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저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담담한 문체로 잔잔한 여운을 주고

강렬하지 않되 문득 다시 찾게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희미한 초등학생 시절 그 작은 손으로 

독후감 최우수상을 받아들고는 

속으로 방방 뛰었던 그때만은

아직 선명합니다.


컴퓨터도 쓰지 않았던 시절이라

연필을 주먹 쥐듯이 쥐고

나만의 동화를 써내려갔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겠노라

다짐하고는 그렇게 꿈을 키워갔습니다.


중학교에 올라

자연스럽게 접한 순문학에서는

내가 모르는 세계들이 가득했습니다.


깊게 공부하려고도 해보았으나

지루하고 현학적인 방법론이 싫어 

전 금새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왜 배우지도 모를 과목들을 

머리에 쑤셔넣다보니

글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재미삼아 썼던 글이 

운 좋게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다시금 방법론을 찾아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수학을 글만큼이나 좋아합니다.


복잡한 수식을 해체해 

단 하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막연한 것보다는 직관적인 해가 정해진 게 좋습니다.


때문에 글에는 정답이 없는 걸 깨달아 

조금 막연해졌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글로도 

작가가 될 수 있다. 


임종 직전의 노인의 서글픈 회고로도 

작가가 될 수 있다.


그 말은 재능이 큰 영역을 차지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롤모델은 있습니다.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부득불 뜯어보곤 했습니다.


내가 글에 이만한 감정을 녹여낼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저는 단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머리가 클수록 선명해지는 건 저 자신의 한계였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에게 부정당하는 게 

너무나 두려워졌습니다.


어린시절의 꿈을 마음 한 켠에 접어놓은 채

그렇게 공대로 진학했습니다.


어렵더군요

정말 어려웠습니다.


처음 몇 달은 즐거웠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공식이 있으면 

책을 뚫어져라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제 한계는 거기까지였습니다.

해가 지날수록 암기량은 방대해지고

언제부턴가 저는 제자리였습니다.


'공대는 그냥 온 거니까'


실리를 생각한 차선이라 생각하는 순간

나는 원래 글을 쓰고 싶었다 자위하며

저는 이제 온전히 집중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 시절에 남아 초라해져만 가는데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문득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어져

술담배에 마냥 절여살던 나날

언젠가 술을 같이 마시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라'


취한 채 집으로 들어가 글을 썼습니다.

머리는 아프고 손도 저리는 와중에도

그저 써내려갔습니다.


오랜만에 써본 글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비문 투성이에 

맞춤법도 틀리고

제대로 읽히지도 않아 

마치 초등학생이 쓴 글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즐거웠습니다.


교수님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늦은 실패와 도전이 두렵습니다.

제가 언젠가 꺾여버릴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다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손이 안 된다면 발로,

발이 안 된다면 혀로,

혀가 안 된다면 눈으로, 

그것마저 안 되는 날이 온다면

전 그때서야 죽어버릴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역시 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방황을 좀 해봤습니다.

답답했던 속이 이젠 후련합니다.


늦은 공부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F만은 주지 말아주십시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