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애가 언제야?"


흔히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젠 기억도 안 나."라고 대답하고는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규약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규약을 어기는 자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지위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해 짠 숨을 소주로 넘기며 대답했습니다.


"이젠 기억도 안 나."

입꼬리에 쓴 웃음을 슬쩍 걸쳐 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잊지 않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만났던 그녀를 말입니다.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같은 원리로 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좋은 기억입니다.


그녀는 예쁜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조그만 키에 낮은 매부리코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가슴도 골반은 흔적 기관처럼 남아있고 피부에는 항상 잔잔한 각질이 서리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햇살보다도 맑은 미소와 풍경(風磬) 소리보다도 청아한 웃음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검은자위는 너무나도 크고 검어서 두 눈을 똑바로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머릿결이 좋지는 않았지만 빗자루로 써도 될 정도로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끔 농담으로 우리의 아이는 탈모 걱정은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녀는 이미 들은 농담일지라도 다시 벨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녀는 불평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불평이 없을 수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버스 비조차 아껴야 했던 나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날씨를 극복할 만한 돈이 없던 우리의 데이트는 항상 날씨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여름에 우리는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으며 취업 공부를 하는 나를 구경했습니다.

도서관은 정숙의 공간입니다.

그 안에서 뱉어지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외출이 용이한 봄과 가을에 우리는 선유도 공원에 갔습니다.

한때 서울 시민의 식수를 책임지던 골조를 보며 우리는 화석과 폐허의 유사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가장 빛나는 기억입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우리는 반지하 단칸방의 눅눅한 장판 위에 요를 깔고 함께 누웠습니다.

흘러내린 빗자국에 누렇게 번진 벽지 아래에서 우리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방구석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는 곰팡이의 포자들이 자욱했습니다.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를 피해 우리는 서로의 품속으로 더 깊이 다이빙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매부리코에 내 코를 비볐습니다.

그렇게 땅보다 낮은 곳에서, 우리는 오래된 이불을 함께 덮고 한 쌍의 바다사자처럼 서로의 정원을 헤엄쳤습니다.


지금 그녀는 없습니다.


죽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삶에서 사라진 것이 죽은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상술했듯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내 사회에서의 상실은 존재론적 상실과 같습니다.

이제 그녀는 나의 기억, 그리고 술을 아주 많이 먹으면 들리는 환청 속에만 살아 있습니다.


땡그랑-

뒤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기어코 뒤를 돌아보는 서글픈 짓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역시 잔뜩 취한 아저씨 두 분이 고깃집의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였습니다.


기대감에 서리가 하얗게 앉습니다.


저는 취직을 했습니다.

더는 곰팡이가 잔뜩 핀 지하 단칸방에 살지도 않고, 버스비가 아까워 한 시간을 걸어다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함께했던 그녀는 내 인생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따라 귀에 풍경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