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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다. 다들 그렇다고 말한다.

햇빛이 살갗을 긁으면서도, 산뜻한 바람이 태양의 간지럼을 날려주는 그런 날씨다.

오늘은 이른 샤워를 했다. 인천에 용무가 있어서다. 사실은 징병검사의 일이다.

날씨와 무관하게 폭우가 쏟아지는 욕탕 안. 그곳에서는 언제나 비내림이 주는 느낌을 받는다. 내게는 편안한 감정이다.

복장은 가장 편한 옷을 골라 입었다. 사실 옷이라고 해봐야 있는건 상하의 각각 두 벌 뿐이다. 그것도 몹시 기능적인.

가는 길은 상쾌하다. 머리모양새도 잘 다듬어졌고, 무엇보다 얼굴에 붙었던 흉한 딱지가 떨어졌다는게 기분을 좋게 만든다.

나름 봐줄 만 하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좀더 드러내기 위해, 모자를 벗었다가 챙의 각도를 좀더 높여본다.

태양은 높은데, 정작 눈부심 말고는 아무런 감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초여름인데도 긴 팔 옷을 입을 만 하다니, 약간 얼이 빠진다.



여지껏 가보지 못한 곳을 간다는건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인지, 아니면 생소함이 주는 붕 뜬 느낌인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철의 덜컹거림,차창 밖의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그리고 목청을 높이는 방물상인. 이 당연한 것들마저 신선하다.

그 와중에 멍청하게도 나는 엉뚱한 곳에서 환승을 하려 하고 있었다.

더 웃기는 점은 어디서 환승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던 중년 여성에게 너무도 당당하게 이곳이 맞다고, 대차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나의 멍청함을 전염시켰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15분 정도를 허비했다. 진한 화장의 중년 여성은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시간은 12시. 앞으로 남은 거리는 8정거장 뿐이니 늦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느긋하다.


종점에 종점을 거쳐 역을 빠져나온다.

결국은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만다. 정오의 햇빛은 강렬하다.

역앞에 정류장이 있다. 저것은 택시 정류장이다. 혹시나 버스를 잘못 타 길을 잃어 마지못해 택시를 타는, 그런 상황을 떠올려본다.

상식적으로, 병무청을 가는 승객은 타지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 그럴 경우 지리에 어둡다는 점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뺑뺑이를 돌며 주행거리를 높이려 들겠지.

물론 병역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징병검사를 받으러 가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그런 치사한 짓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일이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보니, 이미 몸은 버스 정류장에 있고, 버스는 승객들을 태우고 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제쳐두고, 예전같지 않은 시력으로 버스의 가격표를 쳐다본다.

1,300원. 옳지, 마침 잔돈이 300원 있다. 천원. 천원은 어디 있지? 이런, 염병할. 죄다 꾸겨져 버렸군.

난 이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내 손에는 천원하고도 삼백원이 쥐어져 있고,나는 이제 이걸 상자 속에 던져넣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상자가 없다. 인천의 버스에는 그 저금통을 닮은, 그런 상자가 없다.

대신에 자판기마냥 투입구가 있다. 눈으로는 이해했지만, 머리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상자,상자. 나는 아직도 상자를 찾고 있다. 그래. 이제 그 투입구가 뭔지 이해했다. 저것은 돈을 던져넣는 구멍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나는 돈을 쑤셔넣는다. 들어가지 않는다. 여기저기 구겨진 종잇돈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자판기,자판기다.

돈을 펴서 밀어넣고,이제 버튼..아니 버튼은 없다. 버튼은 없고, 다만 뒷사람의 따가운 눈총이 있다.

빌어먹을. 손이 제 것 같지 않다. 배에 쇳뭉치가 들어앉은 것 같다. 사람들, 특히 계집들이 쳐다본다.

인천에는 염병할 위폐범들이 많나보다. 이런 썩어빠진 개종자들 같으니, 그놈들이 아니고서야 누가 버스에 자판기식 투입구를 도입하려고 들겠는가? 다 뒈져버려라. 누구든 간에.

식은땀과 함께 욕지거리가 나온다. 실수로 누군가의 어깨를 치고 말았다. 미안하다. 미안하지만 미안해 할 여유조차 없다. 나는 당황했다.


그렇게 나는 병무청에 도착했다. 12시 53분이다.

대략 100여명의 인원이 기다리고 있다. 다들 모습이 비슷하다. 따분함 속에 일종의 긴장감을 품고 있다.

검사관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성실하게 작성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귀찮은 일이 될것이다,라는 점을.

애초에 나는 성실하게 작성할 작정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는 불려간다. 임상심리실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또다른 검사지를 작성한다. 여전히 성실하게 답변한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상담실로 들어간다.

답변을 토대로 상담사는 내게 질문한다. 나는 그다지 할말이 없다. 내게 일어난 일을 곱씹는다 해서 도움이 된다고는 믿기 힘들다.

그러나 침묵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게끔 하는 힘이 있다. 상담사는 그저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기만 한다.

그가 이겼다. 나는 마지못해 침묵을 깬다. 나는 별것아닌 일을 고민이랍시고 말한다. 상담사는 내가 포인트를 잘못짚는다고 지적한다.

이 자는 마치 투견처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나는 질려버린 채로 입을 연다. 그는 나를 복돋는 말을 한다. 이 자는 기술자다.

마침내 나는 이제는 괜찮다고 말한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여지껏 나는 실실대고 있었다. 나는 입을 연다. 여전히 가장 하찮은 고민을 토로한다.

그는 내가 심성이 착하다고 격려한다. 뜬금없이 내게 그의 전화번호를 권한다. 물론 나는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머릿속이 먹먹하다. 눈물을 숨기는데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해왔는데, 차라리 이제껏 눈물을 쏟아내며 살았다면 삶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신체검사는 정말 별 것 없다. 눈치빠르게 이행사항을 파악하면 그만이다. 오줌색이 거무튀튀하다. 혈뇨 판정을 받을 것이 뻔하다.

검사관들은 재검사를 받지 않게끔 서류처리를 해 준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뜬금없이 이 장면을 꿈에서 봤다는 걸 알아챈다. 물론 꿈에서의 나는 상담사 앞에서 질질 짜지 않았다.


4시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피곤하다. 모든것을 챙기고 나온다. 배웅같은것은 없다.

낮의 활기는 온데간데 없고, 도시의 탁한 회색이 태양을 흐린다.

지폐는 미리 빠릿빠릿하게 펴 두었다. 인천은 이제 익숙하다.


전철에 몸을 밀어넣는다. 나는 유령이라도 된 것 마냥 철마의 덜컹거림에 이리저리 몸을 뒤흔든다.

차창에는 여지껏 봐 오던, 잿빛 얼굴이 거기 있다. 나는 이제서야 그것을 마주보게 되었다.

인파를 헤치고 역사를 나온다. 6시다.

걷는지, 흘러가는지 조차 불확실하다. 석양은 온데간데 없고, 도시의 밤은 화려하다.

모자를 눌러쓴다.




쓰다보니 하고싶었던말이 뭐였는지 다 흐지부지해진것 같네요

일기가 좋은점이, 어차피 자기만 읽을 거라 가독성은 떨어져도 된다고 자위가 가능하다는 !!

저 내용 이후에 병신같이 허세만 부리며 살던 저에게 책임감을 가지라고 어린 친구가 한소리 해줬습니다. 이 부분은 다른 갤러리에 싸놓았는데 다시 적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상담도 마음을 여는데에 도움이 된것 같구요. 오늘 하루(사실은 어제)는 정말 인상깊은 하루였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부딪히면 정신승릴 하는데에 급급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열심히 살고 싶고, 또 그래야겠습니다

문학갤에 똥글투고는 계속 해도 되겠지요? 어차피 유동이라 구글링도 안될테고 좋네요

사실 동국대 국문/문창과에 합격을 했었는데, 가족 반대-바닥을 치는 자신감때문에 입학을 취소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후회..후회보다는 어쩔수 없었다,는 기분이 드네요. 똥글이나 싸는거 보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기도..ㅋㅋ

요즈음에 들어선 겉멋만 들어 예술한다고 깝치고 다닐 바에야 무언가 실용적인 걸 배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일 저한테도 삶을 깊게 이해할때가 온다면, 그때는 자기표현을 무기로 삼을 수 있겠지요.

지금은 뭐,술마실 친구도, 마실 이유도 없는 그런 놈입니다.

욕은 후하게 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