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와 피곤에 쩌든 몸을 이끌고, 공터를 나섭니다. 남들도 똑같은 삶을 살겠거니, 현관문을 열면 칠흑같은 암흑과 싸늘한 공기만이 반겨주는 보금자리에서 피로를 덜겠거니, 생각하며 오늘도 눈을 뜬 채 하루를 보냈습니다. 반겨주는 이가 있는 집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나 모르게 잊어버린 지 채 몇 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오늘만큼은 싸늘한 공기를 맞기 싫어서, 칠흑같은 어둠에 내 몸을 던져내기 싫어서, 유리문을 나선 뒤 반대로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목이 타 가방 속에 든 볼품없는 짐 속에서 물병을 꺼냈습니다. 동네 커피 집에서 준 보온 효과도 없는 싸구려 투명 물병은 반투명 물병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늘 한 점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 철근이 쌓이는 소리와 흙먼지만 날려대는 현장에서 타는 목을 축여주던 물병에는 상처만 늘었고, 제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며 반짝이던 몸은 상해 버렸습니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 보니 사람들이 북적이는 버스 터미널이 보였습니다. 저마다의 크기에 형형색색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으로 채워진 단칸방이 아닌, 탁 트인 곳에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일급은 내일 오전에서야 들어옵니다.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헤지고 헤진 시장 표 싸구려 지갑을 열어 보니 오천 원 짜리 지폐 한 장, 그리고 천 원짜리 지폐 석 장. 당장 내 몸을 좌석에 뉘여 어디론가 떠날 만큼의 돈도 부족했습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창구 앞에 섰습니다. 오천 원 짜리 지폐 한 장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며 이걸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가는 표를 달라고 했습니다. 남은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은 굶주린 배를 달랠 마지막 희망입니다. 창구 속 직원은 컴퓨터를 들여다 보더니 표를 한 장 끊어 내밀었습니다. 표 속에 쓰여진 행선지는 속초였습니다. 최대한 흙먼지를 털어낸 후, 탑승장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흙먼지를 털어낸다고 털어냈지만 아직 더럽기만 한 나를 보던 버스 기사의 표정이 좋지 못했습니다. 처음엔 큰 상처였지만 이런 표정도 이제는 익숙해져 갑니다. 좌석에 몸을 뉘이자마자 눈 앞이 검은 색으로 변했습니다. 오늘의 피로가 몸을 집어 삼켰습니다. 

눈을 떠 보니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터미널에서 십여 분을 걸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열한 시 사십 분. 속초항 앞에 다다랐습니다. 싸늘하고 퍽 시커먼 것은 제 단칸방이나 다를 것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매트리스에 몸을 뉘여 소주 한 병을 친구 삼아 잠에 들어야 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파도 소리만 들리는 시커먼 바다만을 멍하니 바라보다 바다가 보이는 근처 편의점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이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건 컵 라면 큰 사발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따듯한 컵라면 하나로 굶주린 배를 달래며 시커먼 바다를 봅니다. 오늘만큼은 남들과는 다른 하루를 살았다고,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좁고 어두운 단칸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얼마 남지 않은 면발 조각과 건더기를 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