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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은 대기의 흐름이다. 이쪽의 공기가 저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대기란 질소나 산소 등의 원소로 구성된 기체다. 이 원소들은 먼 과거의 우주로부터 여러 은하와 행성들을 거쳐 지구에 머물고 있다. 이중 일부는 대기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바위나 물 혹은 나무나 짐승의 일부였던 것들도 있다.

  생각을 확장해보면, 내 주위의 대기에는 누군가 몇 해전 발음한 어떤 음운의 구성요소였던 것도 섞여 있을 게다. 어쩌면 내 발음의 요소였던 것, 나의 그녀의 것도 있으리라.


  나는 무엇일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일까. 사고로 절단된 팔이 있다고 하자. 절단면에선 내 심장으로부터 보내진 피가 새어나온다. 저것은 나인가. 나였던 것이지만 이제는 관찰대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쯤 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나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엄밀하게 말하기 힘들어진다.


우리 몸은 대략 6개월 정도면 분자 수준에서 완전한 새 몸이 된다고 한다. 내 몸 안의 어떤 분자도 1년 전부터 나였던 것은 없다.불교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긴 해도 우린 끊임없이 윤회하고 있는 셈이다.

 

  바람은 이 윤회과정의 매개로 작용한다. 물론 일광욕이나 음식물 섭취도 그러한 매개작용이다. 바람은 그것들 중에서도 내가 관심을 둔 현상일 뿐이다. 내 유년기 기억의 절대적인 분량을 차지하는 이미지.

 

  내 어릴 적 동네 이름은 풍전골이었다. 행정구역상 지명은 서학골이었으나 함백산 중턱의 탄광 풍전광업소를 딴 그 이름이 사람들 입에 더 익었다. 바람의 밭. 골짜기에 위치한 우리 마을엔 겨우내 지독히도 바람이 불었다. 판잣집에 겨울바람이 불어닥치면 그 위세가 대단해서 유년의 나는 자주 불면과 악몽에 시달렸다.

 

  국민학교 4학년 가을, 광부였던 마을 아저씨가 실종되었다. 나는 실종 당일 오후 퇴근하는 아저씨와 인사를 주고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선 폭군이었으나 동네 사람들에겐 어린 아이들에게마저 허리가 90도로 꺾이도록 절을 하며 사람 좋은 웃음만 짓던 사람이었다. 마을의 장정들이 횃불을 해들고 밤으로 낮으로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으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수색은 종료되었다. 친구 녀석은 날건달이나 다름 없는 그집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폭군을 실각시키고 시체를 변소에 버렸으리라고 확신했다.

 

  그해 겨울 내 방 창문을 두들기던 바람소리는 유난했다. 바람의 결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감지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변소 바닥에서 힘겹게 탈출한 아저씨의 검은 손이 창문을 두드리며 저리도 소슬한 소리로 우는 거라고..

 

  낮 동안의 바람은 한결 싱그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그 결마다 몇 세기 동안 서려 온 사연들이 느껴지기는 매 한 가지였다. LP 판에 소리가 양각돼 있듯 내게 바람은 저마다의 사연이 새겨진 기록장치였다.


 ps. 내 시엔 유난히 바람이 자주 나온다고, 대학 후배가 지나가듯 던진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내가 이곳에 자주 오는 이유이기도 한데, 여기에 글을 올리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게 된다. 영감을 박제하려는 짓이라는 생각과 전진을 위한 좌표 설정이라는 생각 사이의 갈등에서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