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너무 기대하고 읽으면 곤란하다. 이건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도둑에 대한 이야기임은 분명하지만 유명한 대도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초라한 경험담에 지나지 않는다. 설마하니 내가 도둑질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오 년 전 병에 걸렸을 때 친구 여럿에게 편지를 보내 돈을 빌렸는데 그것이 쌓이고 쌓여 이백 엔이 넘어갔고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갚지 못하고 있다.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사기다. 하지만 친구들은 나를 고소하기는커녕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여어, 몸은 좀 괜찮아? 라고 하며 오히려 내게 따뜻하게 말을 건네준다. 돈을 돌려줘야 한다! 나는 단 한순간도 그것을 잊은 적이 없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활기차게 다시 일어서 보일 것입니다. 나는 원래부터 자기변호에는 늘 서툴렀다. 특히 이처럼 작품을 통해 사적인 생활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은 명백히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은 오직 예술 작품으로서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나는 어쩌면 이야기 지상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생활에서의 미숙함은 사생활 속에서 실제로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지켜봐주십시오. 곧 저는 여러분과 일말의 부끄럼 없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남자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이것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데다 전혀 재미있지도 않은 아주 진지한 약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난폭한 고백을 하는 이유는 비록 아직 내가 빚을 다 갚지 못한 죄를 짓고는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둑질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도둑질은 한 적이 없다. 너무 심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이러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고 있다. 엉망진창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들 만큼 끔찍한 수식어를 대여섯 개나 가지고 있다. 이건 다 내 잘못이다. 그런 끔찍한 수식어를 제일 먼저 생각해내고 그것을 스스로의 왕관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워하던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누군가가 내게 예술 세계에서는 악덕하면 악덕할수록 이름을 떨친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얼굴에 싸움의 흔적을 달고 헤진 옷을 입고서 술에 취해 고성방가하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를 영웅이자 the almighty, 심지어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예술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악덕한 모습은 모두 가짜였다. 이것은 꼭 고백해야만 한다. 그 모든 것이 흉내에 불과했다. 나는 실제로는 매우 소심하고 겁이 많으며 아주 무르고 나약한 성격이다. 머리가 약간 둔하고 맨 정신으로는 사람 얼굴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겁쟁이다. 이런 녀석이 알렉상드르 뒤마의 모험 소설에 열광하여 낯빛을 바꾸고 서재에서 뛰쳐나와 친구를 고르려면 달타냥이네 어쩌네 소리치며 술판에 뛰어든 꼴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엉망진창이다. 애초부터 나는 텅 비어 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녀석은 바보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거만한 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조심했다. 갑옷과 투구로 무장했다. 두 겹, 세 겹으로 갑옷을 껴입었다. 하지만 무장이 너무 지나쳤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어느 문병객이 나를 보고 무심결에 폐인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지금은 알몸에 샌들, 그리고 제법 튼튼한 방패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제 나는 세간의 평가를 무척 경계한다. '나는 이제껏 민중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인가. 나는 지금 민중의 친구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론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오해하는지, 그걸 생각하면 아주 놀랍다. 정말로 놀랍다.'라고, 괴테 정도 되는 대단한 남자도 에커만(괴테의 비서) 씨에게 이렇듯 푸념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나는 유년기 때부터 골드스미스라는 작가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 작가는 평생 동안 단 한 명의 인물을 존경했다. 바로 웨이크필드의 목사인데 골드스미스는 자신의 소설 속에도 그 인물을 등장시켰다. 골드스미스는 오직 그 사람만을 존경했다. 지극히 존경했다. 그 사람은 대단히 훌륭한 목사다. 사실 나도 남몰래 그 목사를 우러러 보고 있다. 어느 날 그 목사가 늙은 애마를 팔러 마시장에 가서 말을 이리저리 걸어보게 하며 상인들에게 보여주었다가 상인들에게 형편없이 욕을 먹었다. 그는 그 수많은 혹평을 접하고는 '나도 결국 이 가엾은 동물에게 진심으로 경멸감을 느끼게 되었고, 말을 사려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너무 부끄러웠다.'라고 고백하며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증인의 수가 많다는 건 결국 그 말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고 침울하게 탄식했다고 한다. 웨이크필드의 목사만큼 덕망 높은 인물도 결국 다를 바가 없다. 하물며 나같이 덕도 재능도 없는 가난한 서생이 세간의 평가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세간의 평가를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위해 살아왔다. 처량한 나의 노래, 허영으로 시작해 갈채로 끝나는구나. 어려서부터 성공에 너무 집착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추잡하지 않은가. 회개를 모두 끝마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한 그 얼굴이, 구세군인지 뭔지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 그러네요.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에헤헷' 하고 말하며 생각없이 주인의 눈치만 살피는 행동. 비슷하지 않나? 비슷하지 않나? 신경쓰인다.
비슷하지 않다. 전혀 비슷하지 않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 나는 스스로 막다른 골목까지 가서 한참을 헤매다가 괴로움에 신음하며 고심한 끝에 터벅터벅 되돌아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있어 막다른 골목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상의 막다른 골목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창작상의 막다른 골목은 아니었다. 나는 최근 오륙 년간 발표해온 수십 편의 소설을 지금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이따금 내가 쓴 소설들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한다. 내가 썼지만 참 잘 썼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쓴 수십 편의 소설에서 병중 수기 두세 편은 제외해야 한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부분이 작품 속 군데군데 눈에 띈다. 그렇듯 의미불명의 문장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을 나는 부끄러이 여겨야만 한다. 내게는 정말 불명예스러운 작품이다.
한 유명한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그냥 떠오르지만.
구글 검색으로는 다자이 오사무.
이거 나 아냐 사칭
다자이 오사무 것 베낀 것 아니냐 이건데. 그냥 한 번 소설 식으로 써본 셈이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