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론(記號論) 3
- 자아 정체성의 시니피에
 
 

나는 수억 개의 페이지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힌
낱말의 며칠간이 또 나이며

불현듯 고개 드는 첨언들과
명멸하는 교정부호들의 행간 또한 나이다

나는 한 권의 책으로 엮이지 않은 채
문장성분들 사이를 동여 맨
보이지 않는 끈이다

필사적으로 매달린 품사들이며
목차에서
방금 사라진 제목의
마지막 음운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었던 적이 없다
나의 생활상은
어간과 어미의 문법적 경계에서
영원히 활용 중이며
나의 의식은
소실된 체언을 추적하는 관형사

나는
현존하는 모든 페이지였으나
존재했던 어떤 페이지에서도
부재할 것이다

수억 개의 시니피앙
그녀가 밟아 놓은 페이지들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책갈피의 집중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