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아이라를 무너뜨린 한 이유였네. 녀석이 로레인의 침대에서 그렇게 울부짖었던 것도 그 때문이지. ‘모든 게 실패했어.’ 그걸 극복하기 위해 애써 만들었던 인생이 산산조각난 겅.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됐어. 동생은 인생의 출발점인 혼돈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네.”
“‘그게’ 뭡니까?”
“ 제대한 뒤 아이라는 같이 있을 때 자신의 화를 돋구지 않을 사람들과 지내고 싶어했어.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나섰지. 마음속의 폭력이 무서웠던 거야. 아이라는 그게 다시 폭발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살았어. 나 역시 두려웠지. 그렇게 어려서부터 폭력성을 보인 아이였으니까. 무엇이 녀석을 막을 수 있었겠나?
그 때문에 아이라는 결혼을 원했던 거야. 그 때문에 자식을 원했던 거고. 그 때문에 이브의 낙태가 뼈아팠던 거라네. 또 그 때문에 낙태 뒤에 감춰진 진실을 안 그날로 우리 집에 와서 머물렀던 거야.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이라는 자넬 만났지. 녀석이 결코 되어본 적이 없고,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모든 걸 가진 소년을 만난 거야. 아이라가 자넬 끌어당긴 게 아니었네. 자네 부친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아닐세. 자네가 아이라를 끌어당긴 거야. 그날 아이라가 뉴어크에 건너왔을 때 낙태는 여전히 쓰라린 상처였어. 그래서 아이라에게 자네가 못 견디게 매혹적인 존재로 비친 거지. 아이라는 매정한 가족에, 눈도 나쁘고, 교육도 못 받은 뉴어크의 소년이었는데, 자넨 모든 것을 가진 잘 자란 소년이었고. 아이라의 할 왕자였던 거지. 자네가 바로 조니 오데이 린골드였던 거야. 자네는 그런 존재였어. 자네가 알든 모르든 그게 자네의 일이었네. 아이라의 본성, 그 커다란 몸에 들어찬 엄청난 힘, 그 모든 살인적 분노에서 그애 자신을 지키도록 돕는 것. 그건 평생 내 일이기도 했어. 많은 사람들의 일이기도 했고. 아이라는 절대 드문 경우가 아닐세.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나? 이게 자네가 물은 ‘그것’일세.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도처에 널려 있지.” >
< 그녀는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해 아이라라는 짐승이 필요했지만, 그 짐승이 필요로 한 건 길들여지는 거였어. >
<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 공산주의자. 하지만 미국의 어느 누구도 공산주의자가 정말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 공산주의자는 뭘 하는 사람일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생겼을까? 그들은 모이면 러시아어로 말할까, 중국어로 말할까, 이디시어로 말할까, 에스페란토로 말할까? 그들도 폭탄을 만들까? 아무도 몰랐어. 그래서 이브의 책이 그랬던 것처럼 공산주의의 위협을 이용해먹기가 아주 수월했던 거지. 하지만 그때 아이라의 기자들이 팔을 걷어붙였고, <네이션 <리포터> 뉴 리퍼블릭>에 실리기 시작한 기사들이 그녀를 난도질한 거야. 그녀는 대중이라는 기계를 작동시켰지만, 대중은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 가진 않는다네. 자기 스스로 방향을 잡지. 아이라를 깔아뭉개주길 바랐던 대중이라는 기계가 그녀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네. 암 그래야지. 여긴 미국이니까. 대중이라는 기계는 일단 스위치를 켜면 모두들 파국으로 몰아넣기 전에는 멈추지 않거든. >
< “왜 자넨 그 산속에 틀어박혀 혼자 지내나?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게 어떤가?”
“전 이렇게 사는 게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니, 자네가 내 얘기에 귀기울이는 걸 봤네. 자네는 이렇게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 충만한 열정이 사라졌다고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네. 자넨 어렸을 때도 그랬어. 그래서 자네한테 관심을 쏟았지. 자네의 주의력 때문에. 자넨 지금도 그래. 하지만 이 산골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게 뭐가 있나? 어떤 문제인지 모르겠네만, 거기서 벗어나야 해.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지는 건 현명하지 않아. 어느 나이에 이르면 그것도 질병처럼 사람을 못쓰게 만든다네. 자넨 정말 병든 화초처럼 시들다 최후를 맞이할 심산인가? 고독이란 유토피아를 조심하게. 숲속 오두막, 분노와 슬픔을 차단하는 오아시스에 유토피아가 있다는 생각을 조심하기 바라네. 난공불락의 고독. 아이라의 인생은 그렇게 끝났지. 녀석이 숨을 거두기 오래전에.” >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중에서 - 필립 로스 (문학동네)
분노와 슬픔을 차단하거나 유토피아가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숨은 쉬게 해주지. 숲속 오두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