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고 달이 피어나는 고요한 방 속 나를 보고 있는 다른 나를 들여다 본다.

 

푸른 빛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이른 새벽.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건지, 영혼없이 쳐진 몸뚱아리만 일어난건지 모를 나를 쳐다본다. 한 번 쯤 물어보고 싶다. 머리는 맑은지 썩은 흙탕물이 낀건지. 흐리멍텅한 눈을 가진채 밥을 먹으러 터벅터벅 걸어간다. 음식을 씹는건지 모래를 씹는건지.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구멍에 넣는다.

 

배를 채우고 담배를 문다. 불이 붙는 순간. 정신과 몸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굳어있던 정신과 근육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다 풀리기도 전, 담배 한까치를 다 태웠다. 주머니를 더듬더듬거리며 담뱃갑을 꺼내고 확인해본다. 행운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항상 담배를 구매하면 마음에 드는 녀석을 골라 뒤집는다. 소원도 안빌면서 그냥 뒤집어 두는 것이다. 담배를 다 태운다. 어느정도는 풀린 것 같다. 방으로 다시 들어가 옷은 대충 구석에 던져두고 씻으러 간다. 찬물로 씻으면 졸림과 피곤함은 달아난다. 하지만 내 깊은 곳에 있는 ‘응어리’는 영 가시지 않는다.

 

일을 준비한다. 산더미다. 무기력해지고 의문이 든다. 내가 왜 해야되지?, 아니 왜 하필 내가 해야되지? 라는 생각이 들며 할 일을 뒤로 미루고 방바닥에 누워 생각해본다. 응어리가 뭔가에 대하여. 뭔데 내 삶을 힘들게 하는지 생각한다. 순간 한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정신병’ 들어만 봤던 정신병이 나에게도 왔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지만 몇 초도 안지나 받아들인다.

 

정신병, 혹은 마음의 고장이라는 것은 어쩌면 세상이 말하는 ‘정상’이라는 프레임에서 거칠게 이탈해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저 세상과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이 생겨버린 듯한 철저한 고립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계는 남들과 다르게 흐른다. 우울은 단순히 슬픈 감정이 아니라, 영혼의 모든 색채가 빠져나가 회색빛으로 굳어버리는 ‘시간의 정체’인듯하다. 불안은 오지않을 미래의 파도가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삼킬 것 같은 감정의 극대화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나는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이 지나치게 무감각하고 건조한 세상에서 혼자만 너무 연약하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채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날카로운 모서리가 내 마음에 그대로 와서 꽃히는 통증을 남들보다 더 깊이 느끼고 있는 것 뿐이다.

 

가장 잔인한 것은 이 고통에 '이유'가 없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왜 아파?"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자주 작아진다. 특별한 아픔이 없어도, 남들이 보기엔 멀쩡한 인생을 살고 있어도. 마음은 밑바닥이

깨진 독처럼 끊임없이 어둠을 길어 올린다..

내 뇌가 나를 배신하고, 내 감정이 나를 공격하는 밤.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 보이고, 내가 누군지조차 희미해질 때 나는 나의 정체성에 의문을 느낀다. 나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까지 병이 침투해 들어올 때, 나는 어디서부터가 나의 본질이고 어디서부터 병의 증상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새벽 4시는 가장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진실한 시간이다.

가면을 벗어던진 영혼들이 슬프게 우는 시간이다. 나의 또래들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있을지 부러움과 우울에 빠져든다. 나처럼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곳에 와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지금 나를 집어삼킬 듯한 이 우울과 불안은 내가 나약해서 찾아온 벌일 수도 있다. 나보다 힘든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항상 어디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병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를 덮친 어둠이 아무리 짙고, 앞이 안보여도,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전체를 정의할 수는 없다. 난 그저 잠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뿐인것이라 생각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새벽의 끝에 결국은 다시 푸른 새벽빛이 밝아오듯, 내 마음에도 조금씩 내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빛이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저 하루하루 무사히 버텨내 주기를. 

(현재 타국 군부대에서 복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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