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말이라 학교를 가지 않아서 너무 좋다.

학교가 싫은 건 아니지만, 주중에 워낙 바쁘게 활동했더니

이번 주말은 그저 누워 쉬고 싶단 생각만 든다.


집에서 뒹굴대며 이불 속에 몸을 폭 담근 채 멍하니 TV를 보기도 하고,

맛있는 과자를 먹기도 하고, 아빠와 싸움놀이도 할 생각이다.


오늘도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말한다.


"아들, 오늘 엄마랑 교회 가자."

"이번 주 내내 안 갔고, 오늘은 부활절이라 계란에 재밌는 색칠놀이도 하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활동도 할 거야."

"재밌겠지?"


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내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그걸 말로 엄마에게 설명하기란 

내 나이를 감안할 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번 말했는데도 엄마는 계속 묻는다.

"그래도 가야지. 다들 기다리시고 보고 싶어 한단 말야."


난 결국 짜증을 낸다.

"아니 안 가고 싶다고오. 안 가고 싶다는데 왜 자꾸 엄마는 맨날 가라 가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엄마는 내가 교회에 가면 뻔히 재밌게 논다는 걸 잘 안다고 한다.

다 나를 위해서 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 알 수가 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데

왜 이렇게까지 날 위해 가야 하는지.


엄마는 이유를 묻는다.

막상 가면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안 가려고 하는지를.


난 몸도 피곤하고,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말랑한 마음을 

더 느끼며 뒹굴거리고 싶다.

단지 이런 생각을 입 밖에 꺼내 차근차근 말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엄마는 슬슬 목소리가 커지고 짜증을 낸다.

나도 울음을 터뜨린다.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둘 다 괴로워야 하는 걸까, 란 생각이 잠시 스친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교회에서 아줌마들끼리 수다 떨 때 그렇게 신나 보일 수가 없다.


내가 친구들과 재밌는 놀이를 할 때의 표정과 비슷하다.



날 위해서라고 말하는 엄마는 나를 보고 있다.


무서운 눈으로.



나를 정말 보고 있긴 한 걸까.

 



엄마의 진짜 눈은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친구 집에 놀러 와서 너무 즐겁다.

늘 가슴이 갑갑했는데, 지금은 뻥 뚫리려 하는 것 같다.


내가 악당이고 친구가 공룡특공대 역할을 맡았다.

지금 나는 공룡특공대 기지를 부수기 위해 등장한 상황이다.


무서우면서도 멋있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그때 빨간 얼굴로 등장한 엄마는 내 산통을 깨버린다.

"너 땀 흘리고 있어. 얼굴 빨간 것 봐. 당장 옷 벗어야 해."


난 애가 탄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내가 주인공인 순간에,

엄마는 뭔 옷을 벗으라는 건지.


"아, 엄마 좀 나가."라고 급한 마음에 내지른다. 


엄마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더 큰 소리로 말한다.

"너 열 나면 어떻게 해. 감기 걸려. 얼른 벗어."

"빨리."


난 덥지도 않다.

왜 꼭 지금 벗어야 하는 걸까.


가까워진 엄마에게서 술 냄새가 난다.


조명 때문인가.


엄마는 얼굴이 더 빨갛게 변한 듯하다.


"너 지금 안 벗으면 큰일 난다고. 지금 내 말이 안 들려?!"


친구와 방에서 놀고 있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 건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건데,

이렇게까지 날 힘들게 해야 하는 걸까.


친구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모습을 본다.

무서운 엄마 때문인 것 같아 부끄럽다.


부끄러워서인가.

내 얼굴도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 같다. 


심장이 조금은 더 빨리 뛰는 것 같고,

다시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든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시금치 하나 먹을 때도,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못 먹게 하는 엄마.

식당에 있는 수저를 못 쓰게 하는 엄마.

공원에서 뛰면 다칠 수 있으니 걷기만 하라는 엄마.

한시간 마다 내 체온을 측정하는 엄마.


이곳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어린 나로선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할 때 늘 그러하듯

난 머리를 벽에 박기 시작한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른다.


이 참에 스스로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통증이 느껴지면 그 통증에 집중하게 되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일까.

머리를 앞뒤로 반복해서 움직이다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서일까.


이뿐 아니라, 책상을 반복해서 칠 때도 있고,

"악!" 하고 큰 소리를 내지를 때도 있다.


엄마는 여전히 날 보며 연신 큰 소리로 잔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자세히 보니 날 보는 게 아닌 듯하다.


내 옷을 보고 있는 걸까.




엄마는.

 

어딜 보고 있는 걸까.


내가 머리를 움직여서 엄마의 시선을 못 읽는 것일까. 

 



내 머리에서 피가 나면,

 


그땐 알 수 있을까.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정해진 위치에 똑바로 선 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큰 소리를 내거나

선생님에게 장난을 치지만

난 가끔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릴 뿐이다.


엄마가 도착하면

난 환한 미소로 "엄마"를 외치며 엄마의 품에 안긴다.


엄마가 날 안아주는 느낌이 좋다.


엄마와 차에 탄 뒤, 뒷좌석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응시한다.


피아노 학원에 도착한 나는 예의 바르게 선생님께 인사한다.

또래 친구보다 예의 바른 나는 선생님께 늘 칭찬받는다.


어릴 적 다니던 학원을 쉬다가 다시 다니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선생님께서 날 봤을 때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엄청 차분해졌다고 하셨다.


내가 바뀐 건지 난 모르겠다.


어쨌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씀해 주신 걸 보면 칭찬 같아 다행이다.

눈썹 모양까지 보였다. 웃는 표정이 맞다.


학원 두 개를 마치고 드디어 집에 도착한다.


땀이 나서인지 자꾸 안경이 미끄러진다.


안경을 다시 올리고 엄마의 눈을 본다.


엄마가 웃고 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난 옷을 벗어 세탁물 보관함에 두고,

비누 거품을 충분히 내어 손톱 밑까지 철저히 닦는다.


손을 씻느라 거울을 잘 못 봤지만


어쩐지 동공이 커져 있었던 것 같다.


안경이 다시 내려간다.


고개를 숙여 손을 씻느라 내려간 것 같다.


난 엄마가 해준 음식이 좋다.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난 세상에서 엄마 요리가 가장 맛있어."


엄마가 웃는다.


눈썹이 웃는 모양이니까.



엄마와 내가 장조림을 먹는 소리가

입안에서 들린다.


다른 소리는 없다.


왼쪽의 수저와 오른쪽의 젓가락을 본다.


간격이 적당하다.


다시 엄마를 본다.


엄마도 나도 입을 확실하게 다문 채

음식물을 씹는다.


코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뼈에서 씹는 소리가 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스피커도 아닌데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제 밥그릇에 남은 밥알갱이들은 한쪽에 깔끔히 모여 있다.

한 숟갈만 한 번에 퍼서 먹으면 깨끗한 밥그릇이라 보일 만하다.



그때 식탁 아래 떨어져 있는 김치국물이 보인다.


이미 내려진 안경 덕분에 고개를 크게 떨구지 않아도 보인다.

소리 없이 양말을 가져가 댄다.



차가운 온도가 발가락에 퍼진다. 



안경을 다시 콧등 위쪽에 올린다.



엄마도 다 먹었다.



달라진 점은 없다.



 



안경은 멀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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