 방향만 다를 뿐.


모두가 식사를 마친 뒤,

아버지는 오늘도 가장 늦게 수저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