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의 일이니 그렇게 먼 이야기도 아니다. 오베르뉴의 클레르몽 페랑시에 시브레 박사라는 안과 명의가 있었다. 그는 독창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눈은 짐승의 눈과 간단히 바꾸어 넣을 수 있으며 짐승 중에서도 특히 돼지와 토끼의 눈이 인간의 눈과 가장 비슷하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냈다. 그는 맹인인 한 여자에게 이 전대미문의 수술을 시험했다. 돼지의 눈은 어감상 좋지 않았기 때문에 토끼의 눈을 수술 재료로 선택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서 여자는 그날부터 세상을 지팡이로 더듬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이디푸스 왕이 저버린 빛의 세상을 그녀는 토끼의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당시의 신문에도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꿰맸던 자리가 곪기 시작한 탓에 - 수술 시 소독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 그녀는 또다시 맹인이 되었다. 당시 그녀와 친했던 어떤 이는 후에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두 가지의 기적을 목격했다. 첫 번째는 기적이 신앙의 힘이 아닌 과학적 실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까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기적은 바로 그녀에게 토끼의 눈이 이식되어 있던 며칠 간 그녀가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을 쳤던 현상이다\'


여기까지가 다쓰노 선생의 글인데 이렇게 옮겨 적고 보니 여기저기에 선생의 교묘한 날조가 더해져 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여기에 적힌 것을 믿지 않으면 선생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전부 믿기로 해보겠다. 이 불가사의한 글의 특히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한 줄이다. 그녀가 사냥꾼을 보면 반드시 도망을 쳤다. 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그녀의 눈 대신 넣은 것을 토끼의 눈이었다. 아마 병원에서 기른 집토끼였을 것이다. 집토끼가 사냥꾼을 무서워할 리는 없다. 사냥꾼을 본 적조차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속에 사는 야생토끼라면 사냥꾼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사냥꾼을 무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그 박사가 구태야 땀 흘려 산속을 헤매고 다니며 야생토끼를 잡아 실험에 사용했을 리는 없다. 분명 병원에서 기른 집토끼였을 것이다. 한 번도 사냥꾼을 본 적조차 없는 그 집토끼의 눈이 어떻게 갑자기 사냥꾼을 식별해내고 무서워하게 되었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사냥꾼을 두려워한 것은 토끼의 눈이 아니라 토끼의 눈을 지니고 있던 그 여자인 것이다. 토끼의 눈은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사냥꾼의 직업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아마 그녀의 집 근처에 솜씨 좋은 사냥꾼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냥꾼은 특히 야생 토끼 사냥에 뛰어다녔고, 어제는 열네 마리를 잡았고 오늘은 열다섯 마리를 잡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사냥꾼 본인이나 사냥꾼의 아내에게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집토끼의 눈을 이식받은 덕분에 빛나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 자신이 그 눈을 너무나 아끼는 마음에 전부터 알고 있던 토끼의 적인 사냥꾼을 미워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하고 노골적으로 피하게 된 것이다. 토끼의 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 스스로 토끼가 되기로 자청한 것이다. 여성에게서는 이 같은 육체적 도착 증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여우목도리를 두르면 갑자기 거짓말쟁이로 변하는 부인이 있었다. 평소에는 무척 겸손하고 조신한 부인이지만 일단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외출을 하면 순식간에 교활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내가 동물원에서 유심히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여우는 교활한 악성을 가진 동물이 아니라 오히려 내성적이고 얌전한 동물이다. 여우가 둔갑을 한다는 말은 여우의 입장에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억울한 이야기이다. 혹 여우가 둔갑을 할 수 있다면 그 좁아터진 우리 속에서 볼품없이 어슬렁거리며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마뱀 같은 것으로 둔갑하여 날쌔게 탈출하면 될 일이다. 그 부인도 여우가 사람을 속이는 동물이라고 맹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우목도리를 두를 때마다 자청하여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여우가 그 부인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 아니라 부인이 자진하여 자신의 공상 속 여우와 동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방금 전 토끼 눈을 이식받은 장님 여인 이야기와 매우 닮은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