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서울길, 나는 창에 기대 버스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막대기와 그 위에 달린 푸른 그림자들을 통해 그것들이 사실 나무였다는 점을 나는 간신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덕분에 나무가 그렇게 보일 정도로 이 버스가 꽤나 빠르게 달리고다는 사실또한 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나무 뒤, 서울에선 볼 수 없었던 낡은 플레이트 집과 논밭, 흙길들과 그 풍경을 담고 있는 가지각색의 색들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푸른색 그림자가 더욱 진해지자 눈앞은 시골에서 멀지만 그렇게 멀지 않았던, 내가 전부고 내 눈앞이 전부였던 나만의 왕국이 있었던 그 시절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왜 나는 나밖에 몰랐을까? 왜 이 세상에선 나만 있었을까? 사실 그때의 내가 맞고, 지금의 나는 틀린 게 아닐까? 온 세상이 완전히 파란색으로 바뀌었을 때쯤 나는 나의 왕국으로 되돌아왔다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에는 완벽히 나와 같은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있었고, 히죽거리는 그들 손에는 “저 파란 깃발을 좀 봐라.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나부끼는구나!”라는 문장이 적힌 명패가 들려 있었다. 위를 쳐다봤다. 역시 내 마음에 쏙 드는 파란 깃발이 기분 좋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의 세상, 내가 원하고 내가 사랑하는 세상. 그래, 어쩌면 이 세상이 옳은 거 아닐까? 나는 신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람들 사이로 달려갔다. 쾌락과 만족, 사람들의 달콤한 언변과 향긋한 냄새를 잔뜩 즐기고 있자 저 멀리 내가 살던 왕궁이 그 웅장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왕궁 위에도 역시나 파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사실 왕궁은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왕궁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 양옆에는 깊은 절벽이 있고 펜스 또한 쳐져 있지 않다. 그 아래는 내가 제일 혐오하는 종자들, 나의 생각을 욕보이고 말 한마디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 붉은 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겠지?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왕궁에 가기 꺼려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 역겨운 놈들 때문에 내가 살았던, 내가 지냈던 그 평화로운 곳을 오랜만에 찾아가는 것조차 힘들어해야 하는가? 나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반드시 가리라. 저 왕궁 안 편안한 침대에 눕지는 못할지라도 반드시 역겨운 자들의 얼굴에 돌을 던질 것이다. 나는 왕궁을 향해 걸어가면서 바닥에 놓여 있던 날카로운 돌들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했다. 길 앞에 도착했고, 나의 분노 역시 절정에 달했다. 저 왕궁이 사람이 되어 나를 위로할지라도 화를 삭이지 못할 정도로 크게. 나는 가장 큰 돌덩이를 집어 들고 절벽을 향해 걸어갔다. 절벽에 고개를 내밀고 돌을 던지려는 순간, 나는 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나의 소중한 친구들, 그리고 나의 아내 또한 그 아래에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화가 났다. 던질까? 그들은 역겨운 놈들이다. 그들은 사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아닌 나의 세상을 망치러 온 못된 악마들이 아닐까? 던져서 그 역겨운 놈들을 몰아내야만 한다. 나는 다시 돌을 머리 위로 올려 던질 자세를 취했다. 잘 가라 악마들. 돌을 던졌다. 돌은 빠른 속도로 그들의 얼굴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끔찍한 놈들의 저 더러운 면상이 부서지는 데 몇 초도 남지 않았다. 머릿속엔 파란 깃발을 봤을 때보다,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쾌락과 유희를 즐길 때보다 더욱 큰 행복이 몰려왔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라. 나의 입은 귀를 넘어 정수리를 향하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종착지입니다. 놓고 간 물건 없는지 확인하시고 바로 내려주세요.”
눈을 뜨자 흰 셔츠를 입고 손에 빨간 장갑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아마 버스 기사겠지?
“흠, 벌써 서울인가요?”
“온 지 30분이 지났습니다. 엄청 행복하게 주무시는 것 같아서 안 깨우려고 했는데 이제는 차고지에 주차해야 할 시간이 돼서요.”
나는 창밖을 봤다. 푸른색뿐만 아니라 가지각색의 색들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버스와 허겁지겁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승객들, 버스에 물을 뿌리고 있는 버스 기사로 추정되는 남자까지도. 물론 나는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악몽을 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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