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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와 페라리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한국 공도에서 슈퍼카와 아반떼의 경기는 신호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명예와 시선, 존재 의식과 밀도 수준 증명은 속도를 초월해 굉음을 내며 달린다. 여유로운 시간과 돈은 택시를 부를 이유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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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원하는 것과 값비싼 위스키를 원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가?

그녀와의 섹스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논리 또한 처량한 자위 후의 밀도 깊은 진심의 염세를 느끼는 한 인간의 교차적 욕망이다.

한심한 상상(미래의 화자가 느끼기에)을 하며 자위를 한 후 헐떡이며 릴스를 켜면 젊은 여자들이 벗고 춤을 춘다. 그녀의 처절한 섹스 어필 위에 존재하는 지금의 초월적인 내가, 사정하기 전에는 이 여자와의 섹스를 위해 얼마의 값을 지불할 수 있었을까? 사정 전의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제공받을 수 있었을까? '번식 욕구'라는 와닿지 않는 분석으로 설명될 만큼 단적인 욕망일까? 사랑의 장면을 연출하는 훌륭한 감독에게 그녀의 미소와 허벅지는 많은 장면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 요소의 레이어가 과연 사정의 풍요로움을 위한, 그 단적인 목적을 위한 고명일까?

알코올의 즐거움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빈티지 와인의 값은 그 설명 앞에 부끄러움을 보일까?

와인이 제공하는 즐거움의 핵심 요소는 알코올일까? 와인과 알코올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사정 전의 상상 속 장면이 섹스가 아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관찰일지 모른다. 그저 그녀는 나에게 농담을 하며 찬란하게 웃었을 뿐이다.

그녀는 청량한 파란색 모자를 쓰고 주근깨를 화장으로 덮지 않고 나에게 웃었다. 그것은 섹스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상징적인 이상의 미술이었다.

미술은 분석의 대상이다. 그녀의 파랑 모자와 주근깨.

보고 웃는 건가?

그녀의 파랑 스냅백, 주근깨, 르네상스 풍 건물의 외관과 우중충한 날씨와 신호등, 그 뒤의 트렌치 코트를 입고 횡단 보도를 건너는 금발의 프랑스인이 나의 어떤 욕망에서 파생된 것일까?

'그녀와의 프랑스'라는, 몇 초간 이 세상에 존재할 충동이 낳은 작품 속 이름 모를 그녀, 이 작품의 조연인 횡단 보도를 건너는 금발 프랑스인, 앞머리가 벗겨진 채 남색 레인 코트를 입고 전화를 받는 중년 프랑스인은 자위로 인해 이 세상에서 소멸될 터였다.

하지만 그 미술 작품과 섹스를 향한 욕망의 연결점을 인식하는 것은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위스키 병을 사서 방 안에 가져오는 일은 연애와 같다. 그 병만으로 취하는 밤은 분명 그렇다. 이 바틀이 제공하는 일관적인 논리.

건포도, 정향, 후추, 바닐라, 자두, 훈연.

레몬은 끼어들지 않는다. 땅콩 또한 끼어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을 오늘 밤 내가 느낄 수 있는 땅콩은 없다.

원하지 않을 뿐더러 원해서는 안 된다. 내가 땅콩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라서는 아니다. 지금의 풍요로움에 눈이 멀어 나는 조니워커 블랙과 우주를 구별할 수 없다. 방금 느낀 쾌락을 다시 느끼고 싶어 같은 잔에 같은 병을 기울인다.

그렇게 알코올은 중첩되어 취해 간다. 연인과의 추억이 중첩되어 에로를 품은 우정이 견고해지는 것처럼.

성매매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잔 단위로 파는 바의 경험은 바틀을 알려주지 않는다.

에어링, 컨디션, 추억, 바틀 관리, 오픈 직후, 생일, 약점 노출, 화려한 데이트, 수수한 산책, 어색한 섹스와 포옹의 밀도.

성매매는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그녀의 젖꼭지 색과 엉덩이의 점만을 보여주며 가치 판단을 유도한다.

돈 값을 하는 여자였나? 그녀가 누군지 모른 채 판단은 끝났다.

이분법의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녀게 제공한 육체의 즐거움과 직결되는 그녀의 가치.

그녀라는 단어에 담긴 요소들의 관점 변화.

삶은 지옥이라며 자조인지 모를 미소를 띄는 그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은 괴롭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치를 지불했다.

그는 읽을 수 없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경험은 실망스럽고 현실적이다. 나는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없기에 일본을 사랑한다. 나는 일본 여행을 동경한다.

일본에는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가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생선 구이와 젖은 흙, 마르지 않는 대나무가 있을 것이다.

내 작은 방은 일본을 품고 있다. 일본이 없는 내 방은 형편없는 인생일 것이다. 일본을 가지 않았던, 일본을 가서 실망하던, 인생은 일본이 있기에 풍요롭다. 위스키는 다 떨어져 간다. 더 이상 교환할 가치가 남아있지 않다. 돈이 떨어져 간다.

섹스를 상상하는 것은 섹스 따위보다 훨씬 아름답다.

더 이상 교환할 가치가 남아있지 않다. 추락 욕구를 소모했다. 돈이 떨어져 간다.

*나를 궁금해하는 한 인간만을 위해 내 뇌에서 낳은 싸구려 재즈를 내뱉는 것은 나의 타인에 대한 해석과 일치하지 않는다.

당신의 평가가 나의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논리가 두려움을 집어삼키지 않는 것이 우습다.

당신은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그 여자를 궁금해한다며 나마저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작품이 아니라 재즈다. 나는 매일 술을 마시며 지금 낳은 글자들은 오늘의 의미 없는 사유들인 것이다. 맥락이나 메세지 또한 있을 리가.

한 인간을 궁금해하는 것이 우습다. 우주 따위. 피부에 바르는 파운데이션은 우주보다 두텁다. 철학적으로도 그렇다.

*나의 글은 철학이 아니라 상태 서술이다. 나에게 철학 따위는 없다.

그것이 나를 나타낸다. 무책임을 허용한 것이 유일한 철학일지 모르겠다. 쾌락주의라고 불렸었나. 그러니 어떠한 의미는 없다.

재즈 공연을 보러 가는 한심한 인간들의 허영심이 인간 문명에서 살아남았다면, 나의 상태 서술 또한 살아남을 수 있을 수도 있다.

무책임의 미학

하지만 나는 재즈 문화를 비웃듯 나의 글을 비웃는다. 오늘의 가치를 비웃는 것은 슬프다.

아침 8시가 가까이 된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글을 썼다. 어제도, 엊그제도 술을 마셨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인간이지만 나보다 덜 한심한 인간을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는 병신같은 그런 어떠한 그런 어떠한 그런

자의식과잉을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심술이다 글을 쓰는 후반부에 내가 한심해 보이면 나는 상상 속 독자들을 공격해버려

하지만 나는 따듯한 관심에 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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