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
천하무이도 성인무량심
너무 무거운 말로부터 글을 시작한 것 같다. 오늘 『순자』를 펼쳤는데 위와 비슷한 명제를 발견했다.
行衢道者不至행구도자부지: 동시에 두 길을 가는 사람은 영원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음이며,
事兩君者不容사량군자불용: 두 임금을 섬기려는 자는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目不能兩視而明목불능량시이명: 눈은 두 가지 물건을 동시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분명하게 볼 수 있고,
耳不兩聽而聰이불량청이총: 귀는 동시에 두 가지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밝게 들을 수가 있다.
왠지 양자역학을 하시는 물리학자가 흥미로워할 것 같은 명제들이다.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던 것도 20년이 넘은 일이다. 자꾸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오늘 철학 에세이는 나의 옛날 이야기를 추억해볼 겸 가볍게 적어볼 참이다. 나는 똑바로 대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추가로 수강신청을 받아 마감하는 날이 가까워질 때까지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이었고 잠을 자느라고 시험 시간에 출석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시험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지 못해 시험을 못 본 적도 있었고 오픈북 테스트임을 모르고 자료를 가져가지 않아서 작성할 답안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하나도 내지 않고 학점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러한 예과 생활을 지낸 끝에 가뜩이나 잘 하지 못하는 영어시험에서 기준점을 넘지 못하여 휴학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세대학교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가소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하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선행학습을 한 물리학 지식이 남들보다 더 많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읽고서 과학적 세계관이 생물학, 그 중에서도 진화론으로 통합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론의 과학적 설명에 의하면 과학과 종교,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는 절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연세대학교의 채플 수업을 들으면서 대광고등학교에 다니던 강의석의 마음이 되어갔다. 당시 연세대학교에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없었고 과학철학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었다. 경제학과에서 게임이론에 대한 강좌가 열리는 정도였다.
나는 첫번째 학교 휴학을 하고 강명신 교수님의 서양윤리학사와 조대호 교수님의 서양철학입문 선우환 교수님의 기호논리학과 문창옥 교수님의 서구형이상학 수업을 청강했다. 문창옥 교수님 수업은 영어해석에 두려움이 있어서 기호논리학은 막 접하기에 어려워서 수강을 그만두었다. 마음대로 오가는 이방인을 보는 철학과 교수님과 학생들의 그 생각은 어떠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윤리학 수업을 들으면서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코나투스라는 개념을 익혔고 생각을 하다 보니 개별자와 보편자의 내용에 대해서 자득했다. 나는 당시 개별자와 보편자에 해당하는 용어가 무언지 몰라 인터넷을 뒤져 하이데거의 존재자와 존재라는 개념이 거기에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 용어를 채택해 답안지를 적어 냈던 기억이 난다. 전자 현미경으로 파악해야만 하는 미시적인 세계이겠지만 염색체 안에 담긴 유전인자 또 그걸 이루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의 염기.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유전인자는 개별자이다. 그러한 유전인자들이 이 생명체 저 생명체에 두루 존재한다. 그리고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 그것과는 조금 다른 유전인자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유전자 풀은 다양성을 갖는다. 이 때 유전자 풀에 특정 비율로써 존재하는 그 유전자는 이름하여 보편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문의 대부분은 보편자에 대해서 논의한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있고 그 공통된 염기서열을 가진 유전자들을 보편자로 일컬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으로 보면 유전자는 형상인이며 목적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발생학을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유전자가 작용인인지 아닌지 확정할 수 있겠으나 유전자의 명령에 여러 세포 소기관들이 따른다고 생각하면 유전자를 작용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인 중 생명체의 질료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바로 유전자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복제하고 그것을 타고 이동하는 생존 기계를 구성하는 물질들이겠다. 이기적 유전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멸의 코일이고 그 각각은 스피노자적 세계관에서 자기보존을 하려는 힘 코나투스를 가지고 있다.
나는 대학 바깥에서는 강유원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든지 콩도르세와 같은 계몽사상가, 그리고 계몽주의의 기획에서 벗어난 파시즘, 또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중국과 일본의 근대, 그 밖의 여러 주제의 책들을 다루었다. 강유원 선생님은 굉장한 다독가이셨는데 나는 선생님 곁에 붙어서 책 이름과 그 소개를 듣는 것만 해도 나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예과 3학년의 한 학기를 철학 수업으로 보내면서 나는 동시에 고전읽기 동아리에 가입하고 있었다. 그 고전읽기 동아리는 박영신 교수님이 지휘하셨는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칸트, 헤겔, 노자, 전습록 등의 문서를 읽고 세미나를 하는 대학 안의 또다른 작은 대학이었다. 적은 등록금을 내고 세미나 할 장소를 그때그때 빌려서 진행하는 약간은 허술하게 진행되는 리버럴 아트 칼리지 같은 느낌이었다. 리버럴 아트 칼리지는 주로 미국에 있다고 하는데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졸업한 조한별의 책에 그 소개가 나와 있다. 나는 아마도 미국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를 본따서 나 혼자만의 리버럴 아트 칼리지를 구성하고 공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부가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느꼈다.
예과 3학년이 끝나고 본과 1학년에 진입했다. 나는 그 바쁘다는 본과 1학년에 인문고전읽기를 병행했으며 철학적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본과 1학년을 낙제 없이 통과했고 철학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동규 교수님의 예술철학 과목을 청강했는데 치대 시험공부를 하느라고 중간에 나가지 못하게 된 점이었다. 선생님께도 함께 한 학우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고전 읽기 동아리는 좀 엉터리로 하더라도 참여하였으며 책읽기 이외에 술자리에서 인간관계를 쌓는 데에도 시간을 썼다.
나는 그 때 내 인생에 대해서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철학 공부가 너무나 재미있고 하고 싶지만 철학 전공은 장래가 불안정하다 하고(치의학과 졸업했을 때보다 돈을 못벌고) 내가 철학에 재능이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겠으며(공부는 너무 어려워 보이는데 이 길로 가서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치의학과에 발을 담근지는 꽤 오래되어서 투자한 것들도 있고(그만두면 매몰비용이 생기는데) 치과의사를 하면서 적당히 돈도 벌고 철학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두 길을 동시에 성취하여 살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설렁설렁 다니던 학교를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아침과 낮에는 치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밤에 여유가 생기면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치과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개원의로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고 인문학 공부 또한 열심히 할수록 끝이 없는 공부라는 걸 알았다. 그 때 나는 천하무이도 성인무량심이란 말도 몰랐고 순자에 나오는 구절도 알지 못했다. 단지 나는 두 가지를 다 잘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나는 다시 휴학했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려고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수학학원 강사로 취직했다. 내가 치의학에 남다른 소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으로 돈을 번다 하여 선택한 전공인데 학원가 일타강사만 된다면야 돈 쪽으로는 꿀릴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한 달 정도 학원에 다니다 그만두었는데 나는 여러 학생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게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말도 더듬는 편이었다. 그리고 학원 강사는 문제풀이를 외워 가지고 다녀야 했다.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몰라 잠시 머뭇거리거나 풀리지 않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다가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보자마자 푸는 것. 그것은 수학 문제를 시간 내에 다 맞추는 것과는 또 다른 연습이 필요한 문제였다. 나는 다음 학기에 다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청강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는 등록금도 내지 않고 수업을 온전히 들었다는 것이다.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그럼 뭐가 되느냐 싶기도 한데 나는 당시에 그런 문제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배우고 싶었고 수업이 있었고 부탁을 드렸고 허락을 받았다. 동양철학 수업을 듣고 싶어서 이광호 교수님과 신규탁 교수님 수업을 청강했다. 노어노문학과에서 이상룡 교수님 수업도 청강을 했다.
이광호 교수님은 유교철학 전문이셨고 신규탁 교수님은 불교철학 이상룡 교수님은 러시아 소설을 가르치셨다. 세 선생님께 다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나는 요즘도 유교 경전이나 불교 경전을 나름대로 연구하며 읽고 있고 러시아 소설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그 중 이광호 교수님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한자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수강한 수업이었는데 한문 경전을 떠듬떠듬 읽었다. 금강경, 노자, 중용을 읽는 수업이었는데, 무슨 의미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수업이 끝이 났다. 그 중에 중간 레포트 주제가 얼핏 생각이 난다. 유학의 진리관과 과학을 어떻게 연관지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과제의 표현이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제는 그거였다. 나는 유학이 무언지도 잘 몰랐고 이 세상에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에서 모든 것이 상대적이어서 진리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며 과학을 하나로 아우르는 것은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 레포트를 써 갈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스무 해 가까이 지나고서야 나는 그 레포트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언젠가 내 뜻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광호 교수님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께서는 논어의 '욕파불능欲罷不能'의 구절을 읊어주시며 한편으로 『이자수어』를 번역했다고 하셨다. 과학에 대해서 공부한다고 하시면서 또 주역은 보고 또 보아도 잘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내가 여기에 유학의 진리관과 과학에 대하여 부족한 레포트를 뒤늦게 작성하기에 앞서 이광호 교수님이 적으신 '『이자수어』를 번역하며' 라는 글의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역자는 진리관이 없는 학문은 오래도록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학』·『중용』과 퇴계의 『성학십도』를 통하여 유학이라는 학문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유학의 진리관이 무엇인가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유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태극도설」로 시작되는 『근사록』을 편집한 주희와 「태극도」와 「태극도설」로 시작되는 『성학십도』를 저술한 이황의 문제의식 역시 역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번역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성학십도』 역주와 『근사록집해』 역주에 이어 『근사록』과 거의 동일한 체제로 편집된 『이자수어』도 번역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더없는 행운이자 영광이다. 역자는 유학의 진리관을 존중하며, 이러한 진리관에 기초를 두고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한 유학의 학문관을 귀하게 여긴다. 이 책은 유학의 진리관과 학문관에 기초하여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퇴계 이황의 학문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로 읽어야 되는 퇴계학의 입문서이다.
유학의 진리관과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은 현대 과학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학문學問이라는 한자 용어는 본래 유학의 진리관에 기초하여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체계적 이론에 대한 이름이었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라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 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안타깝다. 사람이 개와 닭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방법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근사록』과 『성학십도』와 『이자수어』에는 유학의 진리관과 학문론이 매우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마음을 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지니고서 성실하게 학문에 임한다면 오늘날이라고 유학의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할 리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유학의 진리관과 학문관이 모든 진리를 다 포함하고 있어 다른 진리관과 진리 인식 체계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우위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진리관과 학문관에 한계가 있더라도 유학은 그 자체로 커다란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학문 체계가 가지기 어려운 장점과 특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확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의 진리관과 학문관에 대한 정확하고 확실한 인식이 성취될 수 있을 때, 다른 진리관과 학문관을 지닌 학문과 토론하고 경쟁하며 서로 배우고 절충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늘날 유학의 진리관과 학문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유학연구자들을 만나기 쉽지 않지만, 머지않아 두려워할 만한 후학들이 많이 배출되리라 확신한다.
부족한 레포트를 얼기설기 지어 여기 제출한다.
[레포트] 유학의 진리관과 과학
1) 낭가郎家의 『대학』, 『중용』으로서의 『천부경』과 『삼일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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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 대학지도재명명덕재친민재지어지선제1장 허공 - 터/제가제2장 일신 - 것/평천하제3장 천궁 - 법/치국제4장 세계 - 수/격물치지성의제5장 인물 - 리/정심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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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유기체 철학

내가 지금 인간 유기체 철학이라 이름한 일련의 규칙들을 발견해내고 정리하게 된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서술할 유기체 철학이 내가 발견한 철학의 최종적 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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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것→법→수→리→터 로서의 배진背進

터→리→수→법→것 : 실천지향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자명성위지교종교종교의 언어는 예술것→법→수→리→터 : 인식지향물격이후지지 지지이후의성 ...자성명위지성과학과학의 언어는 수학철학은 메타학문으로 양 방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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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物): 연구 대상
법(格): 가설설정, 실험설계
수: 개별 사례의 데이터 처리
리: 보편 법칙의 발견
터: 이치로 파악된 사물이 놓인 새로운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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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응될 수 있음
4) 부록

1 양 하나 : 것 (개별자) 다수 : 것들 (보편자) 전체 : 인 것 (일자) 2 질 (~이면 ~일 터인데) 있음 : 색 (처한 현실) 없음 : 공 (미래의 구상) 정도 : 현실화 (구상이 실현된 정도) 3 관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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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적어둔 부족한 글들로 답안지를 대강 채우게 되었다. 아직 모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훗날 말끔한 답안을 올릴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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