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부상 박돌은 두려움이 없는 사내였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을 좀처럼 무서워하지 않았다. 여우가 둔갑해 사람의 간을 파먹는다느니, 밤길에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물귀신이 대답한다느니, 달 없는 밤에 처녀귀신이 흰 소복을 끌고 논둑을 건넌다느니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대개 술기운 오른 주막 손님들의 혀끝에서나 기세 좋게 살아 움직였다가, 닭 우는 새벽이 오면 김 빠진 막걸리처럼 힘을 잃곤 했다.
박돌이 두려워하는 것은 늘 살아 있는 것들이었다.
굶주린 호랑이, 칼 쥔 산적, 말 한마디에 장돌뱅이 하나를 옥에 처넣을 수도 있는 고을 아전, 그런 것들. 귀신이야 소문 속에서만 사람을 잡아먹지만, 저런 것들은 낮에도 사람을 해쳤다. 게다가 이빨이며 발톱이며 인장이며, 하나같이 몹시도 실질적이었다.
그러니 그날도 박돌은 주막 마루 끝에 걸터앉아 마른 어육 한 점을 질겅거리며, 손님들이 떠드는 말을 시큰둥하게 들었을 뿐이었다.
“거긴 넘지 마시오.”
주모가 술상을 거두다 말고 혀를 찼다. 눈가에 잔주름이 많은, 말수 적은 여인이었다. 괜히 겁을 주려고 꾸며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어느 고개 말이오?”
박돌이 묻자, 주모는 창호 바깥의 산등성이를 턱짓했다.
“호식령.”
말이 잠깐 끊겼다. 주막 안이 쓸데없이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 낄낄대며 곰방대를 돌리던 사내들도 그 이름 앞에서는 눈길을 피했다.
“그 고개만 넘으면 마을 하나 나온다더군.”
박돌이 태연하게 말했다. “산 아래 마을이면 하룻밤 묵고 내일 장사길 잇기 딱 좋지 않소.”
“딱 좋기는.”
구석에서 술을 마시던 늙은 나무꾼 하나가 낮게 코웃음쳤다.
“낮엔 마을이지. 해 지고 나면 아닌 게 되지.”
다른 손님 하나가 얼른 그의 팔꿈치를 툭 쳤다. 그러나 늙은이는 이미 말문이 열린 뒤였다.
“거긴 예부터 호환이 잦았어. 사람 하나씩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피 자국도 없고 발자국도 없고. 잡아먹힌 건지, 달아난 건지, 아무도 몰라. 그래서 이름도 호랑이마을이지.”
“호랑이마을이든 범굴마을이든, 사람 사는 곳이면 물건도 팔리고 밥도 있겠지.”
박돌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곁에 세워 둔 지게에는 바늘쌈, 비녀, 빗, 놋숟가락, 색실, 부적주머니, 아이들 엿까지 자잘한 물건들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떠도는 장사꾼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귀신보다 빈 주머니였다.
주모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만 떠나는 길에 찬밥덩이와 마른 장조림을 보자기에 싸 주며 말했다.
“해 지기 전에 넘지 못하면, 길가 당산나무 밑이라도 피해서 밤을 쇠우시오. 절대 낯선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박돌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내가 어린애인 줄 아오? 귀신이 오라면 넙죽 따라가게?”
그러자 주모는 한참 동안 대꾸하지 않다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귀신 말고 사람이 부르면 더 잘 따라가지.”
그 말이 웬일인지 오래 귓가에 남았다.
호식령은 생각보다 험했다.
산길이 가파른 건 익히 보아 온 일이었다. 문제는 하늘이었다. 정오 무렵만 해도 옅은 봄볕이 비치더니, 고개 중턱을 오를 즈음부터 먹장 같은 구름이 몰려왔다. 바람이 먼저 달려들었다. 산등성이의 소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젖히며 우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꼭 먼 데서 짐승 무리가 으르렁대는 것 같아, 박돌은 무심코 걸음을 멈추었다.
이윽고 비가 쏟아졌다.
봄비라기엔 지나치게 차고 거칠었다. 빗줄기는 삽시간에 길을 지워 버렸다. 발밑의 흙이 질척해졌고, 지게끈은 어깨를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박돌은 욕지거리를 삼키며 바위 밑에 잠시 몸을 붙였지만, 산바람이 비를 사정없이 들이쳐 소용이 없었다.
“재수도 더럽게 없지.”
그는 젖은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해는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으되, 구름과 안개가 산을 통째로 덮어 세상은 벌써 초저녁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이대로 길을 잃으면 밤 산에서 꼼짝없이 묶이게 생겼다. 그쯤 되면 귀신이 아니라 진짜 범이 문제였다.
박돌은 다시 지게를 추슬러 메고 걸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안개 너머에 불씨 하나가 어른거렸다.
처음엔 번갯불의 잔상인가 했다. 그러나 그 불빛은 꺼지지 않고 가만가만 흔들리며 산길 아래에 머물렀다. 누가 초롱을 들고 있는 것처럼.
박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거, 거기 누구요!”
대답은 없고, 다만 초롱불이 한 번 흔들렸다. 바람 속에서도 신기하게 꺼지지 않았다. 박돌은 잠시 망설였다. 주막 주모의 말이 스쳤다. 낯선 소리를 따라가지 말라 했지, 낯선 불빛도 따라가지 말라 하진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했을지도 몰랐다. 비와 술김에 그쯤은 놓쳤을 수도 있었다.
초롱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분명 사람의 손에 들린 모양새였다. 희뿌연 안개 사이로 가는 손목과 치맛자락이 언뜻 드러났다.
여자였다.
박돌은 한숨을 쉬고는 발을 옮겼다. 이런 산중에 혼자 선 여자라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고개 위에서 밤을 맞는 것보다는 나았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길을 물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여인의 모습이 조금 또렷해졌다. 희미한 초롱불 아래, 옅은 소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머리는 단정히 틀어 올렸고, 젖은 머리칼 몇 가닥이 뺨에 붙어 있었다. 얼굴은 희고 얌전했으나, 어딘가 핏기가 모자랐다. 비를 맞고도 숨이 가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아씨, 이 고개 아래 마을이 있소?”
박돌이 묻자, 여인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꼭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이었다.
“응.”
목소리는 낮고 맑았다. 비바람 속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멀지 않아.”
“길이 어딘지 잘 안 보이니, 알려 줄 수 있겠소?”
여인은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초롱불이 빗속에서 작은 해골처럼 창백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미끄러운 산길을 어찌 그리도 익숙하게 내려가는지,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았다. 박돌은 지게가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뒤를 따랐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박돌은 몇 차례 미심쩍은 눈으로 여인의 등을 보았다. 이상한 데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일부러 발걸음을 늦춰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인은 돌아보지 않고도 알아차리는 듯, 걸음을 늦추어 그가 따라붙기를 기다렸다.
“이 근처 사람인가?”
박돌이 물었다.
“응.”
“마을 이름이 정말 호랑이마을이오?”
잠시 뜸이 들었다. 빗소리 사이로 여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들은 그렇게 불러.”
“그럼 아씨는?”
그제야 여인이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초롱불이 반쯤 그녀의 뺨을 비추고, 반쯤은 어둠에 잠기게 했다.
“우린 그냥 마을이라 해.”
말끝이 이상하게도 차가웠다. 집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처럼.
얼마 뒤, 산길이 갑자기 탁 트였다.
박돌은 무의식중에 숨을 삼켰다.
안개와 빗발 너머, 산 아래로 마을 하나가 내려다보였다. 크지 않은 촌락이었다. 검은 기와와 초가지붕이 서로 비비듯 붙어 있었고, 골목마다 물안개가 자욱했다. 집집마다 등불이 하나씩 켜져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그 불빛들이 사람 사는 온기를 주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꼭 캄캄한 산속에 박힌 짐승들의 눈 같았다.
마을 어귀에는 크고 뒤틀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가지마다 무엇이 잔뜩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는데, 처음엔 버선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하얗게 젖은 그것들은 천조각이 아니라 수많은 금줄과 부적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비에 젖은 장승 하나가 서 있었다.
장승의 입가엔 붉은 칠이 번져 있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간 모양이 꼭 피를 흘린 것 같았다.
“저기가.”
여인이 말했다.
“호랑이마을이야.”
박돌은 그제야 웃으며 한마디 하려 했다. 덕분에 살았소, 뭐 그런 상투적인 말을. 그러나 입을 열기 전에 문득 깨달았다.
산길 내내 여인의 발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빗길이라면 물 튀는 소리라도 났어야 했다. 젖은 흙을 밟는 눅진한 소리라도.
박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초롱불이 바로 곁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여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나, 어느새 그녀의 소색 치맛자락 아래로는 젖은 버선도, 진흙 묻은 신도 보이지 않았다. 초롱불이 비추는 자리에 그림자 또한 없었다.
그 순간, 여인이 처음으로 박돌을 향해 웃었다.
“늦기 전에 들어가.”
그 웃음은 이상하리만치 예뻤고, 이상하리만치 슬펐다.
“이번엔 길을 잃지 말고.”
박돌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지 못했다.
산 아래 어디선가, 짐승 우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호랑이 소리였다.
박돌이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때, 여인은 없었다.
바람에 초롱불이 꺼진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꺼질 만한 불빛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제 곁을 비추던 희미한 등불도, 소색 치맛자락도, 젖은 머리칼도 자취를 감춘 뒤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산길엔 빗소리와 바람 소리만 어수선하게 엉겨 있었다.
박돌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등골을 따라 식은 물이 한 줄기 흐르는 것 같았다. 비에 젖어서인지, 아니면 이제야 늦게 겁이 난 탓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제 지게끈을 한번 고쳐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괜히 입 안이 말라, 젖은 입술을 혀끝으로 한번 훑었다.
“허.”
낮게 헛웃음이 나왔다.
수상한 구석이야 처음부터 있었다. 산중에 홀로 서 있던 젊은 여인이라니, 그 자체로 온전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장 발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산 위는 이미 칠흑같이 어두웠고, 아래로는 사람 사는 불빛이 보였다. 설령 귀신이 길을 가리켜 주었다 한들, 지금 박돌에게 필요한 것은 퇴마승이 아니라 마른 방과 따뜻한 국 한 그릇이었다.
게다가, 정말 귀신이었다면 저를 진작 잡아갔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마을 어귀까지 데려다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오히려 사람 속을 더 뒤숭숭하게 만들 뿐, 실속이 없었다. 귀신도 장사를 하려면 끝맺음이 있어야지, 하고 박돌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대고 나니 아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겁이 날 때 쓸데없는 농담이라도 떠올릴 줄 아는 것은, 떠돌이에게 제법 쓸모 있는 재주였다.
그는 산 아래 마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빗줄기는 조금 잦아들었으나 안개는 오히려 짙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켜진 등불이 희끄무레한 물비늘처럼 번져 보였다. 가까이서 보면 별것 아닐 촌락일 텐데, 산등성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불빛들이 어째 사람 눈보다는 짐승 눈에 가까워 보였다. 박돌은 그 생각이 못마땅해 고개를 한번 털었다. 남의 마을을 들기도 전에 재수 없는 상상이나 하고 있자니, 괜히 주막 주모의 경고가 마음속에 더 선연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더 돌아보지 않고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는 가까이서 보니 더 흉했다.
비에 젖은 나무껍질은 시커멓게 번들거렸고, 옹이마다 사람 눈 같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가지마다 걸린 금줄과 부적은 젖은 짐승 털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떤 부적은 빗물에 먹이 번져 글자가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어떤 것은 찢긴 채 나무껍질에 붙어 있었다. 오래전에 새것이었을 물건들이, 해를 묵고 비를 맞으며 차츰 썩어 가는 꼴이었다.
느티나무 밑 장승도 가까이서 보니 기분 나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장승의 이마에는 금이 가 있었고, 반쯤 지워진 눈이 어둠 속을 빤히 노려보는 것 같았다. 입가에 번진 붉은 칠은 빗물에 녹아내려 턱까지 길게 흘러 있었다. 꼭 방금 피를 게워낸 목상 같았다.
박돌은 거기서 잠깐 멈춰 섰다.
장승 밑동에 향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비에 씻긴 뒤에도 남는 것을 보면, 누군가 얼마 전까지도 이곳에 제를 올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향냄새 사이로 묘하게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젖은 흙냄새나 짐승 비린내와는 조금 달랐다. 박돌은 코를 찡그렸다가, 공연히 더 맡지 않기로 했다. 밤길에서 냄새를 분별해 봤자 속만 불편해진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 이상했다.
사람의 '흔적'은 있다. 집집마다 등잔이 켜져 있고, 처마 밑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어딘가에선 개 짖는 소리도 났다. 그런데 사람 '기척'이 이상할 만큼 드물었다. 이만한 시각이면 늦긴 해도 완전히 죽은 시각은 아니었다. 주막이라도 있는 마을이라면 취객 하나쯤 비틀거리고, 아낙 하나쯤 부엌문 닫고, 아이 울음소리나 기침 소리라도 새어 나올 법했다. 그런데 이 마을은 마치 해가 떨어지자마자 사람을 통째로 집 안에 가둬 둔 것처럼 조용했다.
간혹 창호지 안쪽으로 그림자가 스쳐 갔다. 누군가 박돌을 보고 있는 듯도 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늦은 손님이구려” 하는 소리 하나 건너오지 않았다. 비 낀 골목을 걷는 박돌의 짚신 소리만 젖은 흙바닥에 철퍽철퍽 울렸다.
그제야 박돌은 조금 전에 사라진 여인을 떠올렸다.
정말로 마을 사람이라면, 저 꼴로 바깥에 오래 서 있을 리 없었다. 빗속에서 초롱 하나 들고 산중을 헤맨다니, 정상적인 처자라면 집안 어른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길을 잃은 딴 마을 사람인가. 아니면...박돌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혀를 찼다. 더 생각하면 괜히 마음만 흐려진다. 일단 몸부터 말리고 봐야 했다.
골목 끝에 주막 하나가 보인 것은 그때였다.
다른 집들과는 달리 문 앞에 비 가림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고, 대문 곁에 바랜 술항아리 그림이 걸려 있었다. 처마 아래 작은 등롱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았다. 빗물에 젖은 장대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박돌은 비로소 숨을 돌렸다. 사람이야 있겠지 싶었다.
“계시오!”
그가 문짝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한참 동안 아무 소리가 없었다. 빗소리만 처마를 때렸다. 박돌은 한번 더 두드렸다.
“늦은 길손이오! 하룻밤 묵을 자리만 좀—”
그제야 문 안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문고리가 달각거리고, 장대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안에서 늙은 여인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주모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뺨이 마르고 눈매가 가늘었다. 놀란 기색도, 반가운 기색도 없이 박돌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에야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이 밤중에 웬 길손이래.”
목소리가 낮고 쉰 데다, 어쩐지 졸린 사람 같았다. 아니, 잠에서 깬 사람보다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다가 억지로 입을 연 사람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고개 넘다 비를 만났소. 하루만 묵게 해 주시오. 방 한 칸이면 족하오.”
주모는 대답하지 않고 그의 어깨 너머를 한번 보았다. 박돌은 순간 그 시선이 자기 뒤를 살피는 것 같아 덩달아 돌아보았다. 그러나 비 내리는 골목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주모가 다시 물었다.
“혼자 왔소?”
“그렇소.”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들어오시오.”
박돌이 문턱을 넘자 주모는 얼른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주막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으나, 이상하게도 훈기가 사람 살 내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불은 있었으나 장작 타는 냄새가 약했고, 방금 끓인 국 냄새나 사람들 묵은 숨결 같은 것도 희미했다. 마치 오래 빈 집에 억지로 불만 밝혀 둔 것처럼 적막했다.
마루 끝에는 젖은 신발 서넛이 놓여 있었으나,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사랑방 쪽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안에서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주모는 박돌의 지게를 받아 주지도 않고, 다만 손짓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 두시오. 밥은 남은 게 있으니 데워다 줄 테고, 방은 뒷방 하나 비었소.”
“고맙소.”
박돌은 지게를 내려놓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구석 장 위에는 산신령 그림인지 범 그림인지 모를 탱화 한 폭이 걸려 있었다. 범의 눈이 유난히 크고 사람 같았다. 그림 아래에는 작은 놋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쌀 몇 톨과 말라붙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술잔인지 제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릇도 함께 있었다.
박돌은 눈썹을 한번 찌푸렸다.
“마을에 무슨 제사가 있었소?”
그 말에 주모의 손이 잠깐 멈췄다.
“왜 그런 걸 묻소?”
“어귀 느티나무에도 그렇고, 여기에도 그렇고. 부적이 많아서.”
주모는 한참 뒤에야 시선을 내렸다.
“산이 험하면 빌 것도 많아지는 법이지.”
그 대답은 대답 같지 않았다. 박돌도 더 캐묻지 않았다. 떠돌이 장사꾼이 타지 마을에 와서 첫날밤부터 남의 금기를 캐면 좋은 꼴 보기 어렵다. 그는 젖은 갓을 벗어 옆에 두고, 불가에 손을 녹였다. 손끝이 달아오르자 아까 산 위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던 오한이 이제야 제대로 느껴졌다.
잠시 뒤, 주모가 데운 밥상 하나를 내왔다. 찬밥을 눌러 지은 듯한 밥에 된장국, 짠 장아찌 몇 점, 마른 생선 한 토막이 전부였으나 박돌은 군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빗속을 헤매고 난 뒤라 뜨거운 국물만으로도 속이 풀렸다.
그런데 두어 숟갈 떴을 무렵, 박돌은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주모가 자꾸만 그의 얼굴보다 목덜미 너머를 보는 것이었다.
마치 그의 뒤에 누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박돌은 숟가락을 멈추고 물었다.
“왜 그러시오?”
주모는 퍼뜩 시선을 내렸다.
“아무것도.”
“아까부터 자꾸 뒤를 보시는데.”
“비 맞고 와서 헛것이 붙은 건 아닌가 해서.”
박돌은 피식 웃었다.
“내가 붙였으면 붙였지, 헛것이 나를 붙들겠소?”
농담이었으나 주모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되레 입술을 꾹 다물더니, 낮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밤중에 누가 문을 두드려도 열지 마시오.”
“예?”
“무슨 소리가 나도, 누가 아는 이름으로 불러도. 절대.”
그 말투가 너무 단호하여, 박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거두었다.
“이 마을은 다 그렇게 사오?”
주모는 대답 대신 등잔 심지만 건드렸다. 불길이 잠시 흔들리더니 다시 가늘게 섰다.
“늦은 밤엔,”
그녀가 말했다.
“밖에 있는 게 사람만은 아니오.”
박돌은 괜히 목 뒤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산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던 여인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핏기 없이 희던 뺨.
비를 맞고도 들리지 않던 발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웃으며 했던 말.
이번엔 길을 잃지 말고.
그 말이 이제 와 이상하게 귓속에서 되살아났다.
주모는 더 말하지 않고 뒷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방은 좁았지만 아랫목이 살아 있었고, 한쪽 벽에는 오래된 장롱이 놓여 있었다. 창호는 두 겹으로 발라져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박돌은 젖은 두루마기를 벗어 걸고, 칼도 아닌 짧은 환도 하나를 머리맡에 두었다. 떠돌이에게 익숙한 잠자리 준비였다.
주모가 방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새벽닭 울기 전엔 절대 나가지 마시오.”
“범이 내려오오?”
박돌이 묻자, 주모는 아주 잠깐 그를 보았다.
그 눈빛은 묘했다. 두려움인지, 체념인지, 혹은 미안함인지 쉬이 가를 수 없는 빛이었다.
“……내려오는 건 늘 범만이 아니지.”
문이 닫혔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박돌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밖에선 비가 처마를 두드리고, 아주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번 났다 그쳤다. 피곤했으나 곧장 눕기는 싫었다. 왠지 눕는 순간 무언가를 놓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무릎을 세운 채 방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주 희미한 냄새를 맡았다.
젖은 흙냄새.
그리고 그 아래, 산에서 맡았던 것과 같은 비릿한 냄새.
박돌은 천천히 숨을 죽였다.
방문 너머로, 누군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났다.
또각.
또각.
맨발도 아니고 짚신도 아닌, 이상하게 가볍고 마른 소리였다.
주막 마루를 한 바퀴 도는 듯하더니, 이내 그의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박돌의 손이 머리맡 환도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아주 잠깐, 방문 아래 좁은 틈으로
희미한 불빛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초롱불 같았다.
그러나 초롱불이든, 발자국 소리든, 이미 피로에 젖은 박돌은 곧 깊은 잠에 떨어졌다.
박돌은 닭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밤새 비는 그쳤는지, 창호 너머로 스미는 빛이 어제와는 달리 맑았다. 아랫목의 온기는 반쯤 식어 있었고, 젖은 두루마기는 아직도 눅눅했으나 입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젯밤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산길, 초롱불, 발소리 없는 여인, 방문 앞에 멈추었던 가벼운 걸음, 그리고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 불빛.
잠깐이지만 꿈이었나 싶었다.
허나 문을 열자마자 그 생각은 사라졌다. 방문 아래 문턱 한쪽에, 밤새 젖었다가 마른 듯한 흙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발자국이라기엔 너무 가늘고, 짐승 자국이라기엔 또 모양이 어설펐다. 박돌은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괜히 발끝으로 문질러 지워 버렸다.
꿈이 아니든 헛것이든, 지금 당장은 장사가 먼저였다.
주막 바깥으로 나오자 마을은 어젯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안개는 산허리로 물러가 있었고, 젖은 지붕마다 아침 해가 묽게 번져 있었다. 골목엔 아이들 소리가 나고, 우물가에선 아낙들이 빨래를 헹구며 수군거렸다. 닭이 홰를 치고, 개가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어제 그토록 숨을 죽인 채 웅크리고 있던 마을이 맞나 싶을 만큼 평범한 아침이었다. 박돌은 그 광경을 보고 피식 웃었다. 밤의 기분이란 게 다 그렇지 싶었다. 해만 뜨면 귀신도 할 일이 줄어드는 법이었다.
주모는 부엌 앞에서 젖은 장작을 말리며 앉아 있었다. 밤과 다를 것 없는 무표정이었다.
“밤은 잘 넘겼소?”
그녀가 묻자 박돌은 어깨를 으쓱했다.
“죽지는 않았으니 잘 넘긴 셈이지.”
주모는 웃지 않았다. 대신 밥 한 그릇과 미지근한 숭늉을 내주었다. 박돌은 허겁지겁 아침을 비우고는, 곧장 지게를 메고 주막 앞 공터에 자리를 폈다. 떠돌이 장사꾼에게 마을의 첫날은 늘 중요했다. 첫 인상이 좋으면 하루 장사가 트이고, 첫 인상이 틀어지면 남은 날도 팍팍해진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멍석을 깔고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놋숟가락이며 비녀, 참빗, 바늘쌈, 색실, 노리개감, 부적주머니, 아이들 엿, 부녀자들이 눈길을 줄 만한 자잘한 장신구까지 가지런히 펼쳐 놓으니 제법 볼 만했다. 햇빛이 놋쇠와 은도금 장식에 걸려 반짝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먼저 몰려들었다.
“엿이다!”
“형씨, 이거 얼마요?”
“우와, 비녀 봐라.”
아이들의 눈은 어느 마을에서나 비슷했다. 호기심과 욕심이 반쯤씩 섞인, 장사꾼이 제일 반가워하는 눈이었다. 아낙들도 하나둘 다가왔다. 누군가는 빗살을 살펴보고, 누군가는 실의 색을 만져 보고, 누군가는 괜히 흥정을 걸었다. 박돌은 금세 평소의 입담을 되찾았다.
“아주머니, 그 손으로 만지면 더 탐나는 법이오. 그냥 가져가겠단 말만 마시오.”
“이건 놋이 좀 엷어 보이는데?”
“엷긴요. 아주머니 눈썰미가 워낙 날카로워서 두께가 겁먹고 줄어든 거지.”
“장사꾼 입이 반질반질하네.”
“입이 반질하지 않으면 산길에서 굶어 죽소.”
웃음이 조금씩 났다. 그 웃음은 어젯밤의 침묵보다 훨씬 사람 냄새가 났다. 박돌은 그제야 어깨에 힘이 풀렸다. 이런 마을이면, 괴상한 소문이야 늘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산 아래 궁벽한 촌락일수록 이야기가 더 크게 불어나는 법이니까.
그런데 장사를 하며 틈틈이 둘러보아도, 어젯밤 산길에서 본 그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박돌은 처음엔 당연히 늦잠을 자는 처자인가 싶었다. 혹은 안채 깊은 집안 여자라 바깥으로 잘 나오지 않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했다. 우물가에도 없고, 장독대 곁에도 없고, 마을 어귀를 지나는 사람들 속에도 없었다. 젊은 여인은 몇몇 보였으나 누구 하나 어젯밤 그 차갑고도 희미한 인상을 가진 얼굴은 아니었다. 희기는 해도 다들 살아 있는 혈색이 있었고, 발자국 소리도 그림자도 멀쩡히 달고 다녔다.
박돌은 결국 참지 못하고, 비녀를 고르던 아낙 하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마을 처자 하나가 어젯밤 날 길 안내해 줬소.”
아낙은 비녀를 집던 손을 멈췄다.
“처자?”
“응. 소색 치마저고리 입고 초롱을 들고 있었는데. 젊고, 얼굴이 좀 희더군. 말수는 적고.”
아낙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비녀를 내려놓았다.
“밤길에 비까지 왔으니 헛것을 보셨나 보지.”
“헛것이 길도 가르쳐 주오?”
박돌이 웃으며 넘기려 했으나, 아낙은 따라 웃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실타래 한 꾸러미를 집어 들더니 값을 묻지도 않고 뒤로 물러났다.
“다른 집 아가씨를 본 거겠지요. 마을 처자들 얼굴이 다 비슷비슷해서.”
그 말은 얼핏 자연스러웠으나, 목소리가 지나치게 빠르고 가벼웠다. 마치 얼른 대화를 끝내고 싶은 사람처럼.
그녀가 물러가자 이번엔 장정 하나가 놋숟가락을 들여다보며 말을 받았다.
“어젯밤 산길에서 여인을 봤다 했소?”
“봤지. 아니면 내가 혼자 산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내려왔겠소?”
장정은 숟가락의 이빨을 손톱으로 툭툭 쳐 보다가, 슬그머니 눈을 들었다.
“이 마을 여인들은 해 지면 잘 안 나다니오.”
“그럼 다른 마을 사람인가?”
“글쎄.”
장정은 그 말 이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 끝에는 우물가에 모여 있던 다른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 몇은 박돌 쪽을 힐끔 보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박돌은 속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말 몇 마디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값 흥정하던 입들이 갑자기 닫히고, 아이들도 어른들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을 잘못 건드린 듯했다.
박돌은 이번엔 일부러 더 또렷이 묘사했다.
“키는 이쯤 되고, 머리는 단정히 올렸고, 눈매는 길었소. 초롱을 들었는데 비를 맞아도 불이 안 꺼지더군.”
그 말을 듣자, 엿을 만지작거리던 아이 하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초롱 든—”
그러자 아이 어미로 보이는 여인이 황급히 아이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쉿.”
소리가 너무 빨라서, 박돌은 오히려 더 분명히 들었다. 여인은 애써 웃으며 아이 손에 엿 한 가닥을 쥐여 주고는 말했다.
“얘가 원래 헛소리를 잘 해요.”
“아니, 내가 뭘—”
“가서 먹고 있어.”
아이의 입은 엿으로 막혔다. 아이는 여전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어미의 손에 이끌려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박돌은 확실히 느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여인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은 채, 이번에는 좀더 넓게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왜들 그러시오? 내가 귀신이라도 봤단 말이라도 하고 싶은 표정이구먼.”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대머리가 반쯤 벗겨진 늙은이 하나가 헛기침을 하고 나섰다. 아침부터 탁주 냄새를 풍기는 얼굴이었다.
“나그네 양반.”
“예.”
“산길이라는 게 원래 사람 눈을 홀리는 법이오. 더군다나 비 오는 날 저녁이면 더 그렇지. 나무를 보고 사람으로 알고, 바위를 보고 집으로 아는 수가 있소.”
“그럼 내가 나무를 따라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말이오?”
“그럴 수도 있지.”
늙은이는 입꼬리를 애매하게 움직였다. 웃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표정이었다.
“고개 위쪽엔 예부터 헛것이 많다는 말이 있었소. 나그네가 피곤했으면 더 잘 보였겠지.”
“그 헛것이 혹시 소색 치마를 입고 초롱을 든단 말이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늙은이의 입꼬리가 딱 굳었다.
주변 공기가 이상하게 식었다.
박돌은 그제야 조금 서늘해졌다. 일부러 농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반응이 지나치게 빨랐다. 늙은이는 술기운에 불콰하던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그네는 장사나 하시오.”
그 말은 권유라기보다 경고에 가까웠다.
“괜히 밤일을 자꾸 입에 올리면 좋지 않소.”
“밤일?”
박돌이 눈을 가늘게 뜨자, 늙은이는 퍼뜩 말끝을 흐렸다.
“아니, 그러니까… 꿈자리 같은 것 말이오. 타지 와서 괜한 말을 입에 올리면 재수 없다는 얘기지.”
박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 늙은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늙은이는 시선을 피했다. 우물가의 아낙들도, 아이를 붙들고 있던 여인도, 아까 숟가락을 보던 장정도 죄다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너무 가지런했다. 우연히 다 함께 입을 닫은 침묵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정해 둔 사람들의 침묵 같았다.
잠시 후, 멀찍이 서 있던 주막 주모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박돌의 멍석 앞에 주저앉아 색실 꾸러미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물건을 고르는 척하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묻는 게 좋을 거요.”
박돌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왜. 정말 헛것이라서?”
주모는 실꾸러미를 손끝으로 굴리며 대답했다.
“이 마을엔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있소.”
“아는 게 약인 일도 있고.”
“나그네한텐 대개 전자가 더 오래 살아남지.”
그녀의 말에는 농담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박돌은 괜히 혀로 어금니 안쪽을 한번 밀었다. 이쯤 되면 부아가 좀 날 법도 했다. 사람을 살려서 마을까지 데려온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누구냐 물었을 뿐인데,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금을 문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다는 말조차 입에 올리기 힘든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멍석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엿을 핥던 꼬마 계집애 하나가 박돌을 빤히 보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언니—”
이번에는 박돌이 재빨리 몸을 숙였다.
“응? 누군데?”
아이는 말끝을 삼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물가의 어른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겁먹은 토끼처럼 눈을 깜빡이더니, 박돌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와 입술만 달싹였다.
“밤에—”
그 순간, 아이의 어미가 뒤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금옥아!”
아이는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곧장 달려온 어미가 아이의 팔을 잡아채듯 일으켰다.
“죄송해요. 애가 숫기가 없어서 쓸데없는 소리만….”
“아니, 잠깐만. 애가 뭘—”
“금옥아, 가자.”
여인은 아이를 거의 끌고 가듯 데려가 버렸다. 아이는 몇 번 뒤를 돌아보며 박돌을 보았는데, 그 얼굴에는 단순한 두려움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뭔가를 알고 있으나 말하면 혼날 것을 아는 아이의 표정. 민가 담장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도 박돌은 그 눈을 놓치지 못했다.
주모는 색실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쯤 묻고 접어 두시오.”
“다들 왜 이러는 거요?”
박돌이 낮게 묻자, 주모는 대답 대신 마을 어귀 쪽을 한번 보았다. 느티나무 너머 산길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산에서 본 건 산에 두고 오는 게 좋을 때가 있소.”
“난 그 여인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묻는 게 아니오. 누군지 묻는 거지.”
그 말에 주모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러고는 박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여기선 제일 위험한 물음이오.”
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박돌은 멍석 앞에 홀로 남아 한동안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은 분명 맑았고, 물건들도 그럴듯하게 팔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엿을 물고 뛰어다녔다. 겉으로만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골 마을의 평범한 장날 아침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목덜미엔 자꾸 식은 기운이 맺혔다.
그는 무심코 마을 어귀 쪽을 바라보았다.
느티나무 아래 젖은 장승이 낮빛 속에서도 음산하게 서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자, 가지마다 걸린 금줄과 부적이 서로 비비며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느티나무 뒤편, 담장과 안개가 맞닿는 그늘 속에서
소색 치맛자락이 아주 잠깐 스친 듯했다.
박돌은 벌떡 일어섰다.
“거기!”
하지만 아이들이 놀라 돌아보는 사이,
그 자리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보일 만큼만 보이고 사라진 것처럼.
박돌은 멍석을 박차듯 일어섰다.
분명 누군가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였다. 어젯밤처럼 안개와 비가 눈을 속인 것도 아닌데, 그 찰나의 움직임은 너무도 또렷했다. 그는 무심코 한 손으로 지게 옆을 짚고 몸을 일으킨 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몇 걸음 앞으로 나갔다.
누가 들으면 우스운 꼴이었다. 눈에 띈 것이 치맛자락뿐이었으니, 잡아 세울 이름도 얼굴도 없이 허공에 대고 소리친 셈이었다. 그래도 박돌은 그대로 느티나무 쪽 골목으로 발을 옮겼다. 뒤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아낙네들 수군거림이 잠깐 일었다가 이내 멎었다. 누군가 그를 말리려는 듯한 기척도 있었으나, 끝내 붙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담장 모퉁이를 돌아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은 축축했다. 비 갠 뒤라 흙은 아직 검고, 처마 끝에선 물방울이 더디게 떨어졌다. 사람 하나 숨기기엔 좁고, 사라지기엔 더 좁은 길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 누군가 스쳐 간 자리인데, 담장 끝까지 훑어보아도 소색 치맛자락은커녕 젖은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박돌은 걸음을 멈췄다.
또 헛것인가.
그 생각이 들자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자꾸 이리 나타났다 사라지면 성미 급한 장사꾼 속은 뒤집히기 마련이었다. 흥정도 실체 있는 물건을 앞에 두고 해야 말이 통하지, 이렇게 그림자하고 씨름하면 누구라도 짜증이 났다.
그가 혀를 차며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장사꾼 씨.”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등 뒤였다.
박돌은 흠칫하며 돌아섰다. 골목 끝으로 이어지는 우물가에, 여인이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기보다 어느새 와 있었다는 편이 맞았다. 아까까지 분명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는데, 눈 한 번 돌리는 사이 사람 하나가 와 서 있기엔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녀였다.
어젯밤 산길에서 초롱을 들고 그를 이끌던 여인.
다만 오늘의 그녀는 어젯밤과 사뭇 달랐다.
어제는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리고, 비와 초롱불 사이에서 어딘가 숨을 죽인 사람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긴 머리를 내리고 있었다. 검고 젖은 비단 같은 머리칼이 어깨와 등을 타고 흘러내려, 창백한 옆얼굴과 목덜미를 반쯤 덮었다. 마치 제 몸에 밴 어둠을 조금이라도 감추려는 것처럼. 소색 치마저고리는 여전했으되, 오늘은 빛 아래에 서 있으면서도 희미했다. 햇살을 받아도 환해지지 않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어젯밤의 웃음이 슬프고 기이했다면, 지금의 웃음은 훨씬 가볍고 장난스러웠다. 일부러 그리 꾸민 듯이.
“누굴 찾으시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아직 이 마을 길에 밝지 않으신 것 같네요.”
목소리는 낮고 맑았지만, 어젯밤보다 끝이 조금 더 들떠 있었다. 다소곳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여인이 맞나 싶을 만큼, 살짝 능청스러운 기색도 비쳤다. 박돌은 한순간 말을 잊었다. 하도 찾아 헤매던 얼굴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으니, 사람 속이 반가운지 수상한지 정리될 새도 없었다.
“당신—”
박돌이 한 발 다가서자, 여인은 우물 두레박 옆에 기대듯 서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우물가에는 빗물이 아직 조금 고여 있었고, 맑아진 하늘이 그 안에 비치고 있었다. 박돌은 무심코 그녀의 발치와 우물 속을 함께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우물 안 물은 햇빛과 담장과 처마 끝 그림자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박돌 자신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모습만은 없었다.
물 위에는 그녀가 서 있는 자리만 비어 있었다.
사람 하나가 똑바로 서 있는데도, 거기만 그림자도 형상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박돌은 속으로 숨을 한 번 삼켰다.
그 순간 여인이 웃음기 어린 눈으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박돌은 얼른 시선을 들었다.
“아니.”
“제가 반가워서 말을 잊으신 줄 알았어요.”
그 말이 너무도 태연하게 떨어져, 박돌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반갑긴 하지. 사람을 살려서 마을까지 데려다 준 은인인데.”
“은인씩이나요.”
여인이 머리칼 한 가닥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그 손끝이 지나치게 희었다. 손등에 핏줄조차 옅어 보일 정도로.
“그저 길만 조금 알려드렸을 뿐인데.”
“그 길이 산길이었고, 비까지 왔소. 그 정도면 목숨값이 좀 섞인 은혜지.”
“장사꾼 님은 말이 재미있네요.”
“장사꾼 입이 재미없으면 굶어 죽지.”
박돌이 말하자, 여인은 작게 웃었다. 웃는 소리는 분명 가벼운데, 어딘가 텅 빈 곳을 건드리는 느낌이 있었다. 물소리 없는 우물에 돌멩이를 던진 듯한 웃음이었다.
박돌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젯밤엔 볼 겨를이 없었지만, 낮빛 아래서 보니 얼굴이 더 또렷했다. 눈매는 길고, 눈동자는 묘하게 짙었다. 웃고 있는데도 웃지 않는 사람처럼 깊은 그늘이 어려 있었다. 입술은 옅은 빛을 띠었고, 뺨은 여전히 핏기가 모자랐다. 살아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예쁜 제사상 인형 같기도 했다. 가까이서 보아도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어젯밤부터 찾았소.”
박돌이 마침내 말했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다들 모른 척만 하더군.”
여인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
“그래요?”
“그래요가 아니라, 당신 누군데 다들 입을 다무는 거요?”
그녀는 대답 대신 우물 손잡이를 손끝으로 가볍게 돌렸다. 두레박 줄이 삐걱,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괜히 골목 안에서 오래 남았다.
“제가 누구인지는 그렇게 궁금하면서,”
그녀가 낮게 말했다.
“제 이름은 아직 안 물어보셨네요.”
박돌은 멈칫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어젯밤에도, 지금도, 그는 그녀를 ‘여인’이니 ‘당신’이니 하고만 불렀지 정작 이름부터 묻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낯선 이를 만나면 으레 통성명부터 하는 것이 장사꾼 버릇인데, 이 여인 앞에서는 늘 순서가 뒤틀렸다.
박돌은 헛기침을 했다.
“그럼 묻지. 이름이 뭐요?”
여인이 곧장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느슨하게 풀린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렀다. 햇빛이 닿지 않는 물속 그림자처럼 검었다.
“맞춰보세요.”
“뭘?”
“제 이름이요.”
박돌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점쟁이인 줄 아오?”
“어젯밤엔 길도 잘 찾아오셨잖아요.”
“그건 당신이 데려왔으니—”
거기까지 말하다가, 박돌은 문득 입을 다물었다.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웃자고 던진 말인데, 혀끝에서 불쑥 어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도, 누가 알려준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그저 입 안에서 익숙하게 굴러 나올 뿐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꺼림칙할 정도였다.
박돌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연화.”
여인의 웃음이 아주 잠깐 멎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지도, 놀란 티를 크게 내지도 않았다. 다만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 것처럼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웃었다. 웃음은 아까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깊은 웃음이었다. 누군가 아주 오래 잊고 있던 말을 들은 사람처럼.
“맞췄네요.”
“내가?”
“네.”
“아니, 잠깐. 진짜요?”
“그럼 이제부터 그렇게 불러 주세요.”
그녀가 또렷하게 말했다.
“연화.”
박돌은 괜히 뒷목을 쓸었다. 맞췄다는 기분보다도, 왜 그 이름이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장터에서 스쳐 지나간 물건 이름처럼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엔 너무 낯선 이름이었다. 그는 눈앞의 여인을 다시 보았다. 연화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물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럼 나도 말해야 공평하겠네.”
박돌이 말했다.
“박돌이오.”
“박돌 씨.”
연화가 곧장 받아 불렀다.
낯선 여인의 입에서 제 이름이 그렇게 매끈하게 굴러나오자, 박돌은 또 한 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박돌이오’라고 한 건 분명 자신인데, 막상 그녀가 “박돌 씨” 하고 부르니 제 이름이 원래부터 그녀의 입에 익숙했던 것처럼 들렸다. 이상하게도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웃겼다. 장터의 아낙들이나 주막 주모가 “박 서방”, “장사꾼 양반” 하고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박돌 씨.”
연화가 다시 불렀다. 일부러 확인이라도 하듯.
“왜.”
“정말 이 마을이 궁금하신가 봐요.”
“궁금하지. 사람들이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더 그렇소.”
“그럼 제가 알려드릴까요?”
“뭘.”
“여기저기.”
연화는 우물가에서 몸을 똑바로 세웠다. 내린 머리칼이 허리께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그녀는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아주 밝은 척하는 얼굴로 마을 안쪽을 돌아보았다.
“이 마을엔 처음 오셨잖아요.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어디가 볕이 좋은지, 어디 길이 막다른 골목인지, 어디 우물이 물맛이 제일 나은지. 그런 거요.”
그러고는 박돌을 돌아보며 눈을 접었다.
“아직 이 마을 길에 밝지 않으신 것 같아서.”
방금 전과 똑같은 말이었는데, 뜻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장난 같기도 하고, 속을 떠보는 말 같기도 했다. 박돌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기꺼이 안내해 주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아요.”
“낯선 사내를 이렇게 쉽게 끌고 다녀도 되오?”
“박돌 씨가 위험한 사람 같지는 않아서요.”
“그 말은 고맙긴 한데, 남자는 원래 겉만 보고 모르는 법이오.”
“저는 잘 알아요.”
그 말이 너무 빨리, 너무 가볍게 나와서 박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연화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곧장 밝은 얼굴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가요.”
“어딜.”
“제가 보여 드리고 싶은 데가 있어요.”
연화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발을 옮겼다.
박돌은 반사적으로 뒤를 따르다, 문득 우물 속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물 위에는 여전히 자기 모습과 담장 그림자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우물가에 기대어 웃던 여인의 흔적은 끝내 비치지 않았다.
그는 그 광경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야 연화의 뒤를 따랐다.
연화는 마을을 잘 알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 같으면서도, 어쩐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어느 골목이 햇볕을 늦게 받는지 알았고, 어느 집 개가 낯선 이를 보면 먼저 짖는지 알았으며, 어느 담장 너머에 살구나무가 있어 봄이면 꽃잎이 바람결에 골목을 덮는지도 알고 있었다. 박돌을 데리고 우물가를 지나고, 장독대가 늘어선 담장 밑을 지나고, 작은 서낭당과 밭두렁 사이 오솔길까지 돌아다니며, 마치 오래된 마을 자랑을 늘어놓는 처녀처럼 조잘조잘 입을 열었다.
“여긴 낮엔 괜찮은데, 비 오면 미끄러워요.”
“저 집 아저씨는 성미가 좀 급해서 흥정하면 금방 얼굴 붉혀요.”
“저기 보이는 감나무는 가을이면 아이들이 몰래 올라가다 혼나요.”
“주막 뒷길은 낮보다 해 질 무렵이 더 예뻐요. 안개가 내려앉아서요.”
말끝마다 웃음이 섞여 있었다. 어젯밤 산길에서처럼 말수가 적고 얌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늘의 연화는 일부러 그러는 사람처럼 자주 웃었고, 엉뚱한 말을 툭툭 던졌고, 때때로 박돌을 돌아보며 그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장난기 어린 눈으로 확인했다.
“박돌 씨는요,”
그녀가 걷다가 문득 물었다.
“원래 겁이 없어요?”
“누가 그렇소?”
“얼굴에 써 있어요.”
“뭐라고.”
“귀신 같은 건 안 믿는 얼굴.”
박돌은 피식 웃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세상엔 많지.”
“예를 들면요?”
“굶주린 호랑이. 칼 든 산적. 수금에 미친 아전. 값 깎기에 목숨 건 아낙네들.”
연화가 소리 내 웃었다.
“마지막이 제일 무섭네요.”
“장사꾼한텐 진짜 그렇소.”
“그럼 저는요?”
그녀가 별안간 물었다.
박돌은 발을 멈췄다.
“당신이 뭐.”
“무서워요?”
연화는 그렇게 묻고는, 담장 그림자가 드리운 자리에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바람이 불자 풀어 내린 머리칼이 얼굴 옆으로 흘러와 반쯤 그늘을 드리웠다. 그 잠깐, 그녀는 아까까지 조잘거리던 밝은 처녀라기보다 어젯밤 산 위에서 초롱을 들고 서 있던 존재에 더 가까워 보였다.
박돌은 괜히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허나 또 이상하게, 완전히 뒷걸음질치고 싶지도 않았다.
“조금.”
그가 솔직히 말하자, 연화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조금밖에요?”
“하나도 안 무섭다 하면 거짓말이고.”
“그럼 많이 무섭다고 하면요?”
“그것도 거짓말이겠지.”
연화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웃음을 입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환한 척하는 웃음이었다. 지나치게 밝아서 오히려 서늘한, 그런 웃음.
“박돌 씨는 이상하네요.”
“당신도 그렇소.”
“알아요.”
그녀는 너무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걸었다.
“그래도 저를 따라오시잖아요.”
그 말은 바람에 실려 가볍게 흩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박돌의 발목에 감기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대꾸하지 못하고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걸었다. 연화의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다만 이상할 만큼 소리가 적었다. 흙길 위를 걷는데도 짚신 끄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박돌은 그 점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꾸만 귀가 먼저 알아차렸다.
연화는 그를 마을 안쪽으로, 더 깊숙한 길로 데려갔다.
햇빛이 닿는 곳도 있었고, 담장 그늘이 축축하게 남은 곳도 있었다. 길은 얼핏 평범했지만, 이상하게도 연화와 함께 돌다 보면 방향 감각이 흐려졌다. 방금 지난 담장 같은데 또 나오는 것 같고, 처음 보는 골목 같은데 어쩐지 낯익기도 했다. 박돌은 몇 번쯤 주막이 어느 쪽이더라 생각했으나, 연화가 돌아보며 웃기만 하면 그 생각이 흐려졌다.
“힘들어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
“거짓말.”
“왜.”
“박돌 씨 표정이 그래요.”
“당신이 자꾸 이상한 데로만 데려가니까 그렇지.”
“이상한 데 아니에요.”
연화가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냥,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이에요.”
그 말이 별것 아닌 듯 들리면서도, 박돌은 묘하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런데도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이쯤 되면 그녀가 수상하다는 건 누가 봐도 뻔한데, 이상하게도 “그만하지”라는 말이 혀끝에서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눈앞에서 반짝이는 낚싯바늘인 줄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처럼.
연화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가요.”
“거기 뭐가 있길래.”
“보면 알아요.”
그녀의 웃음이 다시 번졌다.
그 웃음은 너무도 가볍고 예뻐서,
오히려 박돌은 어젯밤 산 위에서 들었던 호랑이 울음소리를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데 자꾸만 짐승의 입과 이빨이 생각났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빛은 아직 밝았으나, 산 그림자가 마을 가장자리에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늘이 닿는 자리마다 연화의 머리칼은 더 검게, 더 짙게 보였다.
박돌은 제 손등의 털이 미세하게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연화는 마을 안쪽으로 갈수록 더 말이 많아졌다.
처음엔 그저 길을 알려 주는 척이었으나, 어느새 그녀는 박돌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꺼내기 시작했다. 저 담장 너머엔 살구나무가 있고, 저 밭둑 아래엔 봄이면 냉이가 먼저 올라오고, 비가 많이 온 뒤에는 마을 끝 샘물이 흙탕해지니 우물가 물을 길어 쓰는 편이 낫고, 해 질 무렵엔 누구도 서쪽 골목으로는 잘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들.
말은 평범했지만,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길을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만 잡았다.
주막 쪽으로 가는 길은 분명 있었을 터인데, 연화는 자꾸만 사람 발길 드문 골목과 담장 그늘진 길로만 그를 이끌었다. 햇빛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산이 가까운 마을이라 그런지 그늘이 빨리 길어졌다. 볕 아래선 평범해 보이던 담장도 음지에 들면 갑자기 오래된 무덤 벽처럼 축축해 보였다.
박돌은 처음엔 그저 마을을 익히는 셈 치고 따라갔다.
연화가 돌아볼 때마다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이 꼭 사람 마음을 놓이게 하는 웃음은 아니었으되, 그렇다고 단박에 등을 돌릴 만큼 섬뜩한 것도 아니었다. 묘하게 그 중간이었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박돌 씨.”
연화가 앞서 걷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왜.”
“걸음이 느려졌어요.”
“지게 메고 산 넘은 사람한텐 원래 다 느려 보여.”
“아까는 안 그랬잖아요.”
“아까는 장사 시작하기 전이었고.”
“지금은요?”
박돌은 대꾸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정작 말과 달리 발은 정말 무거워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산을 넘은 피로라 여겼다. 비도 맞았고 밤도 설쳤으니 그럴 만했다. 허나 그 피로는 몸 한 군데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리만 아프거나 어깨만 결리는 식이 아니라, 누가 속에 솜을 잔뜩 채워 넣은 듯 사지가 둔해졌다. 눈꺼풀도 유난히 무겁고, 생각도 약간 늦었다. 걸음은 걷는데 정신은 자꾸 물가에 뜬 부평초처럼 흐물흐물 흘러갔다.
박돌은 미간을 좁혔다.
이상했다.
낯선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을 만큼 정신이 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여인은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수상한 여인을 따라가며 졸음까지 쏟아진다? 이쯤 되면 팔자 좋은 걸 넘어서 바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연화는 다시 웃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어디까지.”
“제가 좋아하는 곳이 있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데까지 내가 왜 가.”
“박돌 씨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그건 가 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지.”
연화가 입술만 조금 더 휘었다.
“가 보기 전엔 모르는 일.”
그녀는 그 말을 되풀이하더니, 마치 혼잣말처럼 아주 작게 덧붙였다.
“늘 그렇죠.”
그 말이 이상하게도 귓속에 오래 남았다.
박돌은 몇 걸음 더 따라가다가 문득 멈춰 섰다.
연화가 앞서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내린 머리칼이 어깨 위에서 검게 흘렀다. 눈매는 웃고 있었으나 어딘가 초조한 빛이 아주 옅게 비쳤다. 방금까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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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너무 고맙다 다음편 달려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