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빵 먹고 있다.

 

 

빵 사러 가는 거리의 풍경.

 

 

1층 관리실 이모에게 인사, "阿姨好~“,”啊,你好“ 내게 얼마나 우호적인지, 나이 꽤 드신 듯한 이 이모는 언제나 건강하시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면 다양한 인종의 얼굴이 있다. 흑인, 동남아, 중남미, 유럽인,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 등등. 중국인을 변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걔네들 패션감각은 언제나 이해불능이기 때문에.

 

 

중국 여자애들은 몸매가 예쁘다. 언제나 그 생각을 함. 한국 사람이 상체가 자그맣고 하체가 커다란 조롱박형 DNA라면, 중국인은 가슴과 엉덩이 부위가 감각적으로 드러난 호리병형 DNA이다. 하지만 걔네들의 피부 상태와 쌩얼은 아직 미개한 관리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라서, 대기만성,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몸매 좋은 것 외에도, 남방 여자애들의 특징이 있다. 코가 넙적하다. 거의 가자미 한 마리가 코 위로 들러붙은 것처럼 그녀들의 안면을 볼 때면 수심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듣자하니 더운 지방에 살면 이렇게 된다고 한다. 추운 지방에 살면 코가 높아지고 날카로워 지는 반면, 더운 지방에 살면 코가 비교적 낮아지고 납닥해진다. 어느 배운 중국인의 입을 통해서 들은 말.

 

 

남방의 활엽수는 키가 크고 잎이 넓다. 뙤약볕 쬐는 날이면 고개 들어 그 푸르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람은 나뭇잎 위에서 쓰러지고, 나뭇잎은 바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땅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땅 위에 말 없이 눕는다. 나뭇잎 그 소리 지르지 않는 최후는 단정하다. 시간이 지나면 환경미화원이 와서 떨어진 나뭇잎을 줏어간다. 잦은 풍경이다.

 

 

중국은 자전거가 많은 나라다. 보도를 걷는 사람보다 더 많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는 나라다. 근데 나는 자전거가 없다.

 

 

과일가게를 지날 때면 주인 아줌마가 종종 파인애플을 깎는다. 오늘도 그녀는 그 거끌거끌하고 큰 과일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녀 옆에는 아들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가 그 장면을 보며 서 있었다. 아들은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의 위생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내 약한 비위로는 저런 삶을 살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는 저런 삶을 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과일가게는 과일이 꾸리는 살림이다. 대부분의 과일은 사람의 얼굴 같은 모습으로 생겼다.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과일들이 자기 얼굴로 엮은 목도리를 가지고 다른 과일의 얼굴을 감싸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근처로 아이가 서 있다. 아이는 그런 장면을 보며 자라났고 또 계속 자랄 것이다. 그 근처로 몇 마리 개가 지나간다. 오늘 본 개가 어제 본 개인 경우가 잦다. 더이상 새로운 얼굴의 개는 없을듯 하다. 어린아이는 과일의 내밀한 살림을 지켜보고,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자랄 것이다.

 

 

빵집에 들어갔다. 팥빵 하나랑 세일하는 식빵 하나를 샀다. 왜 세일하냐고 물어보니 이틀 전에 만들어서 그렇단다. 싸서 샀다.

 

 

기숙사로 돌아왔다. 내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자꾸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난 너무 무식해' 그리고 빵을 먹으면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모순덩어리다. '내가 무식하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글을 쓴다니, 이건 마치 내가 글씀을 무식 탈피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말처럼 보인다. 말도 안되는 것. 갑작스런 탈피는 할 수 없을 것. 그냥 글을 쓰는 것은 견딤의 한 방식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