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서 고생하는 사람"

 

 

내 눈에 비추어 보면, "사서 고생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째는 그냥 사서 고생하는 것. 둘 째는 자립을 위해.

 

 

나는 어릴 적에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젊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하는 거야", 주로 부모님이 말했고 요즈음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말. 반복의 반복이었다. 너는 너무 어려, 그래서 고생을 좀 해봐야 해. 반복에 반복. 눈 온데 눈 오고, 또 눈눈 오고 눈눈눈 오고. 이런 식. 하지만 이런 고생의 목적을 뚜렷히 설명해준 적은 없었지. 꽛꽛한 세월이었어.

 

 

난 그런 말이 싫었음. 아마 반복 때문이었을듯. 그 말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음. 가끔 난 돈 내고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을 봄. 보통 해외여행. 그러면서 거의 이탈리아인의 끓는 피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함. 아, 난 열정적이야. 잘 모르겠음. 난 공감 안됨.

 

 

결론은 그런 모습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조차도 되지 않는다는 것. 난 절대 하지 않을 거.

 

 

내가 본 가장 이상적인 고생의 모습은 자립을 위한 고생임. 나 지금 외국임. 주변에 집 잘 사는 서양 여자애가 있는데, 걔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으로 넘어옴. 그리고 직장을 찾고 일함.

 

 

부모님의 원조는 전혀 없음. 그러면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함. 예컨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개산책을 가고, 그 후 아침을 먹고 수영장에 감. 수영을 마치곤 학교에 수업 들으러 옴(오전 수업일 경우), 그리고 12시 반에 마치면 일하러 감. 일을 마친 후엔 귀가. 그 후 Climb를 하고, 다시 개산책 감.

 

 

오후 수업일 경우엔 세세한 부분의 일정이 다름. 하지만 내가 있는 이곳의 임금은 최악임. 걔는 영어, 스페인어 과외 4, 5개 더 뜀.

 

 

감탄이 저절로 터져나오는 여자아이임. 이곳에 넘어와서 일한 지 2년 정도 된 듯. 그러다가 또 나라를 옮겨서 다른 곳에서도 살아 볼 거라고 함.

 

 

그야말로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고생일듯. 난 그 애의 생활이 너무 좋음. 용기 있는 녀자. 부러움 반, 좋아함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