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 식사를 하다가 젓가락과 밥공기를 든 채로 갑자기 멍하게 굳어버렸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묻기에 나는 아, 질렸어. 더 먹기 싫어졌어. 라고 대답했다. 그것 말고도 생각하고 있던 일이 좀 있어서 밥을 먹다 말고 넋을 놓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설명하는 건 좀 귀찮았다. 밥을 좀 남겨도 괜찮겠어?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식탁 위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큰 사진판을 펼쳐 두고 줄곧 그것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의 중앙에 마치 왕자같이 건강함이 넘치는 젊은 예수가 전라의 모습으로 하계의 동란 속 망자들에게 무언가를 던지는 듯 대범한 몸짓을 하고 있고 젊은 처녀인 청초한 어머니가 그 아름답고 용감한 전라의 그리스도에게 앳되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다가와 앉아 있었다. 그리스도를 향한 깊은 신뢰를 담아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로 고요하고 아련하게 생각에 잠긴 그 모습이 끝내 나의 초라한 식사를 중단시킨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모모타로(일본 전설 '모모타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영롱한 그리스도의 몸, 그 복부와 치켜 올린 손등과 다리에 크고 새까만 상처가 선명하고 무참하게 그려져 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나는 견디기 힘든 심정이었다. 또 그 어머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어릴 적에 긴타로보다는 긴타로와 둘이서 산에 숨어 살던 젊고 아름다운 야만바(일본 전설 속 요괴 할멈)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또한 나는 말에 올라탄 잔다르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팅게일의 젊을 적 사진 또한 몹시 동경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젊은 처녀인 이 어머니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어머니는 몸집이 아담하고 영리한 하녀 같다. 청결하고 조금 차가운 간호사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다. 가볍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간호사라니 안될 말이다. 왠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영원히 어딘가에 넣어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모자聖母子.' 나는 그 실상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 최상의 것이었다. 다 빈치는 뼈를 깎는 고통 끝에 모나리자를 완성시켰지만 안타깝게도 신품은 아니었다. 신에 맞선 죄로 마품이 되어버렸다. 그에 반해 미켈란젤로는 비록 조금 무지하긴 했지만 눈물 나는 노력 끝에 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누가 더 괴로웠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작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신의 손길이 느껴지고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닌 듯한 느낌도 든다. 미켈란젤로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 불가사의할 정도의 자연스러움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다. 신이 열등생인 미켈란젤로를 도와 그려준 것이다. 이것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아니다.

 

그런 좋은 작품을 보며 밥을 먹다가 나는 결국 식사를 머추고 두리번두리번 방을 둘러보았다.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 있다. 나는 '최후의 심판'의 사진판을 접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갑자기 급격하게 자신감을 잃었다. 글을 한 자도 쓰고 싶지 않았다. 모레까지 잡지 [신조]에 스무 장짜리 단편을 보내기로 약속한 터라 오늘 밤부터 일에 착수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작품 구상은 이미 끝난 상태이고 마지막에 쓸 문장까지 준비해두었다. 육 년 전 이른 가을에 친구 셋을 불러 모아 백 엔을 가지고 유가와라 온천에 놀러갔을 때 우리 네 사람이 서로 잡아먹을듯 싸우고 울고 웃으며 화해했던 일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러기 싫어졌다. 그건 그다지 의미도 없는 말하자면 여느 때와 별반 다름없는 작품일 뿐이다.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스케치'라고나 할까. 그 그림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성모자'를 몰랐더라면 차라리 좋을 뻔했다. 그랬다면 아마 나는 평소처럼 뻔뻔스럽게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줄기차게 담배만 피워댔다.

 

'나는 새가 아니에요. 그리고 길짐승도 아니에요' 언젠가 들판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처량한 가락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집에서 누워 뒹굴다가 그 노래를 듣고 갑자기 눈물이 울컥 끓어올라 몸을 일으켜 아내에게 물었다. 저건 도대체 뭐지? 무슨 노래야?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박쥐의 노래일 거예요. 짐승들의 싸움에 나오는 합창이지요. '그런가? 참 형편없는 노래로군' '그래요?'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그 노래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행동력이 떨어지는 남자다. 변덕쟁이다. 새도 아니고 길짐승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도 아니다. 오늘은 11월 13일. 사 년 전 오늘 나는 어느 불쾌한 병원에서 퇴원을 허락받았다. 오늘처럼 이렇게 추운 날은 아니었다. 청량하게 갠 가을날로 병원의 정원에는 아직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다. 그 무렵의 일은 앞으로 오륙 년이 지난 후 조금 더 안정이 되면 정성을 들여 찬찬히 써보려고 한다. 제목은 '인간 실격'이라고 지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