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유수나 짐승들 따위에서 삶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조선 양반들이나 눈을 감기 전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고


평생 사람 위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런것과는 영 딴판이다.


달이 반쯤 내려 앉을때


정신도 몽롱하고 반쯤 꿈을 꾸며 일하고 있다가


눈 한번 깜빡이니 어느새 동네 뒷산기슭이라


영문도 모른채 어벙하게 있자니 토끼와 자라 하나씩 기어와선


들은적도 없는 중셋말로 뭐라 뭐라 소리치나


기묘하게 오롯이 다 들려 할아범이 말하는것 같더라


무슨 말을 그리 지껄이나 열심히 들어보니


토끼 왈 게으른 놈 같으니 지금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지 않냐


자라 왈 느리게라도 움직여야지 멈추면 어찌 하나는거냐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금세 따라 잡힐게다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멈추는 순간 금세 따라잡히는게다 내 이야기가 기억이 안나더냐


짐승들이 떽떽거리는 소리에 귀가 어지러워 도무지 갈피를 못잡고 있으니


기어코 토끼놈은 채찍을 금세 들고와 등짝을 후려치고


자라놈은 내 발 코둥이를 물고 늘어져 어서 움직이라 소리쳐


마지못해 일단 뒷산 위로 발을 옮켜본다


일단 발을 떼니 더 이상 소리치는 일 없이 가만히 따라오기에


운을 떼어 자라에게 물으니


어찌하여 사람 하나 붙잡고 쉬지도 못하게 하나


자라 왈 쉬지 못하는건 안타까우나 쉬면 토끼한테 잡힌다


나는 태생부터 튼튼하지만 느린 몸뚱아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느리게 태어난 대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네놈은 사람으로 태어나 나보다 빠르면서 왜 쉬고있느냐


이번엔 토끼에게 물으니


어찌하여 힘든것도 모른채 빨리하라고만 닥달하는가


토끼 왈 빠르게 태어났음에도 자라에게 따라잡히는것이 수치인지 모르냐


태생부터 빠르게 태어났음에도 다리가 약해 오래 뛰지 못하니


그렇게 느리게 걸어가단 자라한테 간이고 쓸개고 뺏겨 아무것도 남지 않을게다


토끼야 자라야 네놈들은 짐승으로 태어나 이런 고통을 모르겠지만


사람은 네놈처럼 빠른 다리도 튼튼한 다리도 아니다


그러나 네놈들터럼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그럼에도 왜 너희들은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이빨로 깨무는것이냐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채찍을 휘두르고 종아리를 물어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하여


최대한 빠른걸음으로 뒷산 꼭대기에 도착하니


이제 더 빨리 다음 산으로 가야한다


꼭대기라고 멈추면 안된다 계속 움직이라


더 이상 금수 놀이에 질려 두 대가리잡고 산 밑으로 던져버리니


그제야 고요하고 내가 살아온 아파트며 백화점이며 산 밑으로 보인다


그냥 동네 뒷산에 돌덩이 위에 물 하나 없이 콘크리트밖에 보이지 않다만


그럼에도 조선 양반네들이 말한 청산유수가 뭔지 약간은 알듯 하더라


그러자 떽떽거리는 전화벨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 들어올려


상사 호출에 흰 셔츠와 넥타이 매어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청산유수나 짐승들에게 삶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하는가?


뒷산에서 만난 짐승들 또한 떽떽거리며 소리치는건 똑같으며


청산유수라 불리는곳은 이미 콘크리트밖에 보이지 않으니


진실된 청산유수와 짐승들은 이미 현실에는 없는것이 분명하다


짐승들 사이에서 태어난 짐승은 결국 짐승 위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다


다만 막 져버린 달과 토끼와 자라와 부재중을 보며 생각하며 한마디 올리되,


요즘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