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임종을 앞둔 노인이었다.
행여 기적이 일어나 얼마간 더 살 수 있다고 하여도 별 의미 없을, 송장과 다름 없는 병든 노인이었다.
죽음이 코 앞까지 찾아왔음은 나 자신도 알 수 있다.
지금은 저기 누워있는 내가 나인지, 아니면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내가 나인지 또렷하게 구분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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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지칠 줄을 모르고 운다. 날씨는 한창 더울 때 이 건만, 누워있는 나는 항상 이불을 덮는다.
한 늙은 여인이 누워있는 나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준다.
저 여인은 나의 아내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칠흑처럼 어두워서 기억나지 않는데도 나는 알아볼 수 있다.
방문이 열린다. 어린 여자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 그리고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
아마도 내 아들 내외일 것이다. 아이는 친손녀일 것이다.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가족들이 확실하다. 알아볼 수 있다.
아들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누워있는 송장을 향해 짓는 표정일 것이다.
자녀들은 슬픈 심정을 드러내도 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있다.
아비를 향한 슬픔과 육체의 피곤함에 지친 나머지 하루 빨리 이 모든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서운하지는 않다.
고통이 끝나기 바라는 마음에 끝에서 죄스러운 마음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이해 할 수 있다.
작은 액자의 가족사진이 보인다. 그래도 멀쩡히 숨 쉴 수 있던 나의 몇 년 전 모습이 보인다.
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난 좋은 아비였을까? 아마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아비였으리라.
그럼 내 아내에게는? 잘 모르겠다. 지금 컬러티비를 보고있는 아내에게선 어떠한 표정도 읽어낼 수 가 없다.
무겁게 입을 다문 채, 병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좋지 않은 머리로 예상하건데, 어쩌면 아내는 나와 처음 살았던 때 부터 조금씩, 조금씩 지쳐왔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못난 내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라고는 의식의 끈을 하루빨리 놓는 것이다.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누워있는 놈이 그렇게 말한다.
똥을 지린 모양이다. 아내가 기저귀를 벗기어 열심히 닦아 준다.
"이 양반이 자신 것도 없이 자꾸 싸시네..아무래도 곧 갈 모양이다."
부끄럽다. 아내와 며느리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고생을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하루 빨리 죽어야 할텐데...
하지만 이것은 부끄러워 하는 내 머리의 노력일 뿐, 밑에 있는 송장은 이 순간을 무척이나 즐거워 하고 있다.
눅눅한 똥 찌꺼기가 닦여나가고 찝찝하던 기운이 가시고, 햇빛에 바짝 마른 새 기저귀로 갈아입혀 졌을 때에 개운함에 그저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저기 아래에 있는 송장이 호소한다. 저 놈은 나보다 솔직하다. 그게 부럽기도 하였다.
내 생은 늘 그랬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며 솔직하지 않은 것.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머리로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현실에 잘 다가가지 못했다.
늘 무언가를 바라고 생각해왔지만, 몸은 그저 쭉정이에 불과하였으니 생각을 해도 생각의 깊이가 얕을 수 밖에 없었다.
문득, 마음이 아닌 몸이 슬퍼서 떠난다는 사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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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조 님의 작품 <기억의 촉감>을 개작하였습니다.
원작 좀 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