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 날은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친구를 만나기로 했었다.

‘이번 정류장이 진명여고, 다음 정류장인 목동역에서 내리면 되겠지.’

진명여고 정류장에 도착하고 한 아주머니가 버스에 탔다. 아주머니는 키가 큰 고등학생, 여고생, 아저씨보다 눈에 뜨였다. 그 이유는 삼각파마. 파격적인 머리모양을 한 아주머니였다. 그냥 ‘삼각파마’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 김밥을 머리 위에 얹어놓은 모양이었다. 뚱뚱한 볼엔 밥풀을 뭉쳐놓았다.

‘진짜 특이하다. 역시 지구는 만만치 않은 곳이라니까.’

혼자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내 앞으로 척척 걸어왔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엔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었다. 초면 그것도 면전에다 대고 폭소한다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주머니라도 기분이 상할 일이다. 때문에 나는 애써 다음 정류장에 내리니까 한 정류장만 참으면 된다, 넌 할 수 있다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한 정류장, 길어봐야 2분 정도 거리지만 마치 2마일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귀퉁이를 도니 목동역 3번 출구가 보였다.

‘이제 일어서야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려는데 삼각 김밥 아주머니가 엉덩이를 갓 땐 내 어깨를 살며시 눌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보살님 같은 미소를 띤 아주머니.

“괜찮아, 뭘 비켜주고 그래. 더 앉아 있어도 돼.”

둘러보니 버스 안에 타고 있단 모든 사람들이 아주머니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본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어, 잠깐 이게 아닌데. 나 여기서 내려야 되는데....... 아냐, 잠깐 기다려. 너 설마 지금 이 상황에서 일어서려는 건 아니지? 아주머니를 무안하게 만들 셈이야?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지금 이 버스 안에 가득한 훈훈한 분위기를 깨고 일어서는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버스가 멈췄다. 내려야 하는데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문이 서서히 열리고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앉아있다 내릴 정류장이 돼서 내린다는 걸 차마 알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아주머니는 무안해서 저기 뒷좌석으로 갈 거고 사람들이 뭐야, 양보하려는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앉아있다 겨우 내릴 정류장이 돼서 일어선 것뿐이야? 하는 시선을 내 등에 꽂아댈 것이 틀림없었다.

“고등학생 같은데 요즘 공부하기 힘들지?”

“아, 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멍청아! 내리는 문이 닫혀버린다고. 그냥 일어나버려. 그까짓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뭐라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야. 그냥 일어나서 박정한 놈이 돼버려!’

나는 1번 버스에서 내린다와 2번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는다 두 답을 사이에 두고 피 말리는 수능을 보고 있었다. 초조와 고민 속에서 급기야 오줌까지 마려워졌다.

“아유, 우리 아들도 올해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학생 잘 생겼네. 우리 아들 닮았어.”

‘설마 이 아주머니 아들도 삼각 김밥인가.’ 같은 혼란전파가 내 머릿속을 혼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천천히 문이 닫히는 게 보인다. 아,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종종 말씀하셨다. 인생은 버스 정류장,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버리면 안 된다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만년 대리냐고 핀잔을 줬었지.......

‘그게 아니잖아, 이 급박한 순간에 왜 회상을 하고 난리야!’

“헉!”

“학생, 무슨 일 있어? 안색도 안 좋고.......어디 아파?”

이 순간에 갑자기 한계 임박입니까, GOD? 마렵다. 지려버릴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슈퍼컴퓨터 수준의 예측을 시작했다.

‘지금 이 아주머니를 밀치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면 늦지 않을지도 몰라. 아냐, 틀렸어. 이 아주머니 덩치로 봐선 순간적으로 밀어봐야 세 발자국, 밀었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칠 거야.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시선들이 뭐 저런 못된 자식이 다 있어? 그렇게 바뀔 거고 지금까지 참아온 게 물거품이 돼버려. 나는.......’

“아무 일도 아녜요. 절망로, 아니 정말로.”

문은 닫혔다. 굳게 이 비밀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몸이 크게 한 번 뒤로 밀렸다. 찔끔, 세어 나왔다. 아무래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지키지 못한 것 같다.

‘야, 너 어디 오고 있는 거야? 약속시간 오 분이나 지났어.’

민국이가 기다리다 못해 보낸 문자.

‘나, 죽을 것 같아.’

손가락을 바쁘게 놀려 이 상황을 간단하게 전했다. 식은땀이 난다.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아랫도리가 뜨듯하다. 찔끔 세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살짝 축축하다. 고삼씩이나 돼서 바지에 지리다니.......

이건 일생일대의 굴욕이다.

“학생, 어디서 내려?”

아주머니는 내 노란 속사정도 모르고 신나게 물어왔다.

‘찬스다. 지금 여기서 잘만 말하면 돼.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고 말해버려.’

“저는 다.......”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데.”

벌써 두 정거장이나 지나왔다. 아주머니가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면 나는 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이 아주머니의 일기장에 ‘오늘은 버스에서 우리 아들을 닮은 학생을 도와줬다’라고 한 줄이라도 남기게 해 줄 수 있겠지. 이 아주머니가 일기를 쓰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보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들을 닮았다 대목 또한 일생일대의 굴욕이다.

“저는 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요.”

다음 정류장. 아주머니는 보살처럼 웃으며

“학생, 나 내릴게. 공부 열심히 하고....... 아유, 볼수록 잘 생겼네. 우리 아들 닮았다.” 하곤 버스에서 내렸다.

‘해방이다! 이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말할 수 없어! 나는 비밀을 지킨 거다.’

얼굴이 느슨해졌다. 위험했다. 긴장을 풀었더니 또 세어 나올 뻔했다. 밀려드는 기쁨이 요동친다. 지이이이이잉, 휴대폰 진동음. 방금 위험했다. 쓸데없는 게 요동을 쳤다.

“너 괜찮은 거냐? 어디야? 정확히 어디냐고.”

“이제 돌아갈 수 있어.”

“버스 잘못 탔냐?”

창밖으로 낙엽이 내려앉은 가을 풍경. 높은 하늘과 맑은 공기. 돌아보니 바쁘게 살아 이런 아름다움도 잊고 살았다. 조금 멀리 와버렸지만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겠지. 좋은 글감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삼각 김밥과 버스다.”

“뭔 소리야?”

“아무 것도 아니다. 지금 간다.”

“글 좀 쓴다고 문자는.......”

버스 문이 열렸다. 가을 햇살, 산들바람이 불어 일어선 낙엽끼리 서로 좇는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가을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름다운 가을 길을 전속력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끝장이다. 지금 내 금빛 강이 넘실거린다고. 화장실, 화장실은 어디냐!’

나의 아름답지 않은 비밀을 지켜야만 했다.

먼 옛날의 일이다.




졸귀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