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비 디오니소스적 토대 위에 세우겠다는 에우리피데스의 의도가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된다면

그로써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연극이 음악에서 탄생해서는 안 된다면,

연극이 디오니소스적인 신비스러운 어스름 속에서 탄생해서는 안 된다면,

어떤 형태의 연극이 가능하겠는가?

단지 연극화된 서사시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아폴론적인 영역에서는 비극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괴테는 그가 기획한 <나우시카>에서 저 목가적 존재의 자살을 비극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도록 서술할 수 없었다.

아폴론적인 힘은 무시무시한 사물에서도 가상이라는 즐거움, 가상을 통한 구원을 제공한다.

서사시의 작가는 자신이 떠올리는 영상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

자기 앞에 놓인 형상을 관조하며 바라볼 뿐 완전한 배우가 될 수 없다.

음유시인처럼 내면의 꿈 같은 영감이 그의 모든 행위에 서려 있다.

이러한 아폴론적 연극의 이상에 대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슬픈 이야기를 할 때면 내 눈은 눈물로 가득 찬다.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이야기할 때면 내 머리는 공
포로 곤두서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에우리피데스의 태도 속에는 서사가 상실된 흔적이 없다. 무감각하고 냉담한 배우도 아니다.

진정한 배우는 최고의 연기 속에서 완전한 가상에 대한 기쁨을 느낀다.

에우리피데스는 두근거리는 가슴과 곤두선 머리카락을 가진 배우였다.

소크라테스적 사상으로 계획을 세우고, 열정적 배우로서 그것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는 계획에서도 연기에서도 순수한 예술가는 못 된다.

따라서 서사적 연극은 냉담하면서 동시에 열정적인 것이 되고, 딱딱하게 굳을 수도 활활 타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연극은 이제 아폴론적인 효과를 내지도 못하고 디오니소스적 요소들과는 더더욱 멀어졌다.

이제는 새로운 감동 수단이 필요했다.

이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에 속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

아폴론적 관조 대신 차가운 역설이, 디오니소스적 무아지경 대신 불같은 격정이.

그것은 지극히 사실주의적으로 모방되기는 했지만 예술의 에테르 속에 담겼던 사상과 격정은 아니다.

이렇게 연극을 아폴론적 요소 위에만 세우려 했던 에우리피데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아폴론적 경향은 자연주의적이고 비예술적인 경향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했다면

이제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에 한 걸음 더 접근해도 좋다.

그 최고의 법칙은

<아름답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이성적이어야 한다>