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을 깨달은 게 충격이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네. 내겐 상황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감각이 있었어. 하지만 그 경험은 충격적이었네. 무자비했지. >
< 자네가 궁금할까봐 하는 말인데, 나 자신한테 당한 걸세. 그 모든 도의를 고집한 나 자신한테. 난 동생을 배신할 수 없었고, 내 교육을 배신할 수 없었고, 뉴어크의 불우한 사람들을 배신할 수 없었네. ‘난 아니다, 나만큼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난 도망치지 않을 테다, 다른 선생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흑인 아이들을 버리지 않겠다.’ 그 결과로 내 아내를 배신하게 된 거였지. 난 내 선택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씌워버렸어. 내 공민의식의 대가를 도리스가 치른 거야. 그녀가 내 고집의 희생자가 되었지…… 이보게, 이건 끝이 없다네.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또 내가 도리스를 희생시키게 만든 망상이고. >
< 한쪽에서 배신을 억누르면 결국 다른 쪽에서 배신이 튀어나온다. 그건 정적인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이고, 살아 있는 건 모두 움직이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돌처럼 굳은 것이고,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니 오데이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금욕의 귀감이 아니라면, 오만 가지가 충동을 다그치기 때문이다. 그랜트 부부가 성공하기 위해 휘둘렀던 독선의 쇠몽둥이가 없고,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독선의 거짓이 없으면, 매 순간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라도 별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 >
< “아이라와 그 망할 놈의 삽.” 선생님이 말했다. “그 삽 때문에 아이라가 스스로에게 지우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스스로에게 요구한 그 모든 것. 그 잘못된 사상과 순진한 이상. 아이라의 온갖 로맨스. 녀석은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열렬히 바랐지만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네. 녀석은 자신의 인생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어, 네이선. 아이라는 평생 그걸 찾아 헤맸는데. 아연광산에서, 레코드공장에서, 퍼지공장에서, 노동조합에서, 급진적인 정치에서, 성우 연기에서, 민중 선동에서, 프롤레타리아 생활에서, 부르주아 생활에서, 결혼에서, 간통에서, 흉포한 행동에서, 예의바른 사교활동에서. 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갈망한 남자와 결혼한 거야. 그게 녀석을 분노에 빠뜨리고 혼란에 빠뜨리고 파멸로 이끌었지. 아이라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쌓아올릴 줄 몰랐어. 터무니없이 잘못된 노력만 기울였지. 하지만 사람의 오류는 항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안 그런가?” >
< 단지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라. 귀가 있다는 것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닌가! 어둠 속에 앉아 누군가의 말을 찬찬히 듣기만 해도 인간 존재의 가장 깊숙한 오류를 돌진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반쯤은 신과 같다는 뜻 아닐까? >
<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중에서 - 필립 로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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