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한 스물한 살,
그 해 겨울이 칼날처럼 매서웠던 날이었습니다.


시급 만 원.
한 달 밤을 갉아먹으면
통장에는 겨우 180만 원이라는
초라한 숫자가 새겨졌습니다.


월세와 공과금, 대출이자 그리고
입속을 축축하게 적시는 라면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30만 원.
그 돈으로는 꿈도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낮의 햇살이 내 뺨을 어루만질 때는
그 누구도 나를 깨울 수 없었으니까.
그 시간만이 온전히 내 것이었으니까.


집에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날아왔습니다.
"언제까지 그 모양으로 살 거야."


그 목소리에는
실망과 체념이 서걱서걱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핸드폰을 무음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침묵만이 유일한 대답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사이,
그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손님들은 마치 유령처럼 드물었고
물류차들만이 가끔씩
밤의 침묵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그 시간에 나는
유통기한 지난 폐기 삼각김밥을 먹으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매니저는 "버려"라고 말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김밥들이 나와 닮아있었거든요.


어떤 밤에는
새벽 세 시에 술 냄새를 온몸에 칭칭 감은 남자가
비틀비틀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라면 하나 끓여줘. 계란도 넣어주고."

여기는 편의점이라고 말하려다가
그 남자의 눈가에 웅크린
절망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나는 라면기계 앞에서
진라면을 삶았습니다.
계란도 하나, 살며시.


그 남자는 나무젓가락으로
면발을 후루룩 삼키면서
흐느꼈습니다.


왜 우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새벽 세 시에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혼자 라면을 먹으며 우는 이유는
언제나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떤 밤에는
어린 고등학생이 와서
담배를 달라고 했습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아 씨발, 저번엔 됐는데. 바뀐 알바 존나 까칠하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까칠한 게 아니라
이것이 규칙이니까.
세상에는 지켜야 할 선들이 있으니까.


아침 일곱시 무렵이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아메리카노와 삼각김밥.
매일 같은 조합.
매일 같은 안색.

"영수증 드릴까요?"
"아뇨."

이런 대화를
하루에 백 번도 넘게 반복했습니다.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그렇게 여섯 달의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내렸을 때


새벽 두 시 삼십 분에
고요를 깨는 손님이 나타났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
하지만 새벽 두 시 삼십 분이라니.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오빠, 여기 와이파이 돼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너무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네, 됩니다."

그 아이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고
구석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지만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아주 짧게,
이유 없이 웃기도 했습니다.


서른 분쯤 지나서
그 아이가 카운터로 다가왔습니다.

"오빠."

"응."

"혹시 오빠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있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아이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작게 웃었습니다.

"저는 요즘 계속 그래요."

말투는 담담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습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습니다.

"배고파?"

그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창고 한켠에서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삼각김밥을 꺼냈습니다.

"이거 먹어."
"감사합니다."

그 아이는
정말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 밥 먹는 거…
오랜만이에요."

왜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왜 밤에 일해요?"
"낮에는… 잠자고 싶어서."

그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낮이 좀… 힘들어요."

그 말 뒤에는
아무 설명도 없었습니다.


삼각김밥을 반쯤 먹다가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오빠, 나 내일도 와도 돼요?"

나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말했습니다.

"삼각김밥 하나씩은 줄 수 있어."

그 아이가 웃었습니다.

"고마워요, 오빠."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매일같이 나타났습니다.


새벽 두 시 삼십 분에.
시계처럼 정확하게.
아이스크림 하나,
삼각김밥 하나.


그리고 한 시간.
그 아이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가 갔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오빠, 저 이제 안 와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도 굳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오빠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고맙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이제 끝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는
늘 앉던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평소랑 똑같은 걸음이었는데

이상하게
조금 더 멀어 보였습니다.


문을 열기 전에
아주 잠깐 멈췄습니다.

뭔가 말할 것처럼.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갔습니다.


문이 닫히고
종이 한 번 울렸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가 앉아 있던 자리만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 가서야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걸 봤습니다.

접혀 있는 영수증 하나.

별 생각 없이 펼쳤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찍혀 있는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종이인데

이상하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계속 같은 시간에 일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듣고
같은 하루를 반복했습니다.


새벽 두 시 삼십 분.

그 시간만 되면
괜히 손님 출입문 쪽을 보게 됐습니다.


가끔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수증은
아직도 계산대 서랍 안에 있습니다.


버리면 될 텐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왜인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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