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


죽여달라면 죽일 수 있었다.

죽어달래도 역시 죽어줄 수 있었다.

그 목을 베어달래도 베어줄 수 있었고,

간을 내어달라면 내어줄 수도, 

눈을 모조리 파내어 달라면 그래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사람은 내게 없었다.

나의 착각속에서 만들어진 존경과 애정이었다.

고역 속에 살아가는 나에겐,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허영심을 부추기며 나의 더럽혀진 내면 따윈 보기좋게 포장했다.


가끔 현실을 깨달을때면, 환멸감 속에 울부짖으며 밤을 지새웠다.

이렇게 얽히고설키다 보면 언젠가는 내 인생도 끝이 나리라 생각했다. 


방아쇠를 당긴다. 눈앞이 점점 비릿한 핏빛으로 물든다.

난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미 나의 동아줄은 썩어버렸다.

끝나지 않을것같던 고난도, 내 인생도 결국 결말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