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위한 명상
1.
나는 최근 비전을 더 정확히 보기 위해서 몇 가지의 기물을 구매했다. 그것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매우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종류의 물건들인데, 어떤 이들에겐 그저 소비 사회의 스낵 컬처를 전시하는 장식품에 불과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정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나도 그것들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인터넷 판매자들이 설명으로 기록한 문구들을 읽어 보았는데, 대부분 할로윈 소품 같은 단어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 물품들은 내 안에서 비전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고 느껴진다.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 그것들은 주술을 보여주는 도구로써 명징하게 작동한다.
그것 중 하나는 흑요석 거울로 구매자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천연 원석이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이전까지 그 오브제에 대해서 특별한 지식이 없었고 당연히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기에 그것의 진위를 판별한 안목은 없으나, 티끌 없이 매끈하고 깨끗한 백색의 유리 거울과는 달리 흑요석의 반사면은, 사물을 매우 독특하고 그윽하게 왜곡해서 대상의 아주 깊은 지점을 주시하게 해준다. 직관적으로 보아도 이 물품은 빛을 반사하는 양보다 흡수하는 부분이 더 많기에, 대상을 정밀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사물의 형태를 윤곽만을 남겨두고 어스름하게 비추는데, 그 광경은 빛조차도 닿을 수 없거나, 어쩌면 빛조차도 흡수해 버리는 깊은 그리고 모호한 어둠, 즉 어비스(abyss:심연)의 일부를 비추는 듯한 착란이 일어난다. 흑요석에 비추어지는 모든 형상은 세부적 형태가 사라져서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현실의 오브제는 거울의 안에서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남겨진 사물들의 희뿌연한 잔상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이것이 분명히 착란이고 심리적 효과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본래 인간은 외부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인식의 바깥에 있는 상들은 모두가 마음속의 것들을 외부로 투영하는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착란을 넘어서서 분명한 물성과 실재성을 일종으로서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흑요석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그것을 항상 보고 있을 수는 없기에, 비전의 소재로써 구매한 모조품 해골을 더 많이 비춘다. 해골은 모조품이고, 또 현실적으로 모조품만 구할 수가 있지만, 그것의 형상은 인간의 죽음 이후를 정직하게 비추고 있다. 종종 해골의 뒤편으로 비스듬하게 등유 램프를 배치하는데, 그런 풍경은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서 – 당연히 방의 형광등은 켜두지 않은 상태이기에 - 죽은 자가 자신의 죽음을 반추하고 있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해골은 턱관절을 살짝 열게 할 수 있는데, 그런 상태로 흑요석에 그 모습을 비추면 죽은 자가 자기 죽음을 비웃는 듯한, 어쩌면 죽음이 죽은 자를 조소하는 듯한 극도로 기이한 모순의 간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기에, 나는 미미하지만 아찔한 어지러움에 잠시 동안 눈을 질끈 감그기도 한다.
이러한 오브제들을 책상에 배치해두고 나는 비전에 대한 명상에 집중한다. 내가 찾고 있는 비전은 동시에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무엇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매우 겸손하게 그저 나 자신의 견해를 밝혀보자면, 인간이란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로잡혀 있으면서 동시에 사로잡고 싶어지는 그 어떤 무엇을 우리는 대부분 아주 희미하게 감지할 뿐이고, 인간의 곤경은 그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헤카테스테.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의 비전은 그 이름이고 그것의 기원이 나를 난처하게 한다. 내 무의식 속 어떤 곳에서 그 이름이 솟아났는지 지금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헤카테라는 단어를 호출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다른 부분이 개입해서 그 이름을 상징적으로 확장한 것 같은데, 프랑스어의 ~est 동사를 합성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나는 프랑스어를 아주 짧게 배웠고, 그저 etre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형으로만 그 단어가 쓰인다는 단편적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익사체의 환상>이란 산문에서 그 단어를 두 번 언급했다. 처음 것은 세 번째 문단에 위치하며 원형 그대로 헤카테로 명기했고, 여덟 번째 문단에선 어간 부분을 살짝 변형하여 헤카테스테라는 단어로 기록을 했다. 그러나 처음 집필을 할 당시에는 나는 이러한 변형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 단어는 내가 가진 지식의 표층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무의식에서 솟아난 것이 분명했으므로 신비적인 문제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린 것인데, 헤카테란 마녀의 도상이 술어로서(~est) 진술될 수 있다면, 나에게 헤카테는 더 이상 신화적인 도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신이자 마녀인 대상이 확고하게 존재론적 실재자로서 위상적 격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헤카테는 존재한다.’, 혹은 ‘마녀는 곧 실재이다.’와 같은 존재론적 진술을 가능하게 하며 더 나아가서 ‘마녀적인 심연은 실재한다.’라는 선언으로까지 확장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착란이 아니고 환영성 자체가 현실을 압도한다는 증거로써 그것의 의미적 변이는 확연한 실재로서 나와 헤카테를 마주 보게 하는 것이다.
나에게 헤카테스테(Hekateste)는 더는 단순한 마녀가 아니고 그저 환상일 뿐인 유령이 아니다. 헤카테는 교차로와 밤, 마법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교차로는 경계라는 의미와 닿아 있다.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성격의 이질적 주체가 교차로에서는 서로를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두 가지 힘들이 충돌한다. 한편에는 현세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신화가 있다. 한편에는 과학과 이성, 창조성, 인내 등등의 인간적이고 수평적인 힘이 존재하는 질서가 있고, 다른 편에는 인간의 존재를 철저하게 먼지와 부재로 만들어 버리는 절대적인 힘의 수직적인 질서가 있다. 이런 모순되는 두 가지 원리들이 헤카테스테란 존재 안에 함께 응축되어 있다. 그 두 질서가 마녀적 심연 속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까지는 알아낼 수는 없다. 상반된 원리가 하나의 존재안에 응축되고 있단 사실은 세계의 모순성을 드러내는 징후처럼 느껴진다. 나의 지식은 이제는 사라진 프랑스어의 고어(古語)중에 teste(머리)라는 단어가 있었다는 사실로까지 확장되는데, 이러한 해석을 곁들인다면, 여신은 ‘심연의 지배자’, ‘모든 밤의 우두머리’라는 의미까지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 눈을 감으면 심연의 보이드(void:진공)에서 부유하는 헤카테의 형상이 아른거린다. 눈을 뜨면 나는 램프의 심지를 최대로 올려 불빛을 더 발휘한다. 그 상태에서 흑요석을 들여다보면 해골은 어비스의 옥좌 위에 앉아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는 만물의 통치자처럼 보인다. 흑요석의 심연 속에서 듀라한은 사후계의 통치자가 되어 망령들의 군대(Wildhunt)를 지휘하고, 군단이 행군하는 하늘에선 검은 수의를 입은 헤카테가 날아다니면서 망자들의 사기를 치켜세우고 있다. 해골들의 퀭한 눈과 헤카테의 어두운 초록눈이 램프의 불빛 속에 타오르면서 저주받은 산 자들을 무리 지어 수색하는 아찔한 광경이 내 혼안에서 비전으로 타오르고, 나는 순간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셔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아쉽게도 나의 비전은 그리 길지 못하고 수습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종종 끊어진다. 나에게는 삼색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18시간 정도는 잠에 빠져있지만, 깨어있는 네다섯 시간 동안만큼은 이 녀석은 종놈인 나를 사정없이 괴롭힌다. 내 관심이 너무 비전에만 집중되면 녀석은 책상위로 팔짝 뛰어와서는 키보드를 짓밟기도 하며 내 손을 자기 앞발로 툭툭 치기도 한다. 그러고는 고양이 바구니속에 들어가선 몸을 꼬아대며 요리조리 비트는데 나는 도저히 녀석의 매력을 거부할 수가 없다. 아주 말수가 적지만 대신 행동이 활발한 녀석이다. 그리고 입맛이 매우 까다롭다. 특별하게 비싼 입맛을 가진게 아니라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먹기에, 고양이용 통조림캔 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녀석이 먹는 건 오직 특정한 종류의 츄르와 고양이용 닭가슴살뿐이다. 덕분에 다른 고양이를 키우는 것보다 경제적 부담이 적을 것이라 짐작한다.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볼 때 그 아름다움은 정말로 거부할 수가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처럼 느껴진다. 고양이와 여인을 대비하는 전통적인 은유는 나에게는 뿌리칠 수가 없는 매혹이다. 오팔과 엠버의 반짝거림을 그 자리에 세공한 듯한 그 신비스런 그윽한 눈과 유연한 허리의 곡선을 볼 때마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허리와 허벅지, 종아리등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의 조그만 여인이자 매혹의 대상인 고양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여인이, 또 나의 마녀가, 나의 가장 깊은 어두운 곳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들여다본다.
나는 비전을 보기 위하여 또 다른 대상을 찾는다. 다크웨이브 음악을 백그라운드에 재생시킨 후에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은유를 농밀하게 드리우고 있는 그림 한 점을 유심하게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것을 두고 위스망스는 살로메가 겁에 질려 세례 요한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다고 해석했으나, 나의 눈에는 살로메가 천천히, 한 걸음씩 요한의 참수된 머리라는 환영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살로메의 눈에서, 그 시선에서 공포와 불안의 징조만을 본다는 건 지엽적인 해석이다. 그녀의 눈은 미혹의 징후 또한 또렷하게 비추어내고 있다. 그것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눈에 더 가까이에 있다. 그 창백한 얼굴과 시선에서 공포와 불안과 또한 그런 감정들과 합일된 미혹과 도취를 엿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와일드는 아직 미접(未接)의 영역이지만, 내 상상력은 그와 결을 같이 한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에게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살로메의 춤사위는 사실 이제 시작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노쇠하고 시든 육체 안에 발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채워지지 않는 육욕에 억압된 어느 초췌한 왕을 위해서, 허리를 흔들어대며 다리를 뻗는 음탕한 요부의 춤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육체는 신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장면의 구체적인 비전에 들아가기에 앞서 나는 숨을 가다듬고 어지러움을 몰아내려고 머리를 가볍게 흔든 후에 미간 사이를 주무른다.
피해갈 수 없는 갈증의 파도가 나의 안에서 몰려오고 있다. 나의 신경체계가 핑크 설탕을 간절하게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약물을 안전하게 구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딜러이자 친구가 사법의 감시망에 갇혀 버렸기에 지금 매우 신중한 상태에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유통경로를 찾아나설 만큼 다급하진 않다. 아직 완벽한 정키는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친구를 통해 구한 사탕들은 별다른 첨가물을 합성하지 않은 것으로 신뢰하고 있는 편인데, 나의 신경계와 감각이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깊이 있게 그것의 분홍빛 분위기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지만 지금은 혼자의 힘으로 비전에 다가가야 한다.
나는 음악에서 더 많은 도움을 요청받기로 한다. 살로메의 비전을 보기에는 다크웨이브나 포스트 펑크는 그렇게 어울리는 장르는 아니다. 그것들은 너무 진흙 같고 질척거리게 신경계에 들러붙는다. 유연하고 매끄러운 동작으로 나긋하게 발을 디딜 때마다 음계들의 좁은 사이를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살로메의 춤을 이해하기에는 그 음악들은 너무 강하게 내 머리를 짓누른다. 다크웨이브는 그 이전의 비전까지만 효과가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쿠보타 사키나 나카하라 메이코 같은 가수들이 구현한 일본식 라틴음악의 정교한 리듬과 덧없이 흩날리는 선율속에서 증발해버리는 서정적 감각이다. 1979년작 쿠보타 사키의 데뷔 음반 <유메 가타리>의 바이닐을 레코드에 올리고 바늘을 위치 시킨 후 플레이하는 순간, 지중해의 어떤 지점에서 불기 시작한 바다의 바람이 아나톨리아와 레반트를 거쳐 가며 뜨거운 열기를 담은 모래바람이 되어가는 비전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심연속에서 떠오르는 헤롯왕의 궁전, 바람은 살로메 필리아가 이제 춤을 추려고 하는, 비잔티움 혹은 알함브라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아라베스크 타일로 수 놓여진 그 궁의 연회장까지 바다의 향취를 싣고 불어온다. 사막의 모래는 마슈라비야와 지하 수로를 통해 여과되면서 건들바람으로 바뀌고 그 풍향을 따라 꽃가루가 휘날리고, 샬로메의 긴 머리카락과 트임이 큰 치마단도 그 바람에 따라 슬며시 펄럭이고 있다. 어딘지 그 바람은 궁전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녀의 머리카락과 치마단에 의해서, 그녀의 춤동작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은 그녀가 발끝에 무게를 싣고 중심을 이동하면서 허리를 흔들거나 회전을 할 때마다, 공중으로 높이 떠오르면서 회오리처럼 맴돌다 연회장의 곳곳으로 떨어지고, <유메 가타리>의 레코드가 네 번째 트랙을 넘어서 다섯 번째 트랙인 <살라무>라는 곡으로 넘어가면서 몽한적인 선율을 흘려 보내면, 살로메의 춤도 음악과 일체가 되어 비전속으로, 내 머릿속의 아주 깊은 지점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그녀는 몸을 감싸고 있던 너울을 하나하나 풀어 헤쳐가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은 가슴에 고정되어 그 부위를 가리고 있는 붉은 망사와 허리를 감싸고 있는 푸른 망사뿐이다. 등유 램프의 불빛속에서 해골조차 그녀의 우아한 춤과 백옥같은 미끈한 육체에 감탄을 자아내는 듯이 보이고, 그녀의 골반은 와즈나의 리듬에 맞춰서 정교하게 떨리면서 옷에 붙어있는 금속 장식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울려댄다. 그 순간 흑요석 거울에 비친 해골의 턱관절조차 그 동작을 따라 떨리는 듯이 보였고, 그에 맞춰 살로메는 두 겹의 너울마저 풀어헤쳐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이제 그녀는 거의 나신이나 다름이 없다.
연회장에 있는 관객들의 탄성 소리와 숨을 머금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는 듯하다. 늙은 헤롯왕의 눈은 크게 떠져 휘둥그레지고, 헤로디아 왕비조차 경탄에 빠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살로메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둥글고 통통하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젖가슴은 상체에 힘을 실을 때마다 출렁거리면서 흔들리고 그녀가 골반을 미세하게 흔들 때마다 가슴 중앙과 배꼽 아래를 장식한 석류석들, 그리고 허리띠에 세공된 에메랄드들이 빛을 받아서 반짝거리고, 그 빛의 반사는 청금으로 도금된 궁전의 대리석들에 다시 부딪히면서 그곳의 훈풍을 더욱 뜨겁게 더욱 야성적으로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그림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타악기를 두드리고 있는 연주자와 왼쪽 구석에서 우드의 현을 퉁기고 있는 연주자도 살로메의 황홀을 따라잡지 못해 괴로워 하고 있는 표정이 엿보인다. 결국 그들은 다음 소절에서 합을 맞추지 못해 연주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박수 갈채와 환호 소리, 살로메는 호흡을 고른다. 그녀가 다시 춤을 추기 위해서 자세를 취했다. 관중들에게 사죄를 표한 두 연주자가 다시 합을 맞추며 마캄의 첫 마디를 연주하고 다음 단락으로 이행할 때, 살로메는 허리를 뒤로 젖혔고 무릎도 살짝 굽혀서 몸 전체에 흐느적거리는 탄력을 준비하면서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들어 올리면서 감았던 실눈을 뜨는 순간, 그녀는 허공을 보면서 세찬 비명을 지른다. 그녀는 왼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허공의 어느 곳을 지시한다. 그녀의 눈앞에, 그리고 허공의 그 지점에, 세례자 요한의 참수된 머리가 떠오른 것이다.
창백한 성인의 두상은 근엄한 시선으로 살로메를 내려다보고 있다. 목의 절단된 부위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응고가 시작된 건지 다소 점액질의 양상을 보인다. 그의 검은 머리칼과 수염은 끝자락 부분에 떨어지는 피의 자국이 일부 묻어있고 그것들도 뻣뻣하고 굳어서 성인의 두상을 어딘가에 고정된 박제처럼 보이게 한다. 그럼에도 광채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찬란하고도 비현실적인 백색광이 그녀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권위로, 이성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심연의 비전으로, 초월적인 유혹으로, 초월에 대한 불타오르는 갈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광채는 세례자의 두상을 애워싸고 있다. 살로메는 자신이 다가가는 만큼 휘광의 크기가 커져옴을 느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니 세례자의 얼굴 또한 공포에 질려있다. 그의 눈에도 공포가 맺혀 있는 것을 그녀는 볼 수 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어진 그의 입에서는 그러나, 숨죽인 듯한 신음이, 낮고 음울한 신음이 새어 나올 뿐이다. 그 소리가 그녀에게는 들리는 듯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늙은 왕은 살로메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지만, 지금 자신이 있는 그 공간이 궁전의 연회장이 아니라 규정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영역에 속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는 감지하고 있다, 돌처럼 굳어버린 몸은 오직 시선만이 살로메의 행적을 따라갈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살로메가 순간 미친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질병 즉 히스테리의 발현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느닷없이 바뀐 장소의 공기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살로메는 두 팔로 무언가를 감싸안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마치 사람의 머리 하나를 감싸안는 것처럼 팔과 가슴 사이의 공간이 비어 있다. 이제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닌 슬픔이 가득하다. 그것은 순수하게 사랑하는 님을 잃어버린 여인의 얼굴이다. 깊은 슬픔이 엿보이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내 비전속에 그녀의 진실이 들리는 것 같지만, 무엇이 들리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내면은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텅 비어 버린 공허처럼도 느껴진다.
사형은 이미 집행된 것이다. 세례자의 사형은 살로메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나는 비전속에서 그녀의 진실을 엿보았다. 이미 왕은 세례자를 반역죄와 민중선동죄로 처형할 뜻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감독관들이 그의 생일을 핑계 삼아서 갈릴리에 찾아온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의중을 엿보는 것임을 분명 그도 자각하고 있었다. 살로메가 원한 것은 “(피할 수 없다면).... 그의 머리라도 내게 가져다 주세요. 쟁반에 담아서.” 그런 내용인 것이다.
다시 어지럼증이 이번에는 참을 수 없는 졸음과 함께 몰려온다. 시계를 보니 자정에 거의 다가간 밤 11시.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졸고 있고, 나도 이제 비전을 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어쩌면 내가 비전을 찾아간 것만큼 비전이 나에게로 다가오지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꿈속에서, 어쩌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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