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일이다.
그날 아내를 떠나보낸 후,
옛날 일이 가물가물하다가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신의 주변을 비잉 맴돌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이 골목길, 익숙하다가도 익숙지 않은 이런 적막은 텅 비어 답답하였다. 
너랑 있는 게 제일 좋다던 어느 노랫말처럼, 
그런 게 제일 좋을 여느 연인처럼. 
’당신이 보고 싶다.‘ 말하려 해도 턱밑 숨어 가빠 말이 안 나왔다.

골목을 걷다가 어느새 집이 되었고, 
자고 일어나니 강가였을 때가 많아졌다.
꿈에서는 낭떠러지가 생겨났고, 사별의 잔향이 강해지던 시기였다.

그 언젠가.
아슬아슬 미쳐 요동치던 10대 시절처럼,
무지막지하게 앞만 보며 달려나가고팠다. 
코앞이 낭떠러지일지라도 발은 디딜 수 있지 아니한가? 
한 발짝, 한 발짝.
기어코 아득바득 땅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서던 알프스, 어느 낭떠러지 위에서 인생 두 번째 걸음마를 뗐다. 
혹여 비명이 새어나가더라도 건넛집에는 이해를 바라야만 한다. 

끝내 지상에 도착한 나를 발견한다면, 평범한 집을 지어주길 바라면서 한숨 두 숨 내쉬며 내려갔다. 
한숨에 10m가 가까워져있을 아래층이 얼른 보고 싶었다.

꿈속 들개에게 목을 쥐어짜내어 짖어달라고, 양손을 그렇게 애타게 비벼댔다. 
저 지상에 처박히는 소리는 더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내 귀를 멀게 하여, 이마와 이마가 맞닿는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촉감으로만 존재하기를 바랐다.

저 멀리에 당신을 두고 돌아오던 이 외길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 먼 곳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집에 가기 싫다던 당신 말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본향이 이리도 보기가 싫다더니 이젠 내가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머릿속에 단편집 여러 권을 끌어안은 채로 강물에 몸을 적신다. 
서너권쯤 되는 단편집 마지막 구절은 당신의 목소리로 읽혔다. ‘우리 오래 걸리겠지만, 조만간 또 보자.‘ 가벼운 인사말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조만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아주 길다.

조만간 나는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신을 위해 뭐든 하던 나는, 이제 당신을 위해 본향에 간다. 본향으로 가는 나의 길은 당신과는 다르게 
너무나 빠르고 험난하다.

내가 가진 단편집은 다 닳아빠져, 
이제는 당신의 표정을 예측할 수가 없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