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요"
죽도록 힘겹게 꺼낸 그의 말에
그녀는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어이없다는듯한 헛웃음을 내뱉었다
"사랑이 뭔지는 제대로 알고 말씀하시는거예요??"
그녀는 가볍게 뒷걸음질을치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그 반응에 그는 속으로 놀랐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심정을 말하기로했다
"당신을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꼭 기쁜 마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당신과 늘 함께 있고 싶어요"
"멍청하군요, 지금 당신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싸늘했다
착각이라… 과연, 정말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조차도 왜 스스로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심지어 언제부터 사랑했는지조차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분명한 건─
"─ 그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아주 좋아한다는 의미만은 맞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사랑에 가까운 그 무언가임에는 틀립없어요…!!"
"하!! 넌센스군요
당신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죠??
당신 말대로라면 부모님에게도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겠네요
그래서, 당신은 부모님과 언제나 떨어지지않고 늘 붙어있고싶고
뵐 때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가 보죠?!?"
마치 독사가 침을 뱉듯 말을 내뱉는 그녀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보면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부득부득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했다
순간적으로 그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은 필요하다고 느꼈다
과연 그 말은 맞다고 할 수 있는가…
그녀는 그의 말을 궤변으로 치부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모순점이 없다 할 수 있는가…
그는 잠시 생각해봤다
연인을 향한 사랑과는 달리 부모에 대한 사랑은
마치 인간이 신에 대해 가지는 것과 비슷한 그 무언가는 아닐까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나무가 자라나 서로 뿌리와 가지가
얽히고 설켜 이루어진 것과 같은 그 무언가는 아닐까
하여 단단하고 변함없지만, 얽혀 있기 때문에 이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여기까지는 비교적 부드럽게 생각이 흘렀지만
이런 추상적인 개념,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기가 난해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초동안을─
할 말 없이 가만히있는 꿀먹은 벙어리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면 그녀는 그녀대로 이 대화의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은 그저 기분에 의한 것일 뿐
논리적인 접근에 있어서 그녀는 그보다 명백히 불리하다는 것을
지극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뜻대로 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억지를 쓰더라도
일단 되나가나 밀어붙이고 볼 필요성이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고있었다
'저건 사랑이 아니야!! 그저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싶은,
나중에 날 어떻게 해 보려는 개수작일뿐이야!!'
그녀는 애써 속으로 다짐했다
수십초간 무의미하게 흐르고있던 정적을 먼저 깬 것은…
그였다
"… 이렇게 지엽적으로 시간을 끄는 건 서로에게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단 하나 뿐이에요
그대가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아닌지… 난 그저 그게 알고 싶을 뿐이에요"
"난 당신의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순진한 척을 하고 있어…!!
'사랑' 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지 마!!
그 더럽고 시커먼 속셈 누가 모를 줄 알아!!!"
그녀의 감정이 점점 더 격양되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잠깐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는 고개를 살짝 더 치켜올려, 시선을 그녀의 눈동자로 고정했다
"… 넌센스군요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구요??
아뇨, 오히려 저야말로 지금의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난 기억해요, 함께있던 순간들…
그 때 당신이 지었던 표정들을 난 기억한다구요…
난 당신을 원해요… 하지만 난 당신의 몸도, 마음도
당신이 허락치 않는다면, 난 그 무엇도 욕심내지 않을거예요…
나는 당신이 허락하는만큼의 당신을 갖기를 원해요…
그저 내 옆에 서 있을 당신의 '존재'를 원해요…
당신은…
제가 지금도 '순진한 척' 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있나요…??"
다시 차디 찬 정적의 공기가 감돌았다
그녀는 할 말을 찾으려고했지만 혀만 바싹 타들어갔을뿐이었다
종종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힐끗하였다
그저 빨리 이곳을 떠나고픈 마음뿐이었다
빨리 이곳을 떠나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저 남자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어쩌면 떠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 스스로도 내내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가장 마음을 알 수 없고,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마음 속 감정들은
마치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애매하게 겉돌고 있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해야…
내 진정성이 당신의 가슴에 건너가 안착할 수 있는 걸까요…"
말을 마친 그는 입가에 아주 살짝, 가벼운 미소를 띄웠다
웃고 싶은 그런 기분도,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쥐어짜낸 감이 없지 않았다
그는 결판을 짓고 싶었다
모든 걸 다 내팽개치고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순간적으로 저 빌어먹을 뺀질이를 죽여버리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발작적인 격정의 감정은 금방 가라앉았지만
이렇다 할 적절한 한 마디를 끝끝내 찾지 못한 그녀의 머리가
그 말을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어버렸다
"… 나는 지금 당장 너를 죽이고 싶어…!!
아니, 난 지금 당장 네 배때지를 반으로 갈라버릴거야!!
너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겠지
그리곤 죽어가면서 내 목에 팔을 걸고 계속 병신같이 지껄이겠지
'사랑해요~ 이게 제 마음이에요~' 하고 말이야
그리고 눈물을 흘려야 해
이 눈물은 회한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고통의 눈물도 아닌
오로지 순수하게 '사랑' 만이 담긴, 나를 위한 '사랑의 눈물' 이어야만 해!!
그렇다면 난 너가 한 모든 말이 진심이라는 걸 믿어줄게!!
덧붙여 내가 널 칼로 찌르는 과정은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칼에 찔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미리 인지되어 있어야하고
그걸 인지한 후에도 넌 그 어떤 동요도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온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어
어때, 정말 이상적이고 완벽하지??"
한 차례 시원하게 퍼부어진 속사포같은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차오르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는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귀신에 씌인 듯 정신없이 내뱉어 쏘아버린 그 말들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의 코앞으로 부끄러움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말을 내뱉을 때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그 목소리는
말을 끝낼 때 쯤에는 아주 희미해 들릴 듯 말듯하였다
다시 무겁고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초침이 째깍 가는 소리와
마치 크레센도처럼 조금씩 커져가는 흐느끼는 소리가
화음처럼 어우러져 들렸다
그 정적을 깨고,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미안해요…
제발… 절 떠나주세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
같이 더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