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본주의의 진열창에 넋을 뺏기거나, 끊임없이 뭔가를 탐내거나, 끊임없이 가로채거나, 끊임없이 빼앗거나, 끊임없이 획득하고 소유하고 축적한다면, 거기에서 바로 신념은 끝나고 두려움이 시작돼.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걸 다 포기할 수 있어. 알겠니? 전부 다! >

 

 

 

< 아이라처럼 어린 나이에 버림받은 사람은 모든 인간이 어절 수 없이 빠지는 힘든 상황에 남들보다 훨씬 더 일찍 빠진다. 교육이란 걸 전혀 받지 못했거나, 열정과 신념에 너무 쉽게 휩싸여 이념을 주입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아이라의 젊은 시절은 관계 파탄의 연속이었다. 매정한 가족, 학교에서의 좌절, 대공황의 나락, 유년에 버려진다는 것은 나처럼 한 가족과 한 장소 그리고 그 제도에 붙박여 살아온 소년, 감정의 인큐베이터에서 막 벗어난 소녀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유년에 버려진 경험은 아이라를 해방시켜 그가 원하는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 동시에, 어떤 것에든 거의 즉시 빠져들어 그 속에 완전히, 영원히 처박힐 때까지 표류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이유에서 아이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떠먹이기에 쉬운 상대였다. >

 

 

 

< “예술이 무기일까?” 그가 내게 물었다. 무기라는 말은 참으로 경멸적이었고, 그 자체가 무기였다. “예술은 모든 것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해야 할까? 예술이 좋은 것들의 옹호자야? 이걸 다 누구한테 배웠지? 예술이 슬로건이라고 누구한테 배웠어? 누가 너한테 예술은 민중을 위한 거라고 가르친 거야? 예술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의 관심을 끌 만한 예술은 나오지 않아. 심각한 작품을 쓰려는 동기가 뭐지, 주커먼 군? 물가 억제에 반대하는 적을 무력화시키려고? 심각한 작품을 쓰는 동기는 심각한 작품을 쓰는 것 그 자체야. 사회에 반항하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알려주지. 잘 쓰는 거야. 잃어버린 대의에 헌신하고 싶어?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을 위해 싸우지 마. 그들은 잘해나갈 테니까. 플리머스 같은 항구에는 노동자들일 차고 넘칠 거야. 노동자는 우리 모두를 정복할 거고, 그들의 어리석음에서 이 속물적인 나라의 문화적 운명을 가득 채울 구정물이 쏟아져나올 거야. 이 나라에 곧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게 생겨날 거야. 바로 노동자와 농민의 문화지. 잃어버린 대의를 위해 싸우고 싶나? 그렇다면 말을 위해 싸워. 거창한 말이 아니라, 감격적인 말이 아니라, 이걸 찬성하고 저걸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네가 짓밟히고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선 훌륭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걸 존경스러운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광고하는 말이 아니라, 형벌처럼 미국에서 살아가는 교양 있는 소수에게 네가 말의 편이라는 걸 알리는 말을 위해 싸우라고! 네가 쓴 이 각본은 쓰레기야. 끔찍해. 정말 화가 나. 조악하고, 유치하고, 멍청하고, 선동만 있는 헛소리야. 말로 세상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어. 너의 도덕적 악취를 하늘 끝까지 피워올리고 있어. 예술가의 미덕을 입증하려는 욕망보다 예술에 더 사악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어. 이상주의의 끔찍한 유혹이라고! 넌 너의 이상주의, 너의 미덕을 완전히 정복해야 할 뿐 아니라 너의 사악함도 정복해야 해. 애초에 너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것, 너의 분노, 너의 정치적 동기, 너의 슬픔, 너의 사랑, 이 모든 걸 미적으로 정복해야 하는 거야! 처음부터 설교하고 자기 입장을 내세우면, 처음부터 우월한 관점을 들이대면 예술가로서 무가치하고 한심한 존재가 되고 말아. 왜 이런 선언문을 쓰지? 주위를 둘러보고 충격받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감동을 먹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거짓 느낌을 꾸며내. 무엇이든 즉석에서 느끼고 싶어하는데, ‘충격감동이 가장 느끼기 쉬운 거야. 가장 멍청하기도 하고. 드문 경우가 있긴 하지만, 주커먼 군, 충격은 항상 가짜야. 선언문. 예술은 절대 선언문의 수단이 아냐! 너의 사랑스러운 쓰레기를 여기서 치워주면 고맙겠군.” >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중에서 - 필립 로스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