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향 양말맛은 별사탕의 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춘기로부터의 일시적 휴식에

불과하다.”

— 줄스 파이퍼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어렵다


어른이라는 말은 여전히 어색하고

지구는 내가 서 있을 틈도 없이 돌아간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만히 잠드는 법을 잊어버렸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께서 우려주시던 녹차를 싫어했다


몇 모금만 마셔도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혀를 내밀곤 했다


그때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문구점으로 달려가 

별사탕을 사 먹었다


색깔별로 반짝이는 별들을

손바닥 안에 한가득 담아

한 번에 털어 넣고 

혀 끝에서 색을 녹여냈다 


요즘의 나는 

세탁기 앞에 오래 선다


빨래통 안에서

수건과 셔츠랑 양말들이

서로의 냄새를 뒤집어쓴 채 돌 때,


내가 지나온 시간들도 

저렇게 서로의 냄새를 뒤집어쓴 채

천천히 본래의 색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어느새

말차라떼를 즐기게 되었다


늘 가는 카페,

늘 같은 초록색 잔


초록빛 거품이 가라앉는 걸 바라보며

떫은 맛을 오래 머금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조용해진다


녹차는 찻잎을 우려 마시고,

말차는 잎째 갈아 삼킨다고 했다


어릴 적엔 그토록 싫어하던 맛인데

이젠 혀를 내밀지 않게 됐다


그러다 문득

세탁기 안 젖은 양말들과

말차 가루를 함께 돌리면


말차향 양말이 탄생할까 생각한다


할머니 집 수납장 속

스티커 붙은 유리문을 열면


플라스틱 통 안에는

아직도 별사탕이 남아 있을까


예쁜 색끼리 뒤섞어 담아두었던 별사탕들은

지금쯤 천천히 옅어지고 있을 것이다


설탕은 오래 두면

가장 먼저 색부터 흐려진다


어쩌면 나도

그 통 안에 함께 담긴 채

오래 햇빛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무슨 색일까


언제부턴가 

빨래 더미와 나까지 

함께 돌아가고 싶어졌다


희미해진 별사탕과 

갈린 나의 시간들을

함께 돌린다면,


조금은 떫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말차빛 별사탕이 굴러다닐지도 모른다


옷들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눅눅한 진동 사이로

잊고 있던 색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일시적인 휴식 같은 게 아니라,


지구라는 커다란 세탁기 속

어린 시절 별사탕의 색 하나쯤


혀끝에 아슬히 물고

끝까지 녹이지 않는 일


어쩌면 우리는


말차향 양말을 신고

조금은 떫은 내일로

걸어가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