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레트로 열풍이 부는 추세다
줘도 안 쓸 카세트 테이프에 향수를 느끼고,
버그투성이 고전게임에 하루종일 몰입하고,
화질도 음질도 뚜렷하지 않은 흑백영화에 느닷없이 눈물을 삼킨다
하지만 도파민에 쩔어 사는 현대인들이 즐기기엔
하나같이 호흡이 길고 무른 것들 뿐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사물 자체보단 사물이 건드리는 기억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철 지난 축음기에 LP 판을 올리고
기계식 타자기로 쓴 짧은 서정시와 함께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음미하는
시대를 회상한다기 보단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들
얘네는 확실히 정신병자가 맞다
아버지 세대도 안 썼을법한 구식 기구들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용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아마 지독한 인스타 중독이렸다
고전적 사물의 진정한 의의는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 혹은
오랫동안 놓쳐버린 기억의 방아쇠
순수했던 나의 삶에 대한 회고
그러나….
참 편한 세상이다
누워서 배달만 시키면 의식주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르거나 헷갈리는 과업은 Ai에게 떠넘긴다
연애를 할 필요도 없다
VPN을 켜고 자위하면 그만이다
이 작은 사물이 내 삶을 다 떠먹여준다면
내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
내가 온전히 나로 남아있던 때가 언제인가?
그리운 것들이 있다
손을 갖다대면 전기가 올라오던 브라운관 TV
이따금 애들 정강이를 부수던 실팽이
허구한날 늘어지곤 했던 비디오테이프의 잡음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삶이 바쁘기에 고전을 즐기고
삶이 무료하기에 고전을 찾는다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잃어버린 주체성과 생동감을 되찾기 위해
하늘같이 높았던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가장 어린 시절의 순수를 되찾기 위해
흐름에 저항하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고전에 집착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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