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음소리를 하나 쥐어서 손 위에 올려보았는데, 그것은 거리에서 뒹굴고 있는 전단지 나부랭이였다. (광고) 오늘의 특가 상품, 인기 브랜드 상품을 놓치지 말고 혜택가로 만나보세요…. 라고 시작하는 특별한 것이 없는 전단지 나부랭이였으나, 내 손에 묻어있는 검댕 얼룩은 점점 그 종이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의 손끝에서 그 종이는 흙빛으로 오염되어 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검은 겉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얼핏 보기에 이디시어를 연상케 하는 기이한 문자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문자를 알아볼 순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종이의 검은 기저에서 확산되는 음성이 그것의 의미를 해석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바이러스에 반복적으로 생기를 주는 것같이 민감하고 동일한 재해들을 발생시킨다. 그것은 의학이나 역사를 무시한 일종의 정신적 실체인 듯이 행동한다. (흑사병이란 것이 실체라고?)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옮겨질 수 없는 페스트의 이념…. (흑사병한테 이념이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은 온몸이 마치 산송장처럼 (흑사병이 고통을 느낀다고?) 페스트는 잠자고 있는 이미지들과 잠재적인 무질서 상태를 향해서 꿈을 꾸고 있었고, 불현듯 가장 극단적인 제스처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들 속에서… 같은 재해들을… 연극은 페스트처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있을 수가 없다고!)처럼 연극 속에서 포화하여….’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 음성의 기저, 그 검고 깊은 부분에서 조그만 원형의 물체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순식간에 창백한 해골의 형상으로 떠올랐다. 해골의 검은 눈이 나를 들여다보고, 그 검은 눈을 들여다보는 내 시선이 해골의 형상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