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이라 출근길에 아이를 등원해줄 수 있어 기쁘다.
그는 아이의 볼에 진심 어린 뽀뽀를 하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의 가슴은 가족 덕분에 따뜻한 풍족감을 느끼고,
그의 머리는 정교한 톱니기계가 맞물리듯 돌아간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삶.
잠시 그렇게 생각한 뒤, 이내 직장을 향해 운전대를 잡는다.
오늘은 유독 쿰쿰하고 눅눅하게 느껴진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등원시킨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실험체가 더 역겹게 느껴진다.
고문기술자인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실험체 앞에 선다.
이내 피부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의 뛰어난 학벌에 걸맞은 정교함이 돋보인다.
사실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은 공감 능력이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지,
어느 타이밍에 변주를 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지,
희망과 절망을 어떤 미세한 비율로 배합해야 같은 고문도 결과가 폭발적으로 달라지는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는 인간의 인지 구조, 감각 구조, 감정의 프로세싱에 대한 설계도를 가진 셈이다.
일을 마친 뒤, 그는 집에서 가족과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결코 쉽지 않았던 일의 노곤함을 씻어낸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운 그는 생각한다.
오늘 아이가 잘못한 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훈육해야 건강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할 수 있을지.
오늘 자신이 아이와 아내에게 잘못한 지점은 없었는지.
아내와 직장 동료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강도와 방향으로 대처해야 할지.
끝으로,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오늘도 헌신했다고 느끼며
보람찬 감정을 안고 잠에 든다.
. . .
오늘도 아이는 배가 아파 보건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아이는 수업 시간 중 쉬를 참지 못해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오늘도 아이는 간헐적으로 얼굴에 짧은 경련을 겪는다. 틱 장애다.
세상은 동화처럼 서로에게 따뜻함만을 주는 곳이라 믿는 아이는
하굣길에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리듬을 타고
해맑은 표정으로 집을 향한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아이는 집이 으슥한 동굴처럼 느껴진다.
동굴 깊숙한 곳에서 한 여자가,
힘없는 자세이지만 얼굴 근육만은 기괴할 정도로 긴장된 채 중얼거린다.
“밥 차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요리하고 나면 설거지하고, 설거지하고 나면 집 청소하고,
청소하고 좀 쉬려 하면, 네가 집에 오고… 이해가 가니?”
아이는 순간, 그녀의 눈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 있는지,
그녀의 안와 역시 이 집과 다를 바 없는 동굴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머리가 고장 난 것 같고, 눈을 뜨고 있어도 캄캄하면서
동시에 지나치게 눈부시다.
이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엄마 사랑해.”
“엄마 기분 안 좋아?”
엄마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나를 안아준다면,
나는 다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애교를 부릴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말한다.
“너는 왜 맨날 기분 안 좋냐고 물어보냐.”
그래도 아까보다는 덜 무섭다.
적어도 짜증낼 때는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난 의도치 않게
기억을 떠올린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예뻐해준다.
어리지만 그 사실을 너무나 명확히 알기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애교를 부리고
그때마다 사랑 섞인 눈빛을 받는다.
그 생각을 할 즈음,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온다.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늘 힘이 넘친다.
알통도 크다.
그런 아버지는 씩씩하게 내 하루를 묻고,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확인한다.
아버지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다.
공부에 관심 없는 나는 방에서 노래를 듣는다.
얼마나 들었을까.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에
노래 속에 잠겨 있던 내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온다.
곧 있을 명절 때문일까,
엄마는 아빠에게 매일 화를 낸다.
두 사람이 싸우는 얼굴을 볼 때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고,
눈코입의 위치가 어딘가 어긋난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다 거실로 나가 눈이 마주칠 때,
그들의 눈은
내 온몸을 떨리게 만든다.
친척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걸까.
그래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건 없고
잘못만 하는 걸까.
나는 그냥
동화 같은 따뜻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데,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존재하는 걸까.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막내로, 공주처럼 자라온 엄마는
자신을 굽힌 채, 이질적이고 배타적이며 잔인한 친척들을 감당하지 못한다.
충청도 시골에서 많은 형제 사이에 끼어 자란 아버지는
늘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엄마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잘못을 떠나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공감도 하지 않는다.
공감은커녕, 모든 것이 엄마 때문이라며
친척이 아무리 잔인한 짓을 해도 참고 따르라는 태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 날, 친척집에 갔을 때
그들은 나를 비아냥대며 무시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뱉는다.
아버지는 그 모든 광경을 보면서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고,
그저 그들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할 뿐이다.
밖에서는 그렇게 사랑받는 나는
무시당하고 놀림받은 마음을 안고
시골집 마당으로 나간다.
꽃이 너무도 예쁘다.
햇살에 반사되는 꽃잎들은 향기롭고,
바람에 산들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은
딱딱하게 굳어 고름 냄새가 날 것 같은 내 마음을
조금씩 녹여준다.
그때,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짧았던 위로는 거기서 끊긴다.
다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나오셨냐는 둥
부질없는 말을 건네며
멋쩍게 서 있는 나.
몇 년이 흐른 걸까.
나는 방 안에 서 있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숨이 안 쉬어진다.
입이 있으니 공기를 들이마시면 될 텐데
그게 되지 않는다.
살고 싶은데,
동시에 죽고 싶다.
성실히 돈을 번 아버지.
악착같이 돈을 아끼며 투자한 엄마.
그들은 결국 그 결과를 얻는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무용담처럼 말하는 부모.
나는
가만히
그들을 바라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