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마다 다른 풍경. 고려시대쯤의 저 산엔 지빠귀 한 마리가 살았다. 한 처녀가 빨래하던 개울과 총각이 나무하던 산속을 오가며 부지런히 울던 지빠귀. 결혼에 팔려가는 그녀가 안타까워 목숨을 끊은 총각과 그를 따라 목을 매단 처녀. 목 매단 가지 끝에는 그녀의 정신 한 자락이 묻고 지빠귀는 그걸 숨쉬고 몸에 묻히고. 신라시대나 조선시대나 그런 사연 그런 지빠귀들이 있었다. 그 지빠귀들, 방금 떠난 가지 끝의 떨림이 땅 밑에 잠자다 바람이 열어놓은 채널을 따라 한꺼번에 쏴아 몰려가는 오늘 아침.
민들레 홀씨의 비행은 어떤가. 몇 세기 전 저 나무들 사이를 달리던 사슴의 발자국이 지층으로 파고들었다가 오랜 동면을 깨고 나와 뿌리를 뻗고 잎사귈 키워 마침내 바람의 채널을 타고 현생한 것.
아침부터 내내 수런거리고 있는 저 나무들과 꽃잎들. 바람의 터치로 수백 만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그 세월 동안의 수많은 타자들이 흩어지고 모이길 반복하는 것이다.
하여 바람은 자아가 수십억 조각으로 분열되는 현재인 동시에 수억의 타자들이 하나의 자아로 수렴되는 진행형이다. 즉 우리들 모두는 개별의 자기이면서 전체의 일부다. 바람이 흩어놓은 실체의 실루엣일 뿐이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페이지들이다. 랑그의 가지마다 펄럭거리는 수억 개의 빠롤이다.
바람이 하나의 기호로 정착할 수 없듯, 우리 모두는 시공간을 끊임없이 유영하는 타자들이다.
나는 신라시대 아낙의 치맛자락이었다가 신새벽 이슬을 매단 거미줄의 열 몇번째 세로줄이었다가 잠자리 날개에서 떨어져 나온 가을 하늘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었던 적도 없었으나 그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에 있다. 밤새 비가 스쳤고 바람이 나무를 한없이 쓰다듬고 있는 오전.
아마도 그대 시 한 절정 같다는 생각. 몇 해전 -> 몇 해 전.
지금껏 썼던 여러 시의 구절들이 중간중간 뒤섞여 있는..어쩌면 내 시에 대한 시를 쓰는 내 정신에 대한 해설..아니 변명 같은 글인데..절정이라니..기분이 쫌 거시기합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