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鳶勝負
<싸움에는 이겨야 멋이라>는 말은 있읍지요만 <져야 멋이라>는 말은 없사옵니다. 그런데, 지는 게 한결 더 멋이 되는 일이 陰曆 正月 대보름날이면 이 마을에선 하늘에 만들어져 그게 1年 내내 커어다란 한 뻔보기가 됩니다.
勝負는 끈질겨야 하는 거니까 山海의 끈질긴 것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긴 깊은 바다 속의 민어 배 속의 부레를 끄내 풀을 끓이고, 또 勝負엔 날카론 서슬의 날이 잘 서 있어야 하는 거니까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새감파리들을 모아 찧어 서릿빨같이 자자란 날들을 수없이 만들고, 勝負는 또 햇빛에 비쳐 보아 곱기도 해야 하는 것이니까 고은 빛갈 중에서도 얌전하게 고은 梔子의 노랑 물도 옹기솥에 끓이고, 그래서는 그 勝負의 鳶실에 우선 몇번이고 거듭 번갈아서 먹여야 합죠.
그렇지만 選手들의 鳶 자새의 그 긴 鳶실들 끝에 매달은 鳶들을 마을에서 제일 높은 山 봉우리 우에 날리고, 막상 勝負를 겨루어 서로 걸고 재주를 다하다가, 한 쪽 鳶이 그 鳶실이 끊겨나간다 하드래도, 敗者는 <졌다>는 嘆息 속에 놓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解放된 自由의 끝없는 航行 속에 비로소 들어섭니다. 山봉우리 우에서 버둥거리던 鳶이 그 끊긴 鳶실 끝을 단 채 하늘 멀리 까물거리며 사라져 가는데, 그 마음을 실어 보내면서 <어디까지라도 한번 가 보자>던 新羅 때부터의 한결 같은 悠遠感에 젖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의 生活에 실패해 한정없는 나그네 길을 떠나는 마당에도 보따리의 먼지 탈탈 털고 일어서서는 끊겨 풀려 나가는 鳶같이 가뜬히 가며, 보내는 사람들의 인삿말도 <팔자야 네놈 팔자가 상팔자구나> 이쯤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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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지연승부를 베껴적어보았다. 한국 사회가 경쟁 사회이고 그 경쟁이 적나라하게 잘 드러나는 분야가 교육이고 입시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은 학생들이 고르는 전공이 의학이다. 나는 치의학과에 다닌 적이 있는데 마을에서 공부 잘한다 하는 이들이 다 거기 모여앉아 있었다. 나에겐 늦게 찾아온 사춘기이자 방황기였을까... 학교를 멍하니 다니다 휴학을 반복하고 또 학교를 떠나면서 나는 내 처지가 연들의 승부에서 진 끈 떨어진 연과 같다고 느꼈다. 승부에서 졌을지언정 분명히 그때 나는 자유를 얻었다. 100이라는 숫자에 수렴해야 하는 답안지의 요청에서 자유로워졌고 1이라는 수에 수렴해야 하는 등수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의 메시지는 내가 철학적 진리탐구의 여정에 나서게 됨과 동시에 수많은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자유롭게 걷게 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서정주의 이 시를 끝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우리 교육 제도에서 번민하며 탈락하는 몇몇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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