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피면 나 너랑 진짜 헤어질거야”
22년 가을 어느 날 내가 힘들어서 담배 피고싶다고 하곤 할때마다 네가 내게 건넨 말이다. 난 아직 그 약속을 잊지 않는다. 아니 못했다. 그치만 지키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확답할순 없다.
22년 새해였다. 넌 학교에서 장기연애하기로 유명했고 난 그저 여러 실장 중 한 명이였을 것이다. 난 운동, 공부, 대인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듯 했던 너를 동경하곤 했다. 그러던 와중 너와 같은 반이 되었다. 스토리에 답장하며 서로 존댓말로 어색하게 연락했던 처음이 기억 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같은 무리에서 어울려 놀았고 점점 친해졌다. 그러던 중 6월 어느 날, 친구들과 다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 둘은 각자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애들이 좀 노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고 했다. 나올 생각이 없어보여서 어쩌다 둘이 걷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네 집 앞 놀이터에서 서로 주고받던 깊은 대화가 있었다. 넌 그때 남자친구의 고백을 괜히 받아준거 같다며 한창 고민할 때였고 어쩌다 보니 서로 연애사를 털어놓게 되었다. 1학년 때 남자친구가 정말 좋았다면서 ‘누굴 만나도 ㅇㅇㅇ 미만이더라’라고 하는 얘기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빛, 온도, 습도와 함께 정말 선명하다.
7월 즈음이였을까 사건이 생겼다. 무리 안에서 나를 중심으로 갈등이 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잘못이 200%였지만 어린 마음에 내 잘못 아닌 척 회피하고자 발버둥쳤다. 그때 너와 짝이였는데 그 다음학기까지도 날 믿어주는듯한 너에게 정말 고마웠고 많이 신뢰했다. 내가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들어할 때면 수업시간에도 필담을 나누며 위로해줬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알게모르게 너에게 스며든 것 같다. 연초에만 해도 그저 동경해왔는데 매우 가까워진듯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추석 연휴기간이였다.
친구에게 ‘너 ㅁㅁㅁ 어떻게 생각해’라는 연락이 아침 10시에 뜬금없이 온 것이다. 좋아한다고 하면 소문날게 뻔해서 계속 돌려말하고 있었는데 ‘아니 그래서 좋아 싫어’라는 텍스트 한 줄에 내 생각을 전하게 되었는데 되돌아온건 상상도 못했던 답변이였다. ‘걔도 너 좋아하는데 목요일까지 고백안받으면 그만둔데 얼른 고백해’ 그 후 내 머릿속은 온통 너 뿐이였다. 연휴가 끝난 화요일, 아침에는 항상 우리 둘의 목소리만으로 교실은 가득 찼기에 난 아침에 가서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친구들이 일찍 오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였다. 아침에 교실은 두 자리에만 가방이 놓여있었다. 너와 나. 정말 한참을 망설이다가 난 말해버렸다. ‘나 너 좋아하는데 넌 나 어때?’ 이 얘길 듣고 귀 빨개진 채로 입을 가리고 밖으로 도망친 너를 정말인지 잊을 수 없다. 처음엔 어린 마음에 차인건가 싶어서 하루종일 말도 안 붙였는데 학교 끝나고 연락이 왔다. ‘사귀자면서 왜 연락 한 통 없냐’는 식으로 말이다. 난 답변을 못 들어서라고 했는데 당연하게도 무언의 동의였던 것이다. 정말 어렸던 것 같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였던 우리는 붙어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학원 갈 때만 빼고 말이다. 스터디카페도 같은 곳 근처 자리였고 집도 가까워서 내가 자주 데려다주곤 했다. 그리고 내가 학원이 없을 때면 시간 맞춰서 데리러가기도 했다. 손 잡고 걸을 때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였던 것 같다. 스킨십 문제로 헤어졌던 지난 연애를 생각하면 너랑은 너무 잘 맞는것 같아서 기뻤다.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우리는 약 120일 사귀다가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늘 누구나 그렇듯 복합적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내가 공부를 하겠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스터디카페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연락이 뜸해져서 그런 것 같다. 항상 7시에 ‘나 스카 가는 중! 일어나면 연락해 ㅎㅎ’라는 연락과 점심에 연락, 그리고 저녁에 조금이 연락의 전부였던것 같다. 1-2주 정도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너의 말투는 점점 차갑고 딱딱하게 변해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종종 ‘희생적인 연애는 힘들다’ 뭐 이런 식의 불평불만 가득해보일 수 밖에 없는 게시물을 스토리에 올리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복에 겨웠던 행동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신경쓰이던 나는 결국 무슨 일 있냐며 얘기를 꺼냈고 너는 생활패턴도 너무 다르고 난 공부하러가니까 연락하는게 미안하고 부담스러워졌다고 했다. 그때 그 충격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생각치도 못한 일이였으니 말이다. 넌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음악도 따로 배우길래 사실 이 정도로 밀도있는 생활은 익숙하리라 여겼다. 그리고 내가 시간 쪼개서 찾아가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더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였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렇게 우리는 장문의 대화를 주고 받은 끝에 헤어졌다. 사실 어투에서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였기에 엄청 놀라진 않았고 난 다음 날에도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 5시에 일어나서 친구와 통화하며 스터디카페에 갔다. 내 연애 중 가장 오래 사귀었기도 했고 헤어질 당시에는 이쁘게 헤어졌다고 생각해서 사실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였다.
그치만 이후 주변에서 들려오곤 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야 ㅁㅁㅁ이 너 욕 좀 하던데?’ ‘ㅁㅁㅁ이…’ 듣자하니 욕이라고 한 것은 내가 기념일 날 챙겨준게 너무 소소했다는 것이였다. 상당히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였다. 지금에 와서는 기억도 안 나는 일이지만 들었을 당시에는 꽤 후회하곤 했다. 저런 이유로 내가 욕을 먹고 다녀야 한다니. 그리고 3학년 말,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너랑 썸탄다는 얘길 들었다. 사귄다고 했을 때는 많은 생각이 들었고 나랑 만날 때 속으로 ‘근데 나중에 나랑 헤어지고 쟤랑 사귀면 난 어떡하지’라고 혼자서 했던 망상이 현실이 되니 참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12월 초, 난 정말 내 모든걸 걸고 임했던 고입이 망하자 너가 기쁘다고 펄쩍 뛰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로 더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떠올리기 싫은 전애인이 됐다 넌.
작년 4월이였나 그날만 피곤해서 집 앞 스터디카페를 갔었다. 기존 이용자가 둘 뿐이라 신난 나는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와 내 친구였다. 난 가방을 두고 표정이 썩은 채로 그대로 나가 친구에게 받은 담배를 그 자리에서 다 태우고 자리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널 보니 그때 그 말이 생각났다.
“담배피면 나 너랑 진짜 헤어질거야”
그땐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친구와 연인을 모두 잃으니 참 여러 생각이 들었고 그날은 그렇게 짐 싸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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