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 없을
평범한... 아니, 조금 이쁘장한.
특별할것 없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무언가 다른,
칙칙하면서도 올곧은 그녀의 내면을
저는 보았던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둘은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대치동의 여느 중학교가 그러듯
학구열이 높은, 공부에 목숨을 거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인형 같았습니다.
예쁘장한 외모 뿐만 아니라 학업 성적과 교우 관계 등
모든 면에서 누군가가 조각한 완벽한 인형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녀는 입학하고 얼마 안되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학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실, 정말로 그녀는 인형이였습니다.
학원, 과외, 관리형 독서실 등 어린 나이부터
그녀는 수많은 일과를 매일같이 소화해야 했고,
친구마저도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가려 사귀어야 했습니다.
이런 숨막히는 일상을 보내던 그녀는, 당연하게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번도 다른 친구들에게 본인의 고통을 말하고다니지 않았고,
오직 저만이 그 인형의 속이 곪고 곪아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저만이 그녀의 가정사, 고민거리등을 들어주며 그녀의 의지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때의 제가 가증스럽습니다.
저만이 그녀의 이해자가 될수 있다는 알량한 자부심 때문에,
그녀가 의지할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녀의 고통을 달래주는척 방치하고 지켜보았습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날때 즈음,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와 슬픔이 터진 그녀는 어머니께 처음으로 크게 대들고
끝내 서로가 서로에게 씼을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맙니다.
그녀는 그 일을 계기로 더이상 인형이 아니게 됩니다.
아니, 닳고 닳아 더이상 누구도 찾지 않을 인형이 되어갑니다.
설상가상 원래부터 사이가 안좋던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려 더이상 그녀를 신경쓸 겨를조차 없어집니다.
자신을 반쯤 포기한 어머니를 보고 그녀가 느낀건 슬픔도, 절망감도 아닌 해방감.
자유로워진 그녀는 쌓아둔 분노를 표출하듯
그동안 못해본 일탈을 일삼으며 가출, 음주부터 흡연까지 시작하여 비행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와중에도 학교, 학원 등은 나름 꼬박꼬박 나오며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이런 일을 겪을 때 저는 저만의 문제와 고민 등으로 어쩌면
그녀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방황하던 그녀를 바로잡아줄수도, 그녀에게 의지할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가장 힘들던 때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로
그녀는 강남의 모 자사고에 입학하게 되었고,
저는 미국의 기숙학교로 유학을 가 지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전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고향에서 너무나 먼 타지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자유를 맛본 전
결국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어 술부터 대마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제 유일한 버팀목은 간간히 주고받던 그녀와의 문자였습니다.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녀도, 타지에서 방황하던 저도.
서로가 힘들고 위태롭다는걸 알아주길 바라며 근황 이야기부터
지금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까지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이야기를 할때면, 80억 인구중 저와 그녀만이 실존한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저는 그녀의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어제 새벽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투신했답니다.
죽으려 했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저는 사실 그녀의 이해자가 아니였던 걸까요
이 글을 끝으로 그녀에 대한 생각은 그만 떠올리려 합니다.
부디, 다음 생에는 더 좋은 부모와 더 좋은 친구를 만나
인형이 아닌 한명의 행복한 사람으로써 살아가길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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